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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걸어온길낙서장 2025. 6. 4. 07:10
어제 6월 3일 제 21대 대통령선거에서 이재명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걸온길이란 기사가 있었다.
"인생의 밑바닥부터 기어 올라왔다"… 소년공, 대통령에 오르다
이재명 대통령은 4일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을 포함해 세 번째 도전 만에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그는 소년공(少年工) 출신이다. 이 대통령은 과거 자신의 책에서 “나는 겁이 없다”며 “날 때부터 강심장이어서가 아니라 인생의 밑바닥에서부터 기어 올라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재명 대통령 연표를 보면
1963년 경북 안동출생(호적상은 1964년), 1976년 안동 삼계 초 졸업, 1978년 중졸검정고시합격, 1980년 고졸검정고시합격 1982년 중앙대 힙학. 1986년 중앙대 법대졸업, 제 28회 사법시험합격, 1989년 사법연수원 18기 수료, 경기 성남에 변호사 사무소 개업, 1991년 김혜경여사와 결혼 슬하 2남, 1994년 성남참여연대 집행위원장, 2004년 성남시립병원 설립주도, 2005년 열린 우리당 입당, 2010년 성남시장 당선, 2014년 성남시장 재선 2017년 더불어 민주당 대선 경선후보 (3위), 2018년 경기지사 당선 2022년 3월 민주당 20대 대통령후보, 2022년 6월 민주당 21대국회의원(인천계양을 보궐선거) 22년 8월 민주당 당대표 2024년 4월 제 22대 국회의원 (인천게양을), 2024년 8 민주당 당대표연임, 2025년 6월 4일 제 21대 대통령당선 되었다.
이 대통령은 1963년(호적에는 1964년) 경북 안동에서 부친 이경희씨와 모친 구호명씨 사이에서 7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이 대통령이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온 가족이 경기 성남시로 이주했다. 가난 때문에 중학교에 못 갔고 성남 상대원 공단에 있는 공장에 취업했다. 취직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어서 다른 사람 이름을 빌렸다. 이 대통령 스스로 “위장 취업의 원조”라고 한다.
6년 동안 소년공으로 공장 6곳을 전전했다. 야구 글러브를 만드는 공장에서 가죽을 누르는 프레스에 왼쪽 팔뚝이 눌리는 사고를 당했다.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한 왼팔은 점점 휘었고 장애 6급 판정을 받았다. 이 장애로 병역을 면제받았다. 이 대통령은 이 시기 두 번이나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다고 한다. 하지만 수면제를 달라는 소년 이재명에게 약사들이 몰래 소화제를 내줘 목숨을 건졌다.
이 대통령은 공장에서 자신을 못살게 구는 간부가 ‘고졸(高卒)’이라는 걸 알고는 검정고시 공부를 시작했다. 공장 간부가 되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고학(苦學)을 시작해 1978년 중졸, 1980년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고졸 자격증을 따니 대학에 가고 싶어졌다고 한다. 이 대통령은 이때 졸지 않으려고 책상에 압정을 뿌려놓고 하루 2시간씩 자며 대입 학력고사를 준비했다.
이 대통령은 1982년 중앙대 법대에 입학했다. 대학을 졸업한 1986년 제28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에서 판검사 임용이 가능한 성적을 받았지만 변호사를 택했다. 진로를 택하기 전 ‘검사를 해볼까’ 마음이 흔들렸다고 한다. 하지만 대학 시절 학생운동에 참여하지 않은 데 대한 부채 의식이 있었고, 연수원에서 당시 변호사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강연을 듣고 인권 변호사를 결심했다고 한다. 판검사가 되길 바랐던 어머니에게는 “판검사를 할 연수원 성적이 안 된다”고 거짓말을 했다.
