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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대북 구애(求愛)가 국가안보에 끼칠 해악스크랩된 좋은글들 2026. 3. 9. 07:46
무인기 침투 금지와 9·19 군사합의 복원은 평화를 더 위태롭게 한다 신뢰할 수 없는 상대라면 '항공정찰 자유화 합의'로 더 엄격히 검증해야 한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지난 달 26일 서울 종로구 남북회담본부에서 열린 접경지역 평화안전 연석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남북 대화 재개를 위해 비상한 공을 들여왔지만 돌아온 것은 북한의 능멸과 조롱뿐이다. 대화 재개의 꿈은 요원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북한을 대화로 끌어내기 위해 던진 미끼가 국가 안보에 끼칠 해악에 있다. 특히 대북 무인기 침투 금지와 ‘9·19 군사 합의’ 복원 추진이 걱정스럽다.
정 장관은 지난 2월 10일 무인기 침투 사건에 대한 군경 합동 조사가 끝나기도 전에 서둘러 유감을 표명했다. 그러자 북한 김여정은 13일 대단한 약점이라도 잡았다는 듯 “재발을 확실히 방지할 수 있는 담보 조치”까지 요구했다. 이에 정 장관은 18일 무인기 사건에 대한 공식 사과와 함께, 재발 방지책으로 접경 지역에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한 9·19 남북 군사 합의의 선제적 복원과 대북 무인기 침투 금지의 법제화 등을 제시했다.
북한은 이제 대북 방송과 민간 단체의 전단 살포 중단에 이어 무인기 침투 금지와 대북 공중 정찰 제한까지 챙겼다. 그간 대화를 통해서는 달성하지 못한 숙원을 대화 거부를 통해 더 효과적으로 이루게 된 마당에, 굳이 ‘두 국가론’을 훼손하며 대화에 응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김정은이 25일 노동당 9차 대회 보고에서 이재명 정부의 대북 유화책을 “서투른 기만극이고 졸작”이라고 조롱하면서 대화 재개 가능성을 일축한 것은 정 장관의 자업자득이다.
대북 무인기 침투 금지와 9·19군사합의 복원이 평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환상에 빠지면 안 된다. 적대 세력 간 평화 유지의 핵심은 상호 불신 해소와 신뢰 구축이다. 9·19합의와 같은 군비 통제 합의란 기본적으로 군사적 신뢰 구축에 기여할 수 있어야 의미가 있다. 남북 간 신뢰 구축은 군사 활동의 투명성에서 나오고, 이는 상대방의 군사적 동향에 대한 지속적 감시·정찰(ISR) 없이는 불가능하다. ‘신뢰하되 검증하라(Trust but verify)’는 격언은 군비 통제의 금과옥조(金科玉條)다. 신뢰할 수 없는 상대라면 더 엄격한 검증이 필요하다. 따라서 남북 신뢰 구축과 평화를 위해 궁극적으로 가야 할 방향은 무인기 침투 금지와 비행 금지 구역 설정이 아니라 ‘항공 정찰 자유화 합의’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러시아 간의 ‘항공 정찰 자유화 조약’(The Open Skies Treaty)이 2021년 폐기될 때까지 30년간 유럽의 평화에 기여한 역할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9·19합의의 치명적 결함은 비행 금지 구역 설정으로 북한이 적대행위 금지 약속을 제대로 준수하는지 여부를 검증할 수단과 방법을 포기한 데 있다. 군사분계선(MDL) 남쪽 40㎞ 상공에서 북한을 정찰하면 2㎞ 상공에서 정찰하는 것보다 감시·정찰의 사각지대가 대폭 늘어나고 북한이 확장된 사각지대에서 기습 공격을 준비하더라도 조기 탐지가 어려워진다. 이렇듯 9·19합의는 군비 통제의 기본 원칙을 무시하고 군사적 투명성에 역행해 결국 북한의 기습을 더 용이하게 만들어 준다는 점에서 오히려 평화를 위태롭게 한다.
윤석열 정부가 2024년 10월 평양 상공에 무인기를 침투시켜 전단을 살포한 것은 지탄받을 도발이었지만 그렇다고 모든 형태의 무인기 침투를 악마화하는 것은 대북 감시·정찰의 핵심 수단을 스스로 버리는 것이다. 북한이 한국을 겨냥한 전술핵무기까지 실전 배치한 현실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기지를 실시간 감시·정찰하는 데 미국의 위성 정보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 무인기를 통한 우리의 독자적 감시·정찰로 미국의 위성 정보를 보완하고 공백을 메워야 한다. 또한 한국이 무인기로 수집한 정밀 표적 정보를 미국과 공유할 수 있어야 미국에 위성 정보의 실시간 공유를 당당히 요구할 레버리지가 생긴다. 감시·정찰이 부실해 북한의 핵 사용이 임박할 때 선제적으로 이를 제거하지 못하고 요격에도 실패하면 일거에 수만, 수십만 인명을 잃는 재앙을 맞을 수 있다. 현무-5 같은 최고의 타격 수단을 아무리 많이 보유해도 감시·정찰이 허술하면 소용없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을 중시하는 정부라면, 대북 감시·정찰 공백을 해소하는 데 무인기를 최대한 활용할 방도를 강구하는 것이 정상이다. 북한이 탐지할 수 없는 스텔스 무인기의 배치도 서둘러야 한다. 북한이 당장은 ‘무인기 정찰 자유화 합의’에 응하지 않겠지만, 대북 정찰을 막을 실효적 방법이 없고 대남 정찰을 포기할 수 없다면 종국에는 수용할 가능성도 있다. 무인기 정찰에 다소 리스크가 있더라도 국가적 재앙을 막기 위해 감수할 각오를 해야 한다.
2026년 3월 9일 조선일보 천영우 前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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