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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발의 실탄을 남긴 뜻은스크랩된 좋은글들 2024. 8. 22. 09:51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고향을 떠났던 안중근은 헐벗고 굶주린데다가 어머니가 보고 싶어 어느 추운 겨울 날 고향으로 향했다. 일본 관헌의 눈을 피해 캄캄한 밤을 택하여 겨우 집에 도착한 안중근은 어머니가 기거하는 방 앞으로 가서 조용히 불렀다.
버선발로 뛰어나와 반갑게 맞아줄 것으로 생각했는데 어머니의 반응은 전연 뜻밖이었다. 방안에서 어머니의 냉냉 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 아들은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우러 나가고 없다. 내 아들이 아직 큰일을 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는데 누가 와서 나를 부른단 말이냐?”
안중근은 서럽고 기가 막혔다. 그러나 다음 순간 크게 깨달았다. ‘그렇다 어머니의 말씀대로 대장부가 뜻을 세웠다면 큰일을 할 때까지는 모든 것을 잊고 전념해야한다. ’
안중근은 다시 그 밤길에 만주로 돌아갔다. 1909년 10월 26일 만주 할얼빈역 프렛홈에서 안중근의사는 가슴에 품고 있던 8연발 브라우닝 권총을 꺼내 민족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통렬한 방아쇠를 당겼다.
이날 안중근의사는 모두 일곱 발을 발사했다. 이 가운데 세발은 이토를 명중시켰고 나머지 세발은 옆에 서있던 카와가미 도시히코 총영사와 모리타이지로 비서관, 남만주 철도주식회사 이사인 다나카 세이타로를 맞혔으며 한발은 빗나갔다.
안중근의사는 현장에서 즉시 일본헌병에 의해 체포되었다. 이때 안중근의사 권총에는 총알 한발이 남아 있었다. 남은한발로 자신을 체포하려고 달려드는 일본헌병을 쏠수도 있었다. 그러나 안중근의사는 이한발을 쏘지않았다. 그리고 해야할일을 다했다는 듯 늠늠한 자세로 순순히 체포되었다.
이일은 한일본인의 뇌리에 깊이 남겼다. 그는 다름아닌 안중근의사의 총알에 가볍게 맞아 경상을 입은 다나카였다. 그는 임기를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가 고노다 세멘트 회사의 고문으로 취임했다. 그는 어느날 비서에게 당시 상황을 술회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헌병들이 안의사를 체포한후에 마지막 실탄 한발을 발사하지않았다는 말을 듣고 발사하지 않은 한발의 총탄은 안중근의사의 인격을 상징하는 것이라 생각했고 그것은 내 평생 가장 감동적이라 했다.
비서는 안의사를 미워할 다나카가 안의사를 찬양하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느날 다나카에게 이렇게 물어봤다.
“일본인을 포함해 지금까지만난 사람 가운데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누굽니까?”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바로 안중근의사라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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