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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관위, 감시만으로는 안 되는 이유스크랩된 좋은글들 2026. 6. 12. 05:45
인간의 행동과 신뢰는 평판이란 '장부'에 기록돼 미래에 반드시 돌아오는 책임과 보상 위에서 진화 선관위엔 그 장부가 없고
실패 반복해도 개선 안돼 監査하고 책임 물어야영국의 한 대학 휴게실. 커피와 차를 놓고 양심껏 돈을 내도록 한 무인 계산대 위에 연구자들은 매주 사진을 바꿔 붙였다. 어느 주는 꽃 한 송이, 어느 주는 사람의 두 눈. 눈동자가 내려다본 주에 사람들이 낸 돈은 꽃이 걸린 주의 세 배쯤 됐다. 살아 있는 감시자도 아닌, 종이에 그려진 눈 이미지였을 뿐인데 말이다. 사실 이 효과가 얼마나 견고한지는 심리학자들 사이에서 지금도 논쟁거리다. 그러나 그 다툼의 바닥에는 ‘인간의 협력이 평판이라는 장부 위에서 진화했다’는 사실이 깔려 있다.
한 실험에서 낯선 사람들이 매번 상대를 바꿔 가며 익명으로 돈을 주고받았다. 짝이 늘 바뀌니 베푼 상대에게 직접 되돌려받을 길은 없다. 그런데도 남에게 후하게 베푼 사람일수록 더 많이 받았다. 그의 기록을 본 또 다른 사람이 자기 차례가 되자 그를 선택해 도왔기 때문이다. 선행은 점수처럼 쌓여 자산이 되고 배신의 기록은 끝내 그를 따라다닌다. 그러니 정작 중요한 것은 ‘보인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시선이 장부에 ‘적혀’ 언젠가 대가로 돌아온다는 데 있다.
그런데 한국에 이 장부의 법칙을 비웃는 듯한 기관이 있다. 2026년 6월 3일, 오직 선거를 위해 존재하는 선거관리위원회가 투표용지 부족으로 유권자를 돌려보냈다. 전국 91곳에서 용지가 모자랐고 26곳에서 투표가 멈췄다. 정작 서울 송파구 전체에는 4만여 장이 남아돌았다. 모자란 게 아니라 엉뚱한 곳에 쌓여 있던 것이다. 처음도 아니다. 소쿠리에 투표지를 담아 나르고, 간부 자녀를 특혜 채용하더니, 이번엔 용지조차 제대로 배분하지 못했다. 여기가 정말 기이한 대목이다. 선관위만큼 끊임없이 의심의 눈초리를 받는 기관도 없을 텐데, 대체 왜 선거 때마다 의혹이 제기되고 소송과 재검표 요구가 잇따르는 것일까? 왜 이 기관은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는가?
답은 다시 그 장부에 있다. 협력을 부르는 것은 시선 자체가 아니라, 장부에 ‘적혀’ 미래로 돌아오는 시선이다. 이 조건이 어떤 기관은 무너지고 어떤 기관은 버티는지를 가른다. 기업의 행동은 시장이라는 장부에, 정치인의 행동은 표라는 장부에 적혀 머지않아 대가로 돌아온다. 그러나 중립이 본분인 선관위는 선거 결과로 평가받지 않고, 경쟁할 시장도 없으며, 감사원의 감찰조차 헌재 결정으로 막혀 있다. 의심의 눈초리가 가득해도 그것을 책임으로 옮겨 적을 장부가 없는 셈이다. 의심을 장부에 또박또박 받아 적는 일, 그것이 바로 감사(監査)다. 아무리 격하게 노려봐도 그 시선이 내일의 대가로 이어지지 않으면, 인간의 마음은 그것을 위협으로 치지 않는다.
더 고약한 역설이 있다. 그 뜨거운 의심이 도리어 기관을 무뎌지게 만든다는 점이다. 부정선거 음모론은 번번이 허구였고 법원의 검증도 그때마다 의혹을 기각했다. 문제는 그 경험이 잘못된 학습을 남겼다는 점이다. 터무니없는 의심을 거듭 물리치는 사이, 선관위는 자신을 향한 ‘모든’ 목소리를 같은 종류로 뭉뚱그리게 됐다. 음모론을 반박하는 일과 자신의 실패를 직시하는 일은 전혀 다른데도 후자마저 전자처럼 흘려보낸 것이다. 밖에서 무슨 문제가 제기되든 안에서 스스로를 고칠 회로가 없다면 같은 실수는 반복된다.
휠체어로 가파른 언덕을 올라온 노인의 한 표는, 용지가 없어 발길을 돌린 이의 사라진 한 표와 제도 안에서 같아야 한다. 그러나 잠실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그 등가(等價)는 깨졌고, 되돌아간 유권자가 몇이었는지는 끝내 아무도 세지 못했다. 더 두려운 것은 악순환이다. 이런 사태가 부정선거 음모론에 먹이를 주고, 그 과격함이 다시 선관위에 모든 비판을 음모로 뭉뚱그릴 구실을 준다. 의심과 무책임이 서로를 키우는 구조다.
그렇다면 행정부가 선관위를 통제하면 될까. 그것은 퇴행일 수 있다. 선관위의 독립은 관권선거(3·15 부정선거)의 비극이 낳은 헌법적 결단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권력을 막으려던 그 결단이 책임을 막는 방패가 되어선 안 된다. 필요한 것은 독립의 폐기도 ‘셀프 개혁’의 반복도 아닌, 시민의 자발적 감시를 넘어선 합법적 감사다. 선관위 전담 감사 기구를 독립적으로 두는 방안을 진지하게 찾을 때다. 선관위에 필요한 것은 더 따가운 눈초리가 아니다. 그 눈초리를 또박또박 받아 적을 장부다. 지켜보는 눈은 장부에 가닿을 때 비로소 힘을 갖는다.
2026년 6월 12일 조선일보 장대익 가천대 스타트업칼리지 석좌교수·인지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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