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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재인 대통령의 사과가 있어야한다.
    스크랩된 좋은글들 2020. 2. 29. 08:10

    우한(武漢) 코로나가 온 나라를 삼킬 기세다. 진격 속도가 병자호란 때 압록강을 건너 한양으로 내달았던 호병(胡兵)의 말발굽 소리보다 빠르다. 1월 20일 첫 코로나 확진자가 나왔다. 37일 만에 1000명 선을 넘더니 단 이틀 만에 2300명을 돌파했다. 28일 하루 확진자가 571명 폭증했다. 완전히 둑이 터졌다. 감염·전파 속도가 하도 빨라 한 시간 전 숫자는 벌써 구문(舊聞)인 터라 코로나 바이러스가 지금 어디를 유린(蹂躪)하고 있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대구에서 들려오는 뉴스는 문명국(文明國) 소식이 아니다. 6·25 전란(戰亂) 때도 이러지는 않았다. 2월 18일 첫 확진자가 확인되고 나서 열흘 만에 1500선을 넘었다. 지역발생으로 우한 다음이 대구다. 확산을 막는 바리케이드는커녕 과속 주행 방지턱도 없다. 음압병실은 넘치는 환자로 바닥났고 중증(重症) 환자조차 병상(病床)이 없어 집에서 차례를 기다리다 숨지는 사태가 발생했다. 아침부터 밤까지 환자들과 전투하는 의료진의 기력(氣力), 그들이 입는 방호복, 심지어 비(非)접촉 체온계마저 동났다. 대구 시민 244만명이 코로나에 갇혔다.

    사실은 대한민국 전체가 코로나에 포위됐고 세계로부터 격리(隔離)됐다. 28일 시점에 세계 27개국이 한국인의 입국을 금지했고, 25개국이 입국 절차를 강화했다. 자국민 철수 계획을 세우고 있는 나라도 여럿이다. 몇몇 나라는 민항기(民航機)의 한국편(便)을 줄이고 있다. 미국은 한국을 '여행 여부를 재고(再考)해야 하는 국가'로 분류했고, 여차하면 '여행 금지 국가'로 지정할 태세다. 미국의 조치는 유럽 각국의 연쇄 조치를 불러올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는 중국에서 벌어졌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중국의 아픔을 우리의 아픔'으로 느낀다. 대통령 사람들은 '한·중 운명공동체론'을 편다. 한국에서 품절(品切)되거나 희귀품이 된 방호벽·라텍스 장갑·보호경·마스크도 중국 각지에 막대한 양을 보냈다. 중국은 우한 코로나 발원지(發源地)다. 그 중국이 한국에서 온 여행객을 맨 먼저 격리했고 한국 다녀온 교민들 집에 출입 통제 딱지를 붙였다. 한국과 '전염병 공동체'가 될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야박하고 표리부동(表裏不同)한 것 같지만, 그게 중국이 제정신을 아주 잃은 건 아니라는 표시다. 제 나라 국민과 남의 나라 국민 조차 구분 못 하는 나라가 넋빠진 나라다. 외교장관은 무슨 밀명(密命)을 받았는지 이 마당에 유럽을 방랑하다 돌아왔다.

    한국은 의료 선진국이다. 의료진의 수준·장비·병원 시설 면에서 세계 선두 그룹에 속한다. 의료산업을 미래의 성장 산업으로 꼽고 있기도 하다. 실제 서울대학은 2014년 유럽 국가들과 경쟁해 아랍에미리트 병원의 위탁 경영권을 따내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런 대한민국 국민이 어쩌다가 하루하루를 전염병의 공포 아래 떨며 내일을 모르는 막막한 처지에 놓이게 됐는가. 한국의 10분의 1도 안 되는 작은 섬나라도 코로나 발생 직후 발생 국가 국민의 입국을 차단했다. 그렇게 갈퀴로 긁어간 세금은 도대체 어디다 써버렸기에 막상 일을 당하자 음압병실부터 방호복·장갑·마스크·체온계 등 기초장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갖춘 게 없는 불량(不良) 국가 꼴이 드러나고 말았는가. 삼성·LG·현대차·SK 등 대기업을 비롯, 기술 입국(立國)·기술 자립(自立)의 꿈을 안고 수많은 중소기업인이 수십 년 쌓아 올린 '첨단(尖端)의 나라 한국'이란 국가 이미지를 순식간에 무너뜨린 사람들이 누군가. 역병(疫病)의 악몽에 짓눌린 국민 가슴을 '무심한 말' '험한 말' '태평한 소리'로 후비고 쑤시고 있는 무리가 누구인가.

    답(答)은 대통령과 대통령 사람들이다. 그들의 무지(無知)와 판단력 결핍과 무신경(無神經)이다. 국민이 아파할 때 같이 아파할 줄 모른다. 권력에 취(醉)한 몽롱증(朦朧症)이다.

    1592년 4월 14일 왜병(倭兵)이 부산포에 상륙하고 임금 선조(宣祖)는 4월 30일 도읍(都邑) 한양을 버렸다. 1637년 1월 3일 청 태종 홍타이지의 선봉대가 압록강을 건너고 1월 9일 홍제동에 진출하자 인조(仁祖)는 황급히 남한산성으로 들어갔다. 두 임금이 진짜 두려워한 것은 왜병과 호병(胡兵)이 아니었다. 백성을 버린 임금은 백성이 두려웠다. 청와대 짜파구리 파티에서 파안대소(破顔大笑)하던 식탁 아래 반(半)지하에 국민이, 더 아래에는 대구가 있었다. 국민은 기생충이 아니다. 대통령의 사과(謝過)가 있어야 한다.


                  2020년 2월 29일 조선일보 강천석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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