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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진에서 구출된 미군카테고리 없음 2026. 4. 6. 07:176·25 때 장진호에서 전사한 미 전투기 조종사 제시 브라운 소위를 소재로 만든 영화 ‘디보션’에는 두 개의 헌신(devotion) 이야기가 나온다. 하나는 한국의 자유를 지키다 산화한 브라운 소위의 헌신, 또 하나는 적진 한가운데 추락한 브라운을 구출하기 위해 쏟는 미군의 헌신이다. 한 동료 비행사는 브라운을 구하려 적이 우글대는 산속에 자기 전투기를 불시착까지 시켰다.
▶세계 곳곳에서 전쟁하는 미군이 승리 못지않게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고립된 전우 구출이다. 장진호 덕동고개 전투 때는 한 부대가 10배나 많은 중공군에 포위되자 대대 규모 구조대를 파견했다. “중대를 구하기 위해 대대가 전멸할 수 있지만 중대의 희생을 지켜보는 것은 우리의 선택이 아니다”라며 총을 들었고 끝내 포위망을 뚫었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왜 1명을 구하려 8명이 가는가”라는 질문에 지휘관이 “그럴 가치가 있는 일”이라 대답하는 장면 그대로다.
▶그 가치란, “조국은 나를 버리지 않는다”는 믿음을 장병들 가슴에 심어주는 일일 것이다. 1995년 보스니아 내전 당시 적군이 우글대는 산악지대에 추락했던 F16 전투기 조종사 스콧 오그래디는 미군 특수부대가 엿새 동안이나 산악지대를 뒤져 마침내 자신을 구출하러 오자 이렇게 말했다. “나를 구하러 오는 헬기를 봤을 때만큼 내가 미국인이란 사실이 자랑스러웠던 적은 없었다.”
▶미군이 단 한 명의 장병을 구해내기 위해 쏟는 땀과 희생은 각별하다. 오그래디 구출 작전에선 특수부대원 40명을 태운 헬기와 전투기 수십 대가 출동해 보스니아 민병대와 전투를 벌였다. 미국 각 군의 특수작전사령부 산하에 델타포스·네이비실6팀·제75레인저연대·제160특수작전항공대 등이 망라돼 작전에 투입된다. 군인 개인도 고립되거나 포로가 됐을 때에 빗물로 연명하며 구출될 때까지 버티는 ‘SERE’라는 훈련을 받는다.
▶이란에서 군사 작전 중 비행기가 격추돼 실종됐던 미군 장교가 이틀만에 구출됐다. 전쟁 비판 여론 때문에 궁지에 몰렸던 트럼프 대통령은 가슴을 쓸어내렸을 것이다. 우리도 6·25 때 북한의 포로가 되어 돌아오지 못한 국군 장병이 8만여명에 달한다. 몇 해 전, 국가의 도움 없이 스스로 북한을 탈출해 돌아온 어느 노병은 “대한민국 정부와 대통령, 우리를 지휘했던 중대장이 살아 있으니 때가 되면 반드시 우리를 찾으러 올 것”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그 믿음을 저버린 군대를 위해 어느 누가 목숨 걸고 싸울까.
일러스트=이철원
2026년 4월 6일 조선일보 만물상 김태훈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