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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감해줄까?
    낙서장 2020. 7. 20. 09:05

    어제 매제의 아들이 결혼식에 참석해서 고맙다며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코로나19로   결혼식을 미룰가 말가 망설이면서도  언제 끝날지 모르니 일단  결혼식을 하기로 결정했다.  마스크를 하고 참석했었다. 오늘 식사하는곳에 가보니 동생내외와  형님가족들모두가 참석해 있었다. 식사가 끝날 무렵 나에게 덕담을 부탁했다. 갑자가 부탁을 받다보니 준비없이 내소견을 말했다. 내가 이세상에 있었음으로 이세상이조금이라도 아름다워지기를 바라면서 살았다고 하면서  너희부부도 그런마음으로 살았으면 한다며 감사와 배려 그리고 도전의 의미를 생각하며 부모 형제 친척 더나가서는 이웃에게도 그렇게 하였으면 한다고 이야기 했는데 공감해줄까?  걱정도 되긴하지만 그래도 그것이 바람이라 생각하며 나의자서전에 썼던 감사의 이유를 회상해본다. 


                                2020년 7월 19일


            내가 감사하며 살아야하는 이유


    이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생각대로 다양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나 역시 그렇다.  여러 가지 힘들고 어려운 일도 있었고 즐겁고 감사한 일도 있었다.  지날을 돌아보니 수많은 감사했던 일이 떠오른다. 또한 그때는 몰랐던 추억들이 지금은 더욱 감사하게 느끼기도 한다.  


    우선 큰 감사로 떠오른 것은 첫번째가  내 인생을 바꿔놓은 고등학교 진학이야기이다. 내가 태어났던 1940년대는 국가적으로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초등학교시절에는 625전쟁으로 피난을 경험하기도 했다. 중학교를 다닐 나이에는 경제적으로 어려웠다. 동네아이들처럼 나도 중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있을 즈음 공부만 잘하면 서울에서 장학금을 주며 고등학교를 다닐수있는 학교가 있다는 것을 알고 1958년 2월 중학교 졸업장도 없는 나를 형이 무조건 서울로 데리고 갔다. 시골에서 서울가는 버스에서 양지쯤 왔을 때 우연히 서울 어느 중학교가 60명 중학교 모집에 한명도 없다는 신문기사를 봤다. 형이 그학교에 가서 나를 천재로 붕 띄워 즉석에서 졸업장을 만들어 왔다.  그 덕분에  3년간 관비생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두 번 째는 한전입사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긴 했지만 중학교를 건너뛰었고 정보통신 요원 양성을 하는 특목고이다 보니 영어를 제대로 할 기회가 없어 영어를 포기했고 졸업후 일어를 개인적으로 공부했다. 고등학교 졸업후 체신부(지금의 정보통신부)에서 근무하면서 대학을 마쳤다. 대학을 졸업한 후 대졸공채로 한전에 입사하려했다. 입사시험 몇일전 일어로 된 전자공학문제집을 샀고 입사전날 눈여겨 봤던 문제가 그대로 출제 되었다.  지금이야 기억력이 별로이지만 그 당시는 외우려고 했던 것은 글자한자 틀리지않았던 시절이기에  그 덕분에 우리회사에  당당히 입사했다.


    세번째 감사는 해외자원봉사이다. 회사에서는 비교적 순탄하게 생할하고 있었으나 1998년 국제 외환위기가 닥쳐 몸담고 있었던 전산업무를 맞고 있는 정보처리처가 아웃소싱이란 구실로 외부회사로 넘어갔다. 정보처리처장을  맡고 있던 나는 퇴직을 했다. 퇴직한 후 마음속으로 잠시 방황하기도 했지만 되돌아 살아온 세상을 보니 감사하기도 했다. 감사한 마음을 일부라도 사회에환원한다는 생각으로 자원봉사를 하고 싶었다.

     한국 국제협력단에서 해외자원 봉사요원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응시하였다. 또한 최고령자로 합격하여 매스콤에서 주목을 받게 되었다. 조선일보 KBS 동아일보등에서 나의 이야기를 소개해주었고 조선일보에서는 앵콜내 인생이란 책자를 발간하여 나를 미화하여 소개했다. 


    네번째 감사는  도전하는 삶이다. 회사를 퇴직하고 남는 시간을 처치할 수 없어 건강관리를 핑계로 조깅을 했다. 마라톤 완주에  도전하려고   2001년 1월 1일부터 달리기를 했다. 거의 일년을 매일 뛰어 다녔다. 그해 3월 초 10키로를 완주했고 5월 하프 8월 풀코스, 10월에는 조선일보 춘천마라톤 대회에 참석했고 11월에는 63키로인 울트라 마라톤을 완주했다. 2009년 3월 일산에서 중앙일보 주최 마라톤에서 4시간 30분 페이스메이커를 했다. 2009년 4월에는 보스톤 마라톤에 참석했다. 보스톤 마라톤은 주최측에서 정한 일정한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 이제 보스톤마라톤까지 다녀왔으니 기록이나 갱신하자며 2009년 11월 29일 손기정마라톤 32키로 부분에 참석하여 연령대(60대)에서  일등을 했다. 그외 생각나는 도전은 걸어서 해남땅끝에서 강원도고성까지 걸어봤고 자전거로 인천 아라뱃길에서 자전거길을 따라 부산을숙도까지 종주했고 그후 자전거로 서울집에서 강원도 고성까지 갔다가 동해안을 따라 부산, 남해안을 따라 인천 그리고 한강을 따라 집까지 전국일주를 했다. 등산으로는 안나프르나 베이스캠프(4130미터)을 갈 때 6일 올 때 6일 총 12일을 산에서 살면서 다녀왔다.


    다섯째 감사는 종교를 갖게 하였다는 점이다. 우리가 이해 못하는 세상의  수많은 삼라만상을 보면서 신이 존재할수있다는 생각으로 조금씩 종교생활로 가게되었고 지금도 계속 가는 중이다. 그렇다고 내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지않는다. 우리 집에서도 나만 열심히 다니고 있다. 웃기는 이야기긴 하지만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았다고하면 못믿는 눈치이긴 하지만 사실이다. 다만 혼자서 성지순례로 이스라에 갔다가 한국에서 온 성지순례팀 목사와 전도사들이 주선해서 요단강 물속에 들어가 목사 전도사, 장로님입회하에 세례를 받았다. 종교생활을 하면서부터는   일상생활을 하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사함을 느낀다. 고등학교 입학했던 일, 마라톤을 뛰어다닌 일도 평소 운동신경이 둔했던 내가 완주했던 일을 생각하면 할수록 감사함을 느낀다.  


    또한 의무가 느껴지기도 한다.  그것은 우리가 이세상에 존재했다는 사실 하나만이라도  이세상이  조금이라도 아름다워야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더불어 살아간다는 생각으로 서로 서로 사랑하고 배려하는 실천이 필요하다. 


     이는 내일이 아니라 지금부터이고, 크고 중요한 일이 아니라 작은 것이라도 실천 가능한 것부터 해야한다. 이런 생각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기위해 다음넷에 ‘양병택의 아름다운 세상’ 이란 브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2019년 8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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