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조직관리 전문가인 린다 그래턴 영국 런던경영대학원 교수는 지난해 12월 9일(현지 시간) 동아일보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저출산·고령화, 인공지능(AI) 붐 등으로 변화하는 일자리에 대한 대응 방안을 진단하며 이같이 제언했다. 그는 “시니어들은 AI 시대 인간의 강점으로 꼽히는 공감력이 뛰어나고, 지식과 지혜를 갖추고 있다”고 했다. 변화하는 일터에서 젊은층에게 멘토가 돼 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턴 교수는 ‘일의 미래’, ‘100세 인생’ 등 저서와 강연으로 일자리의 미래에 대한 인사이트를 활발하게 제시하고 있다. 경영학계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싱커스(Thinkers) 50’에 수년간 선정됐고, 2017년 당시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가 ‘인생 100세 시대’와 ‘4차 산업혁명’을 이끌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자문위원으로 특별 영입하기도 했다.
“공감력-지식-지혜 갖춘 시니어, 인간다워야 할 AI시대 큰 가치”
〈2〉 ‘인사-조직관리 전문가’ 린다 그래턴 런던경영대학원 교수
AI가 기계작업은 대체하겠지만… 돌봄-배려 분야는 더 중요해질것
프리랜서 늘고 여러 직업 가질수도… 회사가 사고 싶어하는 기술 갖춰야
韓, 노인 많은 역피라미드 구조… 정년 늘려 더 일하도록 독려해야
AI가 기계작업은 대체하겠지만… 돌봄-배려 분야는 더 중요해질것
프리랜서 늘고 여러 직업 가질수도… 회사가 사고 싶어하는 기술 갖춰야
韓, 노인 많은 역피라미드 구조… 정년 늘려 더 일하도록 독려해야
생성형 AI가 언젠가는 인간 일자리 상당 부분을 대체할 것인가. 일자리의 미래에 대한 통찰을 활발하게 제시하고 있는 세계적인 인사·조직관리 전문가 린다 그래턴 영국 런던경영대학원 교수(69)는 지난해 12월 9일(현지 시간) 동아일보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이 질문에 “AI는 인간 일자리를 빼앗는 게 아니라 바꿔놓을 것”이라며 이같이 답했다. 그는 “기계로 할 수 있는 모든 작업은 AI가 할 것이기에 AI 시대에 우린 더 인간다워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턴 교수는 “흥미로운 점은 우리는 신기술로 미래에 어떤 직업이 파괴될지는 알지만, 어떤 직업이 창출될지는 알기 힘들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직업은 우리가 모르는 시장이나 맥락에서 만들어져 섣불리 예측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에 일자리 변화에 대응하려면 ‘미래를 모른다’는 사실을 직시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그는 “성인이 돼서도 세상에 호기심을 갖고 끊임없이 질문하며 배울 수 있도록 아이 때부터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새로운 직업이 창출될 분야를 구체적으로 소개해 달라.
“어려운 일이다. 예컨대 내 아들은 방사선 전문의가 되길 원했다. 그때 모두가 ‘잠깐만, X선 영상은 기계도 판독할 수 있어’라며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방사선 분야 일자리가 늘어났다. 이렇게 우리 예측이 틀릴 때가 많다. 미래 일자리 창출 분야를 예측하긴 매우 어렵지만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평생학습을 이어가고 호기심을 키우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것이다. 계속 배우고, 지켜봐야 한다.”
―일자리의 미래를 위해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가.
“정부는 사람들의 기술 교육에 투자해 그들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시다시피 AI는 일자리를 파괴하지는 않는다. 직업을 구성하는 일부 작업을 없애는 것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일을 하려면 무엇을 더 배워야 하나’, ‘나에게 필요한 다른 기술이 무엇인가’를 계속 생각해야 한다. 또 사람을 관리하거나 사람들과 협력하는 데 능숙해져야 한다. 기업들은 AI 책임자를 배정하며 AI로 무엇을 할지 고민하고 있다. AI로 효과가 높아지는 게 무엇인지 확인해 관련 기술을 직원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기업이 지금 당장 AI에 대한 관점을 갖는 게 중요하다.”
―AI 활용 능력을 어떻게 키울 수 있나.
“대화형 챗봇 ‘챗GPT’ 같은 생성형 AI에 대화를 시도하고, AI의 답을 관찰한 뒤 내 취지에 맞게 조정한 질문을 다시 제기하는 과정을 반복해 보면 된다. 일종의 호기심과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 ‘강화된(augmented) 인간’이 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동시에 AI는 단지 기계일 뿐이란 걸 알아야 한다. AI가 옳지 않은 정보를 알려줄 수 있고, 제시한 답을 다 받아들일 필요도 없다. 우리는 ‘기술의 노예’가 되지 말고 ‘기술의 주인’이 돼야 한다.”
―미래 일하는 환경은 어떻게 변할까.
“유연성이 훨씬 더 커질 것이다. 우리는 팬데믹을 겪으며 재택근무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배웠다. 장소와 시간에 더 많은 유연성을 갖게 됐다. 다음 단계의 유연성은 고용 계약에서 나온다. 독립적인 프리랜서가 늘어나며 훨씬 더 큰 변화가 있을 것이다. 지금 이 문제를 연구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정규직일 때보다 비정규직일 때 회사와 상호작용할 기회가 더 많다는 점을 알게 됐다. 또 이는 여러 직업을 동시에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뜻한다.”
