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와 한국인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뗄 수가 없는 관계가 있다. 제주도에서는 아기가 태어나면, 대나무 바구니 '애기구덕'에 눕혀 재웠다. 아기가 자라면, 대나무 젓가락으로 음식을 먹는다. 남자들은 대나무로 만든 붓을 사용하였고, 대나무 활을 쏘며 자랐다. 여름에는 부채나 죽부인을 사용하였고, 늙어서는 대나무 지팡이를 의지하였다. 꼬부랑 할머니가 꼬부랑 고갯길을 대나무 지팡이를 짚고 걷는 모습이 연상된다.
특히 아버지 상(喪)을 당하면, 둥근 대나무 지팡이를 짚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네모난 오동나무 막대기를 짚었다. 여자들도 비슷하다. 참빗으로 머리를 빗고, 어른이 되면 대나무 비녀를 사용하 였다. 또 대나무 바구니를 사용하고 피리나 생황을 연주하였다. 말 그대로 요람에서 무덤까지 한국인은 대나무와 관계가 깊다. 대나무 는 한국인에게 참 각별한 나무다.
대나무가 한국인에게 호감을 주는 것은 단순히 생활용품 때문만은 아니다. 물질적인 활용보다는 정신적인 의미가 더 깊다. 한국인 에게 대나무하면 떠오르는 것은 '대쪽 같은 선비정신'이다. 대나무 는 소나무 같은 위용이 없다. 매화 같이 아름다운 꽃도 없고, 난초 같은 향기도 없다. 그러나 제자리를 지키며 불의에 굴하지 않는 '대쪽 같은 올곧음'이 있다. 그래서 검찰로고의 다섯 개 기둥도 대나무 이다. 대나무는 죽을지언정 꺾이지 않는다. 그러기에 특히 선비들은 대나무를 사랑하였다.
당나라 시인 백거이(772~846)는 양죽기(養竹記)란 시에서 대나무의 네 가지 덕을 말한다. 첫째, 대나무는 뿌리가 단단하니(固) 흔 들리지 않고 덕을 세운다. 둘째, 줄기가 곧으니 남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를 세운다. 셋째, 속이 비어 있으니 욕심 없이 도를 배울 수 있다. 넷째, 마디(節)가 있어 뜻을 세우고 어려움을 헤쳐나 갈 수 있다. 이런 것이 바로 군자의 품성이다.
그래서 선비들은 정원에 대나무를 심어 놓고 감상하며 묵화를 그리기도 했다. 고려 문인 서견은 대나무를 이렇게 노래하였다. 눈 맞아 휘어진 대를 뉘라서 굽다던고 굽을 절(節)이면 눈 속에 푸를소냐? 아마도 세한고절(歲寒孤節)은 너뿐인가 하노라
세한고절이란 심한 추위에도 홀로 꼿꼿하고 푸른 대나무를 의미 한다. 이처럼 대나무는 충절과 절의를 잘 나타낸다. 고산 윤선도는 보길도에서 고난과 고독의 시간을 보내며 유명한 '오우가'를 지었다. 다섯 친구는 물(水), 돌(石), 소나무(松), 대나무(竹), 달(月)이다. 윤선도는 대나무를 이렇게 노래했다.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누가 시키며 속은 어이 비었는가 저렇게 사시(四時)에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 윤선도가 만든 보길도의 부용동 원림은 조선의 3대 원림 중 하나 로 손꼽힌다.
정몽주와 대나무는 깊은 관계가 있다. 정몽주가 이방원에게 살해된 다리를 선죽교라 부르는데 핏자국에서 대나무가 돋아났기 때 문이다. 경부고속도로에 죽전휴게소가 있다. 죽전(竹田)의 유래는 이렇다.
정몽주의 시신은 개성에 묻혀 있다가 19년 뒤, 고향 영천으로 이장하게 되었다. 영구행렬이 용인 풍덕천에 이르자, 갑자기 돌풍이 불어 명정이 하늘높이 날더니 용인 묘현에 떨어졌다. 신기하게 여긴 이들은 이를 정몽주의 뜻이라 생각해 그곳에 무덤을 만들었다. 그래서 이곳을 충신의 절의와 덕망을 기리어 죽절(竹節)이라 부르다가 후에 죽전이 되었다. 지금 죽전을 지나며 수원, 용인, 광주를 잇는 도로가 포은대로이다.
2025년 8월 9일 이경용지음 고난애 대한 정약용과 욥의 대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