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의 도움을 포기하고 마스크 생산나선 한반도체기업낙서장 2020. 3. 12. 07:44
마스크 5부제에도 불구하고 '마스크 대란'이 여전하다. 이 약국, 저 약국을 기웃거리다 겨우 한 곳에 줄을 서면 매진이라고 한다. 산업 현장에선 근로자에게 꼭 필요한 마스크가 부족해 아우성이다. 유통 업체, 호텔, 음식점 등 고객을 대면(對面) 접촉해 매일 마스크를 갈아 써야 하는 업종조차 마스크를 구하지 못하는 지경이다. "마스크 공급에 문제없다"며 장담하던 정부는 "건강한 사람은 안 써도 된다"며 '사용 자제' 정책으로 돌변했다. 경제부총리는 "(마스크 수출 금지가) 더 일찍 됐으면 좋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고 뒤늦은 후회를 했다. '무능'이란 말도 아깝다.
국민이 가장 궁금하고 속이 터지는 것은 세계적 산업 대국인 대한민국이 마스크 문제 하나 해결하지 못하느냐는 것이다. 국내 마스크 업체들은 그동안 중국산 마스크 생산 설비를 주로 사용해왔다. 중국 정부가 수출 금지령을 내리는 통에 생산 라인을 긴급 증설하기도 어렵게 됐다. 핵심 부자재인 필터도 모자란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문제들은 정말 정부 말처럼 도저히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인가.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 기업이 있다.
'톱텍'이라는 반도체 장비 업체가 3월 초 마스크 제조 장비 50대 제작에 착수했다. 오는 4월 초순 완성을 앞두고 있다. 필터도 자체 생산 가능한 회사다. 생산 라인이 갖춰지면 이 회사 한 곳에서만 하루 300만장 증산이 가능해진다. 그런데 여기에 정부는 한 푼도 지원하지 않았다. 민간 업체를 지원할 수 없다며 정부가 난색을 표하는 바람에 이 회사는 상당한 위험 부담을 안고 자체 투자에 나섰다. 마스크 생산 설비는 기술적으로 크게 어렵지는 않지만 증설했다가 나중에 마스크 수요가 사라지면 헛돈 쓰게 된다는 점을 기업들은 걱정하고 있다. 민간이 감당하기 힘든 이런 위험 부담을 방역 안보 차원에서 책임져줘야 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코로나 추경예산 11조원 중 몇 백억원만 써도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생산 설비 증설엔 한 푼도 쓰지 않겠다고 한다. 표 얻는 포퓰리즘엔 몇 조원도 쉽게 지출하는 정부가 갑자기 인색한 이유가 도대체 뭔가.
정부는 이런 기업이 개별 차원으로 나서기 전에 마스크 제조가 가능한 기업들을 신속하게 조사하고 이들에게 예산을 지원해서 마스크 설비 증설에 나섰어야 했다. 2월 초에만 시작했어도 이미 마스크 대란은 사라졌을 것이다. 그런데 스스로 생산 설비를 만들어 마스크 증산에 나서겠다는 기업에 지원하는 것조차 꺼렸다고 한다.
대만 정부는 지난 한 달 새 국가 예산으로 마스크 생산 설비 60대를 발주해 제작한 뒤 몽땅 민간 업체에 기증했다. 그것도 모자라 예산을 추가 투입해 30대를 더 증설할 계획이다. 그 결과 하루 390만개 정도였던 마스크 생산이 한 달 만에 820만개로 2.1배 늘었다. 조만간 1300만개까지 늘어나 대만 전 국민 2400만명에게 이틀에 한 개꼴로 마스크가 돌아갈 정도로 사정이 좋아진다. 대만 정부는 민간 업체에서 생산한 마스크를 몽땅 사들인 뒤 국민에겐 장당 200원에 공급한다. 반면 우리는 유통 마진까지 붙은 마스크를 1500원에 사야 하고, 그나마 구하지 못해 난리다. 대만의 6배나 되는 그 엄청난 국가 예산은 어디로 가는 건가.
골든타임을 허비한 한국 정부는 11조원 넘는 코로나 추경에서도 마스크 관련 예산은 없고, 예비비만 70억원 배정했다. 그래 놓고 "민간 업체들이 생산 라인을 75기 주문했다"며 숟가락 얹기만 한다. 우리가 대만처럼 못 하는 건 기술이나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무능하면서 매일 자랑할 것은 많은 정부 때문이다.2020년 3월 12일 조선일보사설
'낙서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느 길을 갈것인가 (0) 2020.03.16 언제 어디서나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0) 2020.03.13 심심풀이 스토크 문제 (0) 2020.03.11 청와대가 김정은 남매에 길들여지고 있다. (0) 2020.03.11 박근혜 옥중 서신 (0) 2020.0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