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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민국의 케네디’를 기대한다
    스크랩된 좋은글들 2024. 1. 5. 07:52
     
     
    일러스트=이철원
     
     

    지금 이 나라 국민은 사실상 두 동강이 나 있다. ‘보수’와 진보’라는 ‘두 동강’이다. 평화 시에 우리 국민이 이렇게 분열된 적은 없었다. 도대체 왜 그럴까?

     

    그 분열은 문재인 정권에 책임이 있다. 5년 재임 중 그가 입법·사법·행정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보여준 극단적 ‘진보 편향적’ 경향 때문이었다. 그는 그 목적을 위해서는 ‘정의’라는 가치를 과감히 무시하는 것으로 보였다. 참 많은 국민이 분노했다. 그 분노가 진보의 정권 재창출을 좌절시켰을 뿐 아니라 현재 이 거대한 국민 분열의 주범이다.

     

    이 분열, 도대체 어떻게 풀 수 있을까? 미국 역사가 한 가지 단서를 준다. 미국도 한때 그런 분열 시대가 있었다. 흑인 문제 때문이었다. 19세기 남북 전쟁에서 북이 승리함으로써 흑인 노예제 자체는 없어졌다. 그러나 흑인에 대한 지독한 차별은 다른 방식으로 계속되었다. 예를 들어, 식당·극장 등 거의 모든 공공 장소에서 흑인들은 철저하게 격리되었다. 그 차별에 대한 찬반으로 국민도 완전히 두 동강이 나 버렸다.

     

    그 갈등이 정점에 다다른 1961년, 43세의 젊은 케네디가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뉴 프런티어’, 즉 “우리 마음의 국경을 넓히자”고 외치며 흑인에 대한 차별을 없애자고 호소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그는 소위 ‘민권 법안’을 의회에 상정했다. 한마디로 ‘식당에서 흑인들과 딴 방에서 밥 먹는 것을 금지’하는 법이었다. 그것은 많은 백인들에게는 ‘돼지와 한 방에서 식사할 것을 강요’하는 것과 같았다. 당연히 격렬한 반대 운동이 일어났고 그에 버금가는 찬성 운동도 일어났다. 그러면서 국민은 두 동강이 나 버렸다.

     

    그 대결 와중에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해 버렸다. 민권 법안에 대한 찬반에 관계없이 거의 온 국민이 울었다. 케네디의 뒤를 이은 존슨 대통령은 국민에게 호소했다. 우리가 그렇게 사랑한 케네디, 그가 그토록 원한 꿈, 즉 ‘민권 법안’ 통과를 호소했다. 위대한 리더를 잃은 슬픔과 아쉬움이 반대하던 수많은 국민 생각을 바꾸었고, 법안이 의회를 통과했다. 당시에 미국은 그렇게 ‘국민 통합’을 이루었다. ‘위대한 리더’는 그런 것이다. ‘정의’에 입각한 거대한 ‘꿈’을 국민에게 제시하고 그를 향해 스스로 혼신의 힘을 다해 뛰는 리더, 그런 리더가 분열된 나라를 하나로 만들 수 있다.

    두 동강이 나 있는 지금 이 대한민국, 과연 누가 어떻게 통합할 수 있을까? 이 나라에도 케네디가 필요하다. 그 분열 강도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나는 윤석열 대통령이 그런 리더가 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출마 이전에 공인으로서 그가 보여준 투철한 정의감과 용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집권 약 2년이 되면서 사실 나는 그 기대를 접었다. 윤 대통령은 장점이 많은 사람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국민 통합에 필수 요건인 역량 한 가지가 결여되어 있다. 바로 ‘언론 기피증’이다. 국민 통합 과정이란 국민을 설득하는 과정이다. 그런 설득 작업은 오로지 ‘국민과 대화’함으로써만 가능하다. 그것은 언론을 통해 이룰 수밖에 없다. 바로 기자회견이다. 그런 면에서 기자회견을 피하는 윤 대통령이 국민 통합을 이루어 주리라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 생각한다. 참고로 케네디는 미국 역사에서 기자회견을 자주 한 대통령 중 한 명이었다.

     

    야당의 이재명 대표는 어떤가. 그에게는 정치적 역량은 분명히 있어 보인다. 언론을 두려워하기는커녕 사실 ‘언론 다루기’의 명수다. 정치 감각, 순발력 등도 뛰어난 편이다. (그의 빠른 쾌유를 빈다) 그러나 그가 국민 통합을 이루어 낼 가능성도 묘연한 것 같다. 그가 현재 ‘범죄 혐의 백화점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국민 통합의 필수 연결 고리는 항상 ‘정의’이다. 그 점에서 그 역시 적격자가 아니다. 야당에 다른 후보는 없을까? 불행히도 현재는 보이지 않는다.

     

    여당은 어떠한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지난 1년여 동안 그 쪽에는 ‘정치판 신데렐라’가 한 명 탄생했다. ‘한동훈’이란 신인이다. 정치에 대해서는 100% 아마추어였던 그가 불과 1년 남짓 만에 ‘스타 정치가’가 되어 버린 것이다. 급기야 여당의 비대위원장까지 된 그는 이제 차기 대선 주자 선호도에서 1, 2위를 다투는 거물 정치인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다행히 내 눈에는 지금 여당에 한동훈 외에도 가능성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예를 들어 오세훈 서울시장, 원희룡 전 장관 같은 사람이다. 두 사람 다 국회의원, 지방정부 수장, 또는 각료 등을 거치며 공인으로서 충분한 역량을 보여왔다. 그 과정에서 도덕적 흠을 보인 적도 없다. 이재명과 확연히 구별되는 점이다. 나는 솔직히 그들이 한동훈과 경쟁하면서 이 나라 정치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보여 줄 가능성을 기대하게 되었다.

     

    그 새 패러다임이란 한마디로 ‘촌스럽지 않은’ 정치판이다. ‘촌스러움’이란 큰소리, 윽박지름, 한탕주의 같은 것을 통칭하는 단어다. ‘논리와 합리 그리고 증거’로 상대방을 공략함으로써 국민도, 다른 의원도 다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그런 ‘정치 기술’이다.

     

    사실 야당에도 여당처럼 이른바 ‘삼총사’가 나타나야 한다. 현재는 이재명 대표의 위세에 눌려 꼼짝 못 하고 있겠지만, 야당에도 상응하는 능력이 있는 인재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야당에도 “임금님 발가벗었다”고 외치며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사람들이 나타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런 인재들이 나타나 여당 인재들과 한번 멋진 경쟁을 벌일 때 이 나라 정치에 비로소 새로운 지평이 열릴 것으로 믿는다.

     

    지금 이 나라에 ‘정치인’은 너무나 많다. 그러나 나라에 꼭 필요한 사람은 ‘정치인’이 아니다. ‘정치가’이다. 바로 케네디 같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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