―이런 환경에서 경쟁력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회사가 사고 싶어 하는 일련의 기술을 갖춰야 한다. 회사는 당신의 발전 능력에 많은 중점을 둘 것이고, 이게 고용 계약에서 중요한 부분이 될 것이다. 당신이 무엇을 하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그게 어떤 일이든 당신이 탁월하게 잘하고, 계속 배울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는가이다. 또 우리는 분명히 더 오래도록 일하게 될 것이란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끊임없이 자신을 개발해야 하고, 휴식기를 가지며 배워야 한다.”
―기업에선 여전히 전문가보단 제너럴리스트가 중시되는 편이다.
“맞다. 회사 전반에 대해 두루 지식을 갖춘 핵심 인물(제너럴리스트)은 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강력한 네트워크와 회사의 일반 기술을 갖춘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게 될 필요는 없다. 회사 내 지배력의 원천은 이런 ‘내부 핵심’(제너럴리스트)들이지만, ‘외부 핵심’(전문가)들은 특별한 프로젝트를 위해 회사를 드나들 수 있다. 특정 분야에서 매우 숙련된 이들 말이다.”
―한국에는 숙련된 은퇴자들이 많지만 일할 기회가 적다.
“기업의 ‘나이 차별’과 관계된 문제다. 그러나 한국의 상황이 좋지 않다. 출산율이 매우 낮기 때문이다. 젊은 사람보다 나이 많은 사람이 훨씬 더 많다. 따라서 50세, 60세 이상의 사람을 무시한다면 엄청난 노동력 부족이 생긴다. 게다가 이들은 매우 숙련돼 있다. 이전 세대와는 다르게 노화되고 있기도 하다. 내 나이는 만 68세이지만 할머니 세대의 68세와는 전혀 다르다. 심지어 내 어머니도 현재 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 런던경영대학원 내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교수 중 한 명은 80세다. 우리는 이러한 새로운 형태의 노화에 적응해야 한다.”
―한국에서 법정 정년은 60세다.
“그건 큰 실수다. 이걸 전적으로 바꿔야 한다. 왜냐하면 한국은 젊은 사람은 적고 노인은 많은 역(逆)피라미드 인구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는 젊은이들이 노인의 은퇴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60세에 은퇴하고 100세까지 산다면, 이는 당신의 근로 기간보다 은퇴 기간이 더 길다는 걸 뜻한다. 그건 말이 안 된다. 국가가 어떻게 그런 은퇴자들을 부양할 돈을 감당할 수 있단 말인가. 정부가 (정년 연장으로) 국민들이 더 오래 일하도록 독려해야 한다.”
―신기술의 발전 속에 고령 은퇴자들은 대접을 못 받기 쉽다.
“기업들은 나이 차별과 (60세에 은퇴시키는) 비현실적인 태도를 그만둬야 한다. 중요한 건 나이가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사람을 볼 때 주목해야 하는 점은 나이가 아니라 그 사람의 능력이다. 내가 일하는 런던경영대학원에도 정년이 없다. 이 외에도 꽤 많은 곳에서 사람들은 원하는 만큼 오랫동안 일할 수 있다.”
―경력을 바꾸기 쉬운 유연한 노동시장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노동시장이 훨씬 더 개방적으로 변해야 한다. 즉, 사람들이 30세, 40세, 50세에도 회사에 들어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기업은 채용할 때 나이를 고려할 필요가 없다. 단지 그들의 성과를 봐야 한다. 시니어들은 AI 시대 인간 고유의 강점인 공감력이 뛰어나다. 많은 지식과 지혜도 갖추고 있다. 이를 토대로 젊은 사람들에게 멘토와 코치가 돼줄 수 있다.”
―경력 재설계의 좋은 사례를 소개해 달라.
“전 세계에서 많은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영국의 많은 회사와 정부 관련 기관에선 이제 50세를 대상으로 자신의 경력을 재검토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50세가 되어도 사람들이 다음에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격려 중이다. 그래서 영국 노동시장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물론 이런 일을 잘하는 나라가 드물고, 하더라도 그 과정이 매우 느리다. 대부분 ‘70년 숙성된 기술’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한다. 제발 믹 재거(록 밴드 ‘롤링스톤스’의 보컬)를 봐라.”
―한국은 저출산 문제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저출산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전 세계 국가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해결하기가 어렵다. 여성들은 아이를 낳으면 제대로 된 직업을 유지하기 힘들고, 평생 수입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아이를 안 낳으려 한다. (육아휴직자 중 남성이 40%를 넘는) 덴마크에서도 여러 노력을 하고 있지만 여성들은 여전히 아이를 갖지 않으려 한다. 내 생각에는 우리 사회에 아이들을 평가 절하하는 뭔가가 있다. 이게 더 근본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린다 그래턴 교수 |
■ 1955년 영국 리버풀 출생 ■ 1981년 리버풀대 심리학 박사 ■ 1989년 1월~현재 런던경영대학원 교수 ■ 2008년 1월 HSM 컨설팅 설립 ■ 2011년 '싱커스 50(THINKERS 50)' 12위로 선정 ■ 2017년 일본 정부 '인생 100년 시대 구상회의' 자문위원 주요 저서 '일의 미래'(The Shift·2011년), '100세 인생'(Th 100-year life·2016년), '일을 리디자인하라'(Redesigning Work·2022년) 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