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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걷기만 하면 치매 예방? 좋아하는 노래 부르며 걷는 게 훨씬 낫다
    스크랩된 좋은글들 2026. 3. 4. 08:57
     
    광주시 노인복지관에서 치매 검진 신청을 접수하고 있는 모습./광주시
     

    진료실에서 마주하는 많은 어르신이 내비치는 두려움은 단연 인지 기능의 저하, 즉 ‘치매’다. “돌아서면 뭐 하려 했는지 까먹어요” “자주 보는 사람인데 이름이 안 떠올라요”라며 불안해한다. 그러면서 치매를 예방하려고 걷기 운동을 2시간으로 늘리고, 집에서 숫자 계산을 시작했다고 덧붙인다. 노력을 시작했다는 점은 고무적이지만, 한편으론 안타깝다. 단순히 걷거나 숫자 풀이만으로는 뇌가 가진 노화의 궤적을 바꾸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픽=이철원

     

    ◇인지 기능 저하는 온몸의 신호

    흔히 기억력이 나빠지면 뇌에 특별한 고장이 생겼다고 믿고 그 부분만 고치려 한다. 하지만 특정 유전 질환을 제외하면, 노년내과적 관점에서 인지 기능의 감퇴는 몸 전체 시스템의 노화가 투영된 것이다.

    우리 몸의 장기들은 긴밀하게 소통하며 의존하는 관계다. 35세 전후부터 모든 장기의 회복력이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하는데, 특정 장기가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하고 제때 회복되지 않으면 그 여파는 전신으로 번져 노화 속도를 앞당긴다. 결국 뇌 자체의 문제이든 다른 장기들의 부담이 임계치를 넘어서든, 기억력 저하는 전신 노화의 흐름 속에서 뇌가 가장 먼저 보내는 ‘가속 노화’의 신호인 셈이다.

     

    그렇다면 뇌의 건강 상태와 미래의 위험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임상 현장에서는 이중 과제(Dual-Task)라는 개념을 활용한다. 서로 다른 성격의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수행하는 능력을 말한다. 쟁반에 물컵을 받치고 걷거나, 100에서 7을 연속해서 빼면서 걷는 식이다.

     

    우리 뇌는 한 가지 일에 집중할 때는 특정 영역의 역량이 다소 부족해도 뇌와 신체 장기의 다른 자원들을 끌어모아 결점을 숨길 수 있다. 하지만 신체 움직임과 정보 처리를 동시에 해야 할 땐 상황이 달라진다. 숨겨져 있던 인지적 약점이 드러나는 것이다.

    임상 연구들에 따르면, 이중 과제를 수행할 때 보행 속도가 평소보다 크게 떨어지는 노인은 향후 치매가 발생할 위험이 일반인보다 2배 이상 높다. 인지 기능 검사 점수는 정상이라도 이중 과제에서 서툰 모습을 보인다면, 뇌가 신체 명령과 연산 명령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 ‘여유분’이 바닥났다는 신호다.

     

    ◇걷기로는 부족… 이중 과제 실천법은?

    열심히 걷기 운동을 하지만 기대만큼 효과가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뇌 건강의 대원칙은 ‘용불용설(用不用說)’이다. 쓰지 않는 부위는 퇴화한다. 그런데 우리 뇌는 모든 영역을 한꺼번에 쓰는 법이 거의 없다. 평지를 걷기만 할 때는 운동 영역이, 숫자 풀이를 할 때는 계산 영역이 선택적으로 활성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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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극이 단조롭고 분절적이면 뇌 전체의 신경망을 깨우고 재생 동력을 끌어올리기 어렵다. 뇌 신경세포와 그 구성 요소들은 외부 자극에 따라 강화될 수 있는데, 늘 쓰던 부분만 반복해 쓰다 보니 전체적인 복원력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이다. 평소 자극받지 못한 뇌의 구석구석을 동시에 깨우며 서로를 더 강하게 연결하는 ‘광의의 이중 과제’가 필요하다.

    복잡한 훈련 프로그램을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일상의 작은 활동들을 조금씩 섞고 확장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우선 앉아서 하는 정적인 활동에 움직임을 더해보자. 단순히 책을 읽는 것보다 손으로 일기를 쓰거나 편지를 쓰는 행위는 기억의 인출과 정교한 손놀림을 동시에 요구한다. 쓴 글을 소리 내어 읽으며 듣는 과정을 추가하면 뇌의 또 다른 영역들이 깨어난다. 샤워하면서 오늘 할 일을 머릿속으로 정리하거나, 스트레칭을 하며 좋아하는 노래를 끝까지 불러보는 것도 좋다.

     

    신체 활동의 영역을 넓히는 것은 더 효과적이다. 늘 걷던 길을 더 오래 걷기보다 새로운 길을 찾아 풍경에 감탄하며 언덕을 오르내리는 것이 뇌에는 훨씬 큰 자극이 된다. 큰 동작의 근력 운동까지 더해진다면 뇌 신경 곳곳에 더 깊은 자극을 전달할 수 있다. 거창한 운동이 어려운 상황이라면 손을 바삐 움직이는 취미라도 시작해야 한다. 특히 무언가를 새로 배우고, 그 내용을 타인에게 알려주는 과정은 뇌 피질의 넓은 영역을 한꺼번에 깨우는 강력한 수단이 된다.

     

    ◇사람과 세상에서 신선한 자극을

    모든 활동의 정점은 사회적 대화와 배려에 있다. 사람을 만나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누고 발을 맞추어 걷는 것은 오감을 자극하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이다. 상대방의 언어와 표정 변화를 읽어내고, 그 입장을 헤아리며 내 감정을 절제하거나 공감하는 행위는 뇌의 거의 모든 영역을 가동해야 하는 최고 난도의 작업이기 때문이다.

     

    건강하게 90세를 넘기신 분들을 보면, 치매를 걱정하며 집에서 퍼즐 맞추기만 한 분은 드물다. 고(故) 송해 선생처럼 대중교통을 이용해 세상으로 나가고, 다양한 사람과 마주치며 소소한 도전을 멈추지 않아야 장수한다. 일상 곳곳에 감당 가능한 자극을 배치하고 즐겁게 극복하는 과정이 뇌의 노화를 지연시킨 것이다.

     

    치매가 두려워 움츠러들지 말자. 뇌는 고립된 장기가 아니라 전신 건강과 외부 세계를 잇는 통로다. 안 쓰던 근육을 사용하는 근력 운동으로 뇌를 깨우고, 새로운 것을 배워 타인에게 나누며, 지인을 만나 배려를 나누는 삶의 태도가 당신의 뇌와 몸을 지키는 가장 실용적이고 현명한 방법이다.

     

    좋아하는 노래에 맞춰 몸을 흔들며 가사를 따라 부르던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본다. 우리는 젊었기에 노래를 잘 부른 것일까? 아니면 그렇게 노래를 불렀기에 우리 뇌가 싱싱하게 유지된 것일까? 진료실에서 수많은 이의 인생을 들여다본 요즘, 정답은 후자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확신이 든다. 오늘부터라도 적극적으로 세상 밖으로 나가 움직이시길 권한다.

    2016년 9월 4일 서울 KBS홀에서 열린‘전국노래자랑’세계대회 편 녹화를 마친 뒤 송해가 활짝 웃고 있다. 중국·브라질·가나 등 11국 21명의 해외 동포가 노래했다. 송해는“미국에서 온 88세 노인부터 중국에서 온 8세 꼬마까지 흥이 넘쳤다”며 혀를 내둘렀다./조선일보 DB
    2026년 3월 4일 조선일보  장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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