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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 문화의 새 모범 보여준 이준용 대림 회장스크랩된 좋은글들 2015. 8. 19. 08:13
기부 문화의 새 모범 보여준 이준용 대림 회장
이준용 대림산업 명예회장이 재단법인 '통일과 나눔'에 대림산업과 관련한 주식 등 2000억원의 전 재산을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통일과 나눔 재단은 민간 차원에서 통일을 준비하기 위해 설립된 단체로 통일 단체와 탈북자 지원 활동 등을 펴나갈 계획이다. 이 회장은 "후손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통일"이라며 "일반 국민들이 십시일반으로 통일나눔펀드에 작은 정성을 보태는 것을 보고 감동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국내 대기업 총수 중에서 공익사업에 자신의 전 재산을 내놓은 것은 드문 사례다. 지금까지 이 회장보다 더 많은 액수를 기부한 재벌 총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차명(借名) 계좌 문제 등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데 따른 비판 여론을 무마하기 위한 측면이 있어 순수한 기부로 보기 어렵다.
더욱이 이 회장은 장학 재단 등을 설립해 재산을 기탁하는 일반적인 관행을 따르지 않았다. 그는 "내 이름을 걸어서 재단을 새로 만들고 운영해도 되지만 그게 다 비용이 들어가는 것 아니냐"고 했다. 자신의 이름을 남기려 하기보다 이미 활동 중인 공익 법인 중에서 좋은 일을 하는 곳을 골라 기부 재산이 제대로 쓰이도록 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그래서 이 회장의 기부는 훨씬 신선하고 진정성 있게 느껴진다.
이 회장은 평소에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해온 대표적인 기업인으로 꼽힌다. 1998년에는 외환위기로 회사가 어려워지자 350억원어치의 개인 재산을 아무 조건 없이 대림산업에 출연했다. 30대 재벌 오너 중 회사를 살리기 위해 자발적으로 사재(私財)를 턴 것은 이 회장이 유일한 사례다. 1995년 대구 지하철 가스폭발 사고 때도 건설업계의 원로로서 국내 대기업 중에서 가장 많은 20억원의 성금을 기탁했다.
선진국 부호(富豪) 중에는 재산의 사회 환원을 일종의 의무처럼 여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와 세계적인 투자자 워런 버핏은 전 세계 부호들을 상대로 재산의 절반 이상을 기부하겠다는 '기부 서약 운동'을 벌이고 있다. 여기에 세계 14개국에서 137명의 억만장자가 참여했다. 최근에는 사우디의 알왈리드 빈 탈랄 왕자가 320억달러의 개인 재산 전부를 기부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개인의 고액 기부가 늘어나고 있지만 사회에 감동을 주는 기업인들의 기부 스토리는 적은 편이다. 기부 문화가 아직 뿌리를 내리지 않은 데다 선의(善意)의 기부를 가로막는 법적인 제약 탓이 크다. 예를 들어 국내에선 외국처럼 재산 전액을 기부하는 게 매우 힘들다. 상속인의 권리를 보장해주는 '유류분 제도'가 있어 유가족들이 기부 단체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최대 기부 재산의 절반을 되찾아 갈 수 있다. 가족의 동의를 얻지 못하면 기부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돼 있는 것이다.
회사 지분(持分)의 5%를 넘는 주식을 기부하면 증여세를 물어야 하는 것 같은 다른 제약도 많다. 이 회장도 이번에 기부를 결심하면서 "불필요한 규제로 인해 본인이 원하는 곳에 돈을 줄 수 없는 경우가 많은 데 놀랐다"고 했다. 이 회장 같은 기업인들이 기부를 통해 사회의 빛과 소금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본인의 기부 의도를 최대한 존중하는 방향으로 관련 법·제도의 대폭적인 정비가 있어야 한다.
2015년 8월 19일자 조선일보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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