이 대통령은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1989년 성남에 변호사 사무실을 냈다. 경기 이천·광주의 노동상담소장도 맡았다. 변호사이자 시민 활동가의 삶을 시작한 것이다. 성남 분당 파크뷰 특혜 분양 사건을 고발했고, 성남시립병원 설립 운동을 주도했다. 이 과정에서 정치 참여를 마음먹었다고 한다. 이 대통령은 성남 시민 서명을 받아 시립병원 설립 조례안을 발의했지만 시의회에서 불과 47초 만에 부결됐다. 이에 시민들이 항의하다 몸싸움이 벌어졌고 이들의 대표 격인 이 대통령에겐 수배령이 떨어졌다. 이 대통령은 “주민교회 지하 기도실에 숨어 몇 날 며칠 고민하다 내가 시장이 돼서 내 손으로 병원을 짓겠다고 결심했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2005년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열린우리당에 입당했다. 하지만 2006년 성남시장 선거, 2008년 경기 성남 분당갑 국회의원 선거에서 떨어진 뒤 2010년 세 번째 도전 만에 성남시장에 당선됐다. 2014년 재선에 성공한 이 대통령은 청년 배당과 무상 교복, 무상 산후조리원 등 ‘3대 무상 복지 정책’을 추진해 중앙 정계에도 이름을 알렸다.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 때는 민주당 정치인 중 가장 먼저 ‘박근혜 퇴진’을 주장하며 전국구 정치인으로 도약했다. 이 대표는 “성남시장 때가 인생을 통틀어 가장 행복했다”고 말한다.
이 대통령은 2017년 민주당 대선 경선에 출마했다. 팬클럽 ‘손가락혁명군’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지만 문재인 전 대통령,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 이어 3위를 했다. 하지만 이 경선을 통해 차기 대선 주자로서 입지를 다졌다. 2018년엔 경기지사에 당선되며 정치적 체급을 키웠다.
이 대통령은 2022년 대선 전까지만 해도 민주당의 비주류 정치인이었다. 2017년 대선 경선 때 문 전 대통령을 거칠게 몰아붙여 친문(親文·친문재인) 세력의 미움을 샀기 때문이다. 문 전 대통령이 취임한 뒤 당시 친문 주류 세력으로부터 정치적 공격을 받았고 일부 친문 지지자는 그의 제명을 요구했다. 하지만 경기지사를 하며 당내 기반을 넓힌 그는 2022년 대선 경선에서 문재인 정부 초대 총리와 민주당 대표를 지낸 이낙연 전 의원을 누르고 민주당 후보가 됐다. 이 대선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패했지만 곧바로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나가 당선됐고, 그해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선 77.77% 득표율로 당대표에 선출됐다.
이 대통령은 작년 4월 총선에서 친명(親明·친이재명) 인사들을 대거 공천했다. 반대파에선 이른바 ‘비명(非明·비이재명) 횡사, 친명 횡재’ 공천이라고 비판했다. 이 바람에 민주당 지지율이 한때 하락했지만 총선 결과는 민주당이 175석을 차지하며 압승했다. 공천 파동을 잠재우며 압도적 과반 의석의 제1 야당을 구축한 이 대통령은 독보적 리더십을 바탕으로 작년 8월 당대표 연임에 도전해 85.4% 득표율로 당선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첫 민주당 당대표 연임이었다.
이 대통령은 정치적 경력을 쌓아오는 과정에서 각종 형사 재판에 휘말리며 정치적 벼랑 끝에 내몰렸다. 하지만 그때마다 무죄 등 반전의 결과를 이끌어내며 정치적 입지와 영향력을 키웠다. 경기도지사이던 2019년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2심에서 당선 무효형에 해당하는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이듬해 대법원에서 무죄로 뒤집혔다. 대법관 의견이 7(무죄) 대 5(유죄)로 나뉠 정도로 아슬아슬했다. 2023년 9월엔 이 대통령에 대한 국회 체포 동의안 표결에서 ‘민주당 반란표’가 나오며 가결됐지만, 법원에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이 대통령은 최근까지 형사 재판 5개를 받아 왔다. 지난달 1일엔 대법원에서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이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됐지만 형이 확정되기 전에 대통령에 당선됐다.
2025년 6월 4일 조선일보 기사에서 발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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