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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기예보를 보니 오후 2시부터 비 그전에는 눈이 온다고 했다. 눈길 속 남산을 걷고 싶어 남산으로 향했다. 가면서 유관순열사, 이승만 대통령 동상을 카메라에 담았다. 몇일전 삼일절이 지나긴 했지만 유관순 열사동상을 보니 현시국 상황에 너의들은 무엇들 하는가 꾸짓는것 같아 내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다.
아침 일찍이라 그런가 남산 산책로에는 별로 사람이 없었다. 차츰 눈이 오기 시작했다. 남산길을 산책할때면 안중근 기념광장에는 자주 가는 편이다. 그곳에는 안중근의사 동상과 안중근의사 유묵들이 전시되고 있다. 안중근 의사 기념광장에 있는 '견리 사의 견위 수명'의 안중근의사 유묵을 대할 때면 마음속으로 내좌우명으로 삼고 싶기도 하다. 비록마음뿐이지만~~
안중근의사 기념관 광장을 거쳐 팔각정으로 향했다. 눈길이라 조심하면서 올라갔다. 힘들게 올라갔다. 팔각정에서 내려올때는 셔틀 뻐스로 내려왔다. 이제 눈길 남산길을 걸어보는 것도 마지막이 아닐까 싶다. 힘들기도하고 이제 눈이 와봤자 비로 바로 바낄것이니까~~
2025년 3월 4일
` 유관순 여사는 1902년 12월 16일 (음력 11월 17일) 충남 목천군 이동면 지령리 ( 현주소 충남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유관순생가길 18-2) 에서 아버지 유중권과 어머니 이소제 사이의 3남2녀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이화학당 보통과를 거쳐 1919년 고등과 1학년 에 입학한 유관순열사는 서명화, 김복순, 김희자, 국현숙 등과 ‘5인결사대’를 결성하여 대한문 앞에[서 망곡(望哭)을 한뒤 3.1만세운동에 참여했다.
휴교령이 내려져 고향으로 내려온 유열사는 학교, 교회와 유림 등을 방문하여 만세 운동을 협의하고 4월 1일 아우내 장터에서 3,000여군중에게 직접 제작한 태극기를 나누어주며 시위를 이끌었다. 이날의 시위에서 부모를 비롯하여 19명이 일본 헌병에게 피살되었고 자신은 시위 주동자로 체포되었다.
유열사는 공주에서 5년 징역형을 받았는데 경성복심법원에서는 당시 소요죄최고형인 8년형을 선고받았다. 서대문 형무소에서도 끊임없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자 지하 감방에 가두고 모진고문을 하였지만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런데 체포 당시 당한 부상과 지속되는 고문을 으로 끝내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한 채, 1920년 9월 28일 오전 8시 20분 서대문 형무소의 어두운 감방에서 순국하였다. 그러나 대한의 딸 유관순은 이곳에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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