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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 대한민국 육군에 ‘홍범도’보다 중요한 것
    스크랩된 좋은글들 2023. 9. 16. 12:45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홍범도 장군 흉상. 국방부는 육군사관학교 교내에 설치된 홍범도 장군 흉상과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흉상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 /연합뉴스
     

    육군사관학교에 설치된 홍범도 흉상을 다른 곳으로 옮기냐 마냐 언론 지상이 시끄러웠다. 여러 의견이 있지만, ‘지금 이런 문제 제기가 무슨 득이냐’는 목소리가 적지 않은 것 같다. 나는 생각이 다르다. 홍범도 논쟁은 지금 대한민국 육군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 볼 기회다. 나는 홍범도 못지않게 홍범도와 그의 독립운동 공적으로 가려진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육사 홈페이지에 따르면 현재 육사에는 조형물이 30여 점 있다. 그중 실전 전사자 이름을 특정하여 기리는 경우는 단 한 사례, 6·25 당시 전사한 심일 소령뿐이다.

     

    미국은 어떨까? 미 육사에는 조형물이 24점 있다. 이 중 실전 참여자를 기리는 경우는 12점. 이 중에는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 남북전쟁 당시 북군 총사령관 그랜트 장군, 우리가 잘 아는 맥아더 장군 등 유명인도 있지만 잘 모르는 사람도 많다.

    태평양 전쟁 말기 오키나와 상륙 작전 지휘 중 전사한 사이먼 버크너(Simon B. Buckner Jr.) 중장, 1876년 ‘인디언 전쟁’에서 전사한 조지 커스터(George A. Custer) 중령, 1864년 남북전쟁 때 전사한 존 시즈윅(John Sedgwick) 중장, 1835년 세미놀 부족과 치른 전쟁에서 전사한 프랜시스 데이드(Francis L. Dade) 소령, 1814년 미영 전쟁(War of 1812) 당시 전사한 엘리에이저 우드(Eleazer D. Wood) 대령, 여성으로서 독립전쟁에 참전했던 마거릿 코빈(Margaret Corbin) 등 면면이 다양하다.

     

    미 육사의 조형물은 미국을 지키기 위해 지난 200여 년간 군인들이 어떤 희생을 치러 왔는지를 종합적으로 보여준다. 우리는 어떤가? 우리에게 전쟁은 항일 투쟁뿐이었나?

     

    1950년 발발하여 3년간 지속된 6·25전쟁에서 우리 군 전사자만 20만명이다. 그중 육사가 실명을 들어 공적을 기릴 사람은 심일 소령 한 명뿐인가? 베트남전은 어떤가? 당시 확장 일로에 있던 공산 세력과 싸우기 위해 참전한 전쟁에서 무려 5000명이 넘는 우리 장병이 목숨을 잃었다. 그중 우리 육군이 기억할 이름은 하나도 없나? 그뿐 아니다. 휴전 후에도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북한의 수많은 무력 도발과 우리의 응전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1968년 울진·삼척 무장 공비 침투 사건에서 군경 33명이 전사했다(디지털 울진 문화 대전). 1996년 강릉 무장 공비 사건 때도 군경 13명이 사망했다(통일부 북한 정보 포털). 북한과 싸우다 수많은 군인이 목숨을 잃었다. 이들 이름은 누가 기억해 주나? 대한민국 육군이 기억해 주는 희생은 오로지 100여 년 전 제국 일본과 싸우다 흘린 피뿐인가?

     

    홍범도 논란을 계기로 육군은 우리에게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되새겨 봐야 한다. 오로지 항일 투쟁만을 기념해야 할 정도로 지금 우리에게 일본이 위협적인가? 일본 자위대 병력은 25만에 불과하고 그중 육상 전력은 15만이다. 해상 전력이 강하다고는 하지만 상륙작전을 감행할 자원도 없고, 지대지 공격에 쓸 탄도미사일도 없다. 무엇보다 한일 양국 모두 미국과 동맹이고 미군이 주둔 중인데, 전쟁이 어떻게 일어나나?

     

    반면 북한은 이미 수소폭탄을 손에 넣었고, 폭탄 투발을 위한 미사일과 잠수함 전력도 증가 일로다. 더욱이 북한을 견제해야 할 중·러는 견제는커녕 오히려 밀착하는 형국이다. 이러다 여차하면 군사 기술이나 물자까지 지원할 기세다. 지금 대한민국의 최대 안보 위협은 북한이며, 육군에는 지난 70여 년간 북한과 싸우며 흘린 피의 역사가 있다. 그런데도 육군이 기억하는 과거는 오로지 ‘항일’뿐이라면 이상하지 않은가?

     

    일각에서는 홍범도는 1943년 사망했기 때문에 북한에 부역한 적이 없고, 홍범도의 공산당은 레닌의 공산당이어서 우리 민족에게 해를 끼친 바 없다고 한다. 사실과 다르다. 홍범도가 레닌을 만난 1922년에 이미 소련 공산당의 실세는 스탈린이었다. 레닌은 2년 뒤 죽었고, 홍범도가 정식 당원이 된 1927년에 소련은 이미 스탈린 1인 독재 체제였다. 스탈린 치하에서 약 2000만명이 탄압에 희생당한 것으로 평가되며 그 희생자에는 조선인도 들어 있다.

     

    스탈린은 소수민족이 안보 위협이 된다는 판단 아래 무려 17민족 약 2000만명을 강제 이주시켰다. 연해주에 살던 조선인 17만명 역시 1937년 약 3개월에 걸쳐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송됐다. 사람을 가축처럼 화물칸에 실어 나르는 과정에서 무려 2만명이 사망했다. 강제 이주 이전부터 소련 정보기관은 조선인들이 혹시 공산당에 저항하지 않는지 철저히 감시했다. 당시 조선인에 대한 소련의 탄압과 감시의 기록은 모두 하바롭스크 소재 러시아 국립문서보관소에 남아 있다. 스탈린 독재에 저항한 조선인들은 제거됐다. 홍범도가 스탈린 독재와 민족 탄압에 저항했다는 기록은 없다. 그는 국립극장 경비대장이라는 명예직을 받고 충성스러운 스탈린 공산당원으로서 연금을 받으며 천수를 누렸다. 스탈린 독재에 신음하던 동족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스탈린 체제에 충성을 바친 1922년 이후 홍범도의 행적은 과연 우리 육군이 사표(師表)로 삼을 만한가?

     

    이제 대한민국 육군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를 직시해야 한다. 지금 현재 우리에게 진실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2023년 9월 16일 조선일보  장부승 일본 관서 외대  군ㄱ제정치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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