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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도계가 필요한 디지털 시대스크랩된 좋은글들 2025. 8. 22. 06:22
키오스크 앞, 일흔쯤의 할머니가 한참 서성인다. 작은 화면, 낯선 버튼을 누르다가 길을 잃었다. 몇 번 허둥대다가 직원에게 말을 건넨다.
“직접 주문은 안 되나요?”
무인 주문만 가능하다는 대답만 돌아온다. 다시 노인의 손이 화면 위를 맴돈다. 손가락이 떨리고, 시선은 흔들린다.
시간에 쫓기는 사람들의 표정이 줄을 선다.
“아래 파란 메뉴 버튼 누르세요.”
직원의 말투가 차갑다. 뒤에서 지켜보던 내가 다가가, 화면을 함께 바라보며 묻는다.
“매장에서 드시려면 아래 버튼을 눌러야 해요. 어떤 음료를 좋아하세요?”
마침내 주문을 끝냈지만, 노인은 무인 주문기 앞에서 세상의 흐름에서 밀려난 기분일 것이다.
디지털은 편리함과 효율을 앞세운다. 작은 글씨, 복잡한 화면, 되돌릴 줄 모르는 선택 앞에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자니 부끄럽다. 헤매자니 미아가 되었다는 생각에 자존감이 무너진다.
기술은 모두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많은 지자체와 기관들이 노인을 위한 디지털 교육을 시행한다. 문제는 그들이 배우지 못해서가 아니라, 기술이 그들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은 남겨두고 다음 기술로 넘어간다.
차가운 디지털에 따뜻한 아날로그의 감성을 더하는 기술은 우리 마음속에 있다. 키오스크 앞에 노인이 섰을 때, 직원이 다가가 친절하게 가르쳐주면 좋겠다. 일하기 바쁘다는 핑계가 있겠지만, 그 또한 손님을 응대하는 일이 아닌가. 아니면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는 젊은이가 도와주면 좋겠다. 이러한 배려를 반복하면 노인도 점차 적응하며 느리나마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다.
문명의 속도 앞에서 얼음처럼 굳어버리는 사람, 그들의 체온은 어디쯤 머무는지. 속도계와 온도계를 맞보게 세워놓고 한번 재보고 싶다.
‘속도계’로만 문명을 재다 보면, 그 속도에 따라가지 못하는 이들은 자연스레 소외된다. 기술이 진정 모두를 위한다면, ‘온도계’도 함께 놓아야 한다. 얼마나 따뜻한지, 인간적인지를 함께 재야 한다. 인간이 만든 기계문명이지만 그 쓰임은 따뜻해야 하기 때문이다. 2025년 8월 22일 조선일보한승남 2025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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