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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선 후보 허위 발언, 이렇게 무모해도 되나
    스크랩된 좋은글들 2025. 5. 30. 06:40

    선거 때 거짓말에 '숨 쉴 공간'이란  새 판례를 확립한 李…  가족과 최측근들이   줄줄이 기소돼  100% 유죄가 나왔는데
    "부정부패 없다"니

     
    이재명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25일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모두 발언하고 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자신과 가족, 측근의 부정부패 범죄가 없다는 취지의 주장을 펼쳤다. /뉴스1
     

    선거 때 거짓말을 엄중히 다뤄야 하는 것은, 당락에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후보자 자질과 직결되는 도덕성·정직성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에서도 팩트에 어긋나는 허위성 발언이 여러 건 나왔다. 이재명 민주당 후보는 ‘부정선거론에 동조한 적 없다’는 해명이 오류로 드러났다. 2017년 대선 당시 소셜미디어에 ‘국가기관의 선거 개입’ ‘개표 부정’ ‘수개표 필요’라며 음모론과 똑같은 주장을 올린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HMM 직원들도 본사 이전에 동의” “정부가 일산대교 무료화 무산시켜” 주장도 실제와 차이가 컸다.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 역시 ‘전광훈 목사 때문에 눈물 흘린 적 없다’는 취지로 답변해 민주당에 고발당했다. ‘이재명 방탄’을 위해 허위 사실 공표죄를 축소하겠다면서도 남에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민주당의 내로남불이 우스꽝스러우나, 김 후보 발언이 사실과 다른 점은 분명했다. “우리 목사님 잡혀가면 절대 안 되고”라며 울먹이는 2019년 동영상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의 ‘캐나다가 외국인 최저임금 차등화’ 발언도 사실 오인이었다. 후보들 기억이 가물가물했거나 단순 착각일 수 있다. 그렇다면 오류를 인정하고 바로잡으면 될 문제이나 지금껏 그런 장면은 나오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최악은 이재명 후보의 ‘부정부패 없다’ 발언이었다. 그는 지난 주말 기자 간담회에서 “나도 가족도 부정부패를 저지르지 않는다”는 주장을 펼쳤다. “평생 업자들을 사적으로 만나 본 적도 없다. 철저하게 관리해서 주변 사람들이 실제 부정부패를 저지르거나 범죄에 연루돼서 권력을 이용해 막아야 할 그런 일이 없다”고 했다. 질문받고 즉흥적으로 나온 대답이 아니었다. 이 후보가 먼저 꺼낸 얘기니 작정하고 준비한 말이었을 것이다. 자신은 윤석열 정권과 다르다는 점을 강조할 의도로 보였다.

     

    이 발언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실과 달랐다. 우선 이 후보 본인부터 다른 법도 아닌 ‘부패방지법’ 등 위반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대장동·백현동·위례 개발의 민간 업자에게 특혜를 주어 수천억 원의 공공 손실을 초래했다는 혐의다. 이 후보는 경기도 예산과 법인 카드 1억여 원을 식비·생활비 등에 쓴 혐의로도 기소됐다. 아내 김혜경씨 역시 법카로 선거운동 식대를 지불해 1·2심 유죄 판결을 받았다.

    측근들은 줄줄이 감옥에 들어갔다. 최측근 정진상씨는 대장동 업자들에게 뇌물 2억여 원, 이권 428억원을 받았거나 받기로 약속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또 다른 최측근 김용씨는 선거 자금 6억원과 뇌물 7000만원을 받은 혐의가 1·2심 모두 유죄로 인정됐다. 과거 이 후보의 선대위원장이었던 김인섭씨는 백현동 로비의 성공 보수로 74억여 원을 챙겨 징역 5년형이 확정됐다. 측근들 범죄 모두가 공적 권한을 매개로 한 전형적인 권력형 비리였다.

     

    이 후보가 경기지사 때 평화부지사였던 이화영씨의 범죄 행각은 거의 파렴치범 수준이었다. 그는 대북 송금 800만달러를 쌍방울에 대신 내게 한 혐의로 1·2심 유죄 판결을 받았다. 기업 법카를 받아 3억여 원을 긁고, 월세·리스료 등을 대납하게 하거나 자신을 직원으로 등재시켜 급여 명목으로 뇌물을 챙긴 혐의도 있었다. 그런데도 이 후보는 “주변 사람의 범죄 연루가 없다”고 했다. 명백한 사실조차 전면 부인하는 그 정신세계가 놀라웠다.

     

    그는 역대 어느 대권 주자보다 광범위한 부정부패 사건에 연루됐지만, 모든 것이 “검찰의 조작”이란 논리로 피해 가려 했다. 윤 정권이 정적(政敵)을 죽이려 “증거를 조작하고 사건을 아예 새로 만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가족·측근들 재판 중 지금까지 선고가 나온 9건 모두 100% 유죄로 결론 났다. 그것도 징역 9년 6개월, 5년형 같은 중형이 줄줄이 내려졌다. 검찰의 조작이라면 판사들도 집단적으로 조작에 가담했단 말인가.

     

    정상적 상황이라면 이 후보 발언은 선거법상 허위 사실 공표죄에 해당될 가능성이 있다. 본인도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사실과 틀리는 말을 서슴지 않는 것은 선거만 이기면 만사 해결이라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민주당은 허위 사실 공표죄를 축소하는 선거법 개정안을 대선 직후 국회에서 통과시킬 방침이다. 이 후보가 대법원 유죄 판단을 받은 ‘국토부 협박’ 발언에 대한 방탄용 입법이지만, 이 법안이 통과되면 웬만한 거짓말은 다 처벌에서 빠진다.

     

    이 후보는 선거 거짓말의 법적 허용 범위에 대해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사람이다. 2018년 지방선거 때 ‘친형 강제 입원 안 시켰다’ 발언이 2020년 대법원에서 권순일 대법관 주도 아래 무죄로 뒤집히면서 ‘숨 쉴 공간’이라는 획기적 판례를 확립시켰다. 민주당이 추진하는 선거법 개정안까지 통과되면 허위 발언을 막을 법적 제동 장치가 사실상 무력화되어 버린다. 출마자가 마음 놓고 거짓말해도 되는 세상이 된다. 이것이 우리가 바라는 민주주의인가.

     

    2025년 5월 30일 조선일보 박정훈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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