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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멸이냐 상생이냐
    스크랩된 좋은글들 2024. 12. 9. 09:09

    두 세대 만에 선진국 부상한  한국 현대사 세계 학계 연구 대상  번영과 성취, 계속될 수 있을까  한국 헌정사 또 한번 큰 상처   힘써 하는 싸움 나라 위한 건가  공도동망 對 국가 재건   공멸·상생 중 어디로 가나

    입력 2024.12.09. 00:15업데이트 2024.12.09.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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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럼프 2기 정권은 벌써 중국과 결전을 예고하며 동맹국에 청구서를 들이대고 있다. 경제난에 봉착한 중국은 위기의 출구를 찾아 대만 해협을 도발할 기회를 노린다. 그 비좁은 해협의 물동량이 세계 무역 총액의 20%가 넘는다. 일촉즉발의 양안에서 불상사가 터지면 직격탄을 맞을 나라는 대한민국이다. 절체절명 상황임에도 한국 정치는 또다시 급변의 소용돌이로 다이빙했다.

    현행 제도상 지난 총선에서 득표율 50.5%로, 46.6%를 얻은 여당보다 무려 74석을 더 가진 거대 야당은 현 정부 관료 탄핵 소추를 24건 남발하고 민생 치안 주요 예산과 대통령실 특활비를 전액 삭감하면서 정권을 궁지에 몰아넣었다. 대통령은 예고도 없이 야심한 시각에 뭔가에 홀린 듯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겠다며 비상계엄령을 선포했고, 2시간 만에 국회가 계엄 해제를 요구하자 국무회의를 거쳐 그 요구를 받아들였다. 놀랍게도 계엄 선포 후 최초로 군이 투입된 기관은 국회가 아니라 중앙선관위원회였다.

    영문 모를 일들이 마구 터질 때, 국회는 내란죄에 덧붙여 무속인에게 빠진 죄, 중·러·북을 적대시하고 친일 외교를 펼친 죄까지 들어서 대통령을 탄핵 소추했지만, 만신창이가 된 대통령은 가까스로 자리는 지켰다. 이 모든 일이 불과 나흘, 90여 시간 안에 일어났다. 전광석화의 K정치는 ‘리얼리티 정치 쇼’의 신기원을 이뤘지만, 한국 헌정사는 또 큰 상처를 입었다. 실로 내전 같은 정쟁이다. 조선의 무신 이덕일(李德一)의 시조가 떠오른다. “힘써 하는 싸움 나라 위한 싸움인가?”

    역사학에선 민생과 국익을 해치는 정계의 극한 대립을 당파 싸움(factional struggle)이라 한다. 동서고금 어디서나 당파 싸움이 일어난다. 북송(北宋) 황실 정치도 군자당과 소인당의 투쟁사였고, 조선 조정도 사색당쟁의 무대였다. 미국의 국부(國父)들은 17세기 영국 내전을 거울삼아 파벌주의를 경계했지만, 제도적으로 당파 싸움을 막기 힘듦을 깨닫고 절망했다. 그 모든 사례에 비춰봐도 오늘날 한국의 정쟁은 극단적이고, 감정적이며, 즉흥적이고, 파괴적인 양상을 보인다. 사회 모든 분야가 앞서가는데 정치만 왜 뒤로 가는가? 서방의 민주주의를 졸속하게 빌려 쓰다가 의회주의의 가장 중요한 정신 하나를 빼먹었기 때문이다.

    그 정신이란 바로 파당적 이해관계를 벗어나 국익과 공공선을 실현하는 초당파주의(bipartisanship)를 이른다. 중국 공산당은 미국 의회를 비판할 때마다 극렬한 양당의 투쟁이 국정 효율성을 막고 입법 지체를 초래한다고 지적한다. 그런 면이 없진 않지만, 240년 미국 헌정사에선 대통령이 단 한 명도 탄핵당해 파면되지 않았고, 국가적 위기에도 의회 독재는 일어나지 않았다.

     

    미국 의회는 예측 불허의 정치극이나 급변 상황을 좀처럼 용납하지 않는다. 반면 격렬하게 싸우다가도 국가의 중대사에는 민주·공화 양당이 기민하게 ‘원 팀’을 이루는 사례가 흔하다. 덕분에 장기적 국책 사업과 중대한 국가 안보상 기본 정책은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유지된다. 다수 정치인이 신중과 절제의 미덕, 혁신과 적응 능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1991년부터 2021년까지 거의 3000건에 이르는 미국 의회의 표결 결과를 분석한 정치학 연구에 따르면, 민주당과 공화당이 초당적 합의에 도달한 사례는 국내 정책 문제에선 63%, 국제 정책 문제에선 76%나 된다. 최근 20여 년 한국 정치에서 초당파적 협치의 광경을 본 기억이 있는가. 사생결단 정쟁으로 시소게임 놀 듯 네 번 정권 교체를 이뤘을 뿐.

    두 세대 만에 선진국으로 부상한 대한민국 현대사는 세계 학계의 연구 대상이다. 그럼에도 혼탁한 한국 정치판을 볼 때마다 “나라가 나라가 아님”에도 망하지 않은 이유는 하늘의 도움이라는 류성룡(柳成龍)의 문장이 생각난다. 북핵을 머리에 이고 살아야 하는 대한민국은 이미 여러 분야에서 중국에 기술력을 추월당한 상태다. 지금껏 누려온 번영과 성취가 계속될 수 있을까? 바로 지금 나라가 존망의 기로에 서 있다고 하면 기우일까? 길어야 10년, 짧으면 3년 안에 국운이 결정된다면 과장일까? 계엄에서 탄핵까지 나흘간 숨 가쁘게 벌어진 이 불행한 소극(笑劇·farce)의 의미는 무엇인가? 공도동망(共倒同亡)의 나락인가? 국가 재건의 험로인가? 과장이고 기우이길 바라며 묻지 않을 수 없다. 공멸이냐, 상생이냐? 그것이 진정 문제이기 때문이다.

     

    2024년 12월 9일 조선일보 송재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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