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왜 우리는 잘못된 지도자를 선택하는가
    카테고리 없음 2025. 4. 28. 08:10
     
     

    나는 국가를 선택하지 않았다. 국가도 나를 뽑지 않았다. 국가와 나는 서로 선택하지 않았는데도 맺어진 관계다. 선택하지 않았는데 맺어진 관계, 이런 관계는 너무 삼엄해서 분리가 쉽지 않다. 때로 국가의 흥망 존속과 나의 운명이 비상하게 결부될 때도 생긴다. 내가 조국을 버릴 수 있고 조국도 나를 버릴 수 있다는 것은 관계 파탄과 절망감을 문학적 상상력으로 뱉어낸 것일 뿐이다. 나는 국가를 선택할 수 없었지만 국가 지도자는 선택할 수 있다. 대통령 선거는 국가라는 추상적 구성체를 대통령이라고 하는 실체적 법인격으로 환치시키는 작업이다. 대통령은 국가를 대표하기 때문이다. 국가는 나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주는 대신 나에게 국방과 납세 같은 의무를 이행토록 강제할 수 있다. 국가는 의지를 가진 인격체가 아니므로 대신 대통령 정부가 나에게 세금을 부과하고 모아서 그것을 국가 예산으로 집행할 수 있도록 위임받았다.

     

    이제 나는 개인적으로 아홉 번째 대통령 선거를 코앞에 두고 있다. 회사에서 가까운 대형 서점에 들렀더니 평대에 브라이언 클라스의 ‘권력의 심리학’이란 책이 놓여 있는데, 검은색 띠지에 ‘왜 우리 손으로 괴물을 뽑는가’라고 쓰여 있었다. 불에 덴 듯 눈길을 끌기는 했지만 말이 좀 과하다 싶었는데, 결국은 ‘왜 우리는 잘못된 지도자를 선택하는가’에 대한 질문과 대답이었다. 클라스는 명문 대학인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교수인데, 그는 “잘못된 관리인에게 ‘어둠의 3요소’라는 전형적인 신호가 드러난다”고 하면서 그것을 마키아벨리즘, 나르시시즘, 사이코패스 성향으로 요약했다.

     

    지금 대권에 도전하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어둠의 3요소’에 이리저리 겹쳤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권력 의지가 왜곡된 정치인일수록 그런 성향들로 비판을 받기도 했다. 서점에서 나오는데 일요 집회가 있었고, 초대형 스피커를 통해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선지자입니다. 내가 한 말 중에 틀린 말이 있었습니까”라고 외쳤다. ‘선지자’라는 말에 내 귀가 놀랐다.

     

    엊그제 유튜브 방송 동료들과 보수 우파 후보들을 놓고 점수를 매겨본 적이 있다. 채점표 항목에는 ‘인기도, 정치 행정 능력, 국제적 감각, 청렴함, 신뢰도, 리스크’ 등 6가지를 담았다. 점수로 육각형을 만들어 경쟁력을 따졌는데, 1위와 꼴찌는 상당한 격차가 있었다. AI에 물었더니 ‘비전, 도덕성, 통합력, 정책 실현 가능성, 국민과 소통 능력 등을 봐야 한다’고 대답했다.

     

    말은 아름다웠지만 실감은 나지 않았다. 그 말이 그 말 같고, 하나마나한 말 같고, 돌아서면 잊힐 말 같았다. ‘비전’은 믿을 수 없고, ‘청렴과 도덕’을 따지기엔 유권자들이 너무 지쳤다. 기준도 모호하다. 비위 혐의로 다섯 재판을 받고 있는 후보가 큰 차이로 지지율 1위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무엇을 따진단 말인가.

     

    차라리 ‘사위를 삼는다면 누구인가’ ‘어떤 후보가 시아버지였으면 좋겠는가’ 같은 질문이 피부에 와닿지 않을까. 돈을 꿔줬을 때 약속한 날짜에 정확하게 돌려줄 사람은 누굴까. 총알이 날아오는 곳에서 적진을 돌파하는 군인이라면 어떤 후보에게 당신의 등을 맡기겠는가.

     

    성경 일화처럼 먼 곳 떠나는 주인이 금돈 다섯 달란트를 맡겨야 한다면 어떤 종을 고르겠는가. 이번 선거는 대통령이란 직책에 당신의 위임을 받아서 임기 동안 국가 예산 수천조 원을 쓸 종복을 뽑는 일이다. 국가와 나는 한 몸이다. 우리는 무엇을 보고 국가를 맡기는가. 우리는 왜 가짜에게 더 끌리는가.

     

    2025년 4월 28일 조선일보  김광일 기자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