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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있는 하루를 보내고 싶어서낙서장 2020. 9. 1. 15:39
벌써 9월이 되었다. 요사이 코로나로 인해 방콕하다보니 갑갑하다. 오늘도 방콕하려다 내일이안중근 141회 탄신기념일이기에 남산안중근 공원에 가보려했다. 안중근의사는 1879년 9월 2일 (음력 7월 16일 ) 황해도 해주부 광석동에서 부친 안태훈과 모친 조마리아 사이에 3남1녀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몸이 아직도 불편하여 지팡이를 가지고 남산 국립극장입구에 내려서 산책을 시작했다. 북측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북측산책로는 3.4키로메타이다. 그 거리를 걸은 다음 안중근 기념관옆 안중근 의사 동상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곳에는 안중근탄생 141주년을 알리는 프랑카드가 걸려있었다. 하루라도 책을 안 읽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다는 일일부덕서 구중생형극( 一日不讀書 口中生荊蕀) 글자를 보며 독서를 더해야겠다는 생각을하게 되었다. 또한 내가 항상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글인 이익을 보거든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거든 목숨을바치라는 견리사의 견위수명(見利思義 見危授命) 글앞에서서 잠시 묵상을 했다.
남산 팔각정으로 향했다. 지팡이에 의지하여 오로박 돌계단을 한발짜 한발짝 올라갔다. 위에 올라갔더니 코로나 19로 2.5거리두기 실천으로 한산했다. 팔각정 정자 주위에 출입금지를 알리는 띠가 둘려있었고 그주위에 있는 휴식이나 전망하는 시설에도 마찬가지였다. 그곳에서 내려와 북측산책로 출발점으로 왔다.
그곳에서 유자차로 갈증을 풀고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동상이 있는 자유센타로 갔다. 그곳에 이승만 대통령의 동상이 있다.그모습을 카메라에 담았고 그동상 뒤편에 1948년 7월 24일 서울중앙청 광장에서 거행된 초대대통령취임식에서 취임선서를 하고 있는 장면도 카메라에 담았다. 1948년 5월 10일 총선거에서 이승만은 제헌국회 의장으로 선출되어 대한민국 헌법의 기초 심의 및 채택에 중요한 역할을 행사하며 대한민국 헌법을 제정했다. 그리고 대통령 중심제로 헌법이 제정되자 그해 7월 국회 선거를 통해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이승만 박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이며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은 우리나라의 현대사를 관통한 인물이다. 그에 대한 평가는 그가 살아 있을 때뿐만 아니라 세상을 떠난 지금도 양극단으로 팽팽하게 나뉘어져 있다. 이승만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입장은 그의 임시정부 활동과 해방 이후 대한민국의 건국에 기여한 점, 농지 개혁과 한미 상호방위조약 체결로 경제 개발을 이룩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했다는 점, 반공주의적 지도자라는 점 등을 꼽는다. 반면에 그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입장은 그가 권력을 위해 분단정부 수립을 주도했고, 친일 세력을 청산하지 못했으며, 한국 사회에 반공주의의 씨를 뿌리 내리고, 독재 정치로 민주주의 발전을 막았다며 비판한다. 그러나 우리 대한민국은 그분의 건국에기여한점을 먼저 평가해야한다는 생각이다.
다시 내려오면서 유관순 동상앞에 섰다. 그곳에는 보수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유관순 열사는 1902년 12월 16일 충청남도 목천군 이동면 지령리(지금의 천안시 병천면 용두리)에서 아버지 유중권(柳重權)과 어머니 이소제(李少悌) 사이의 3남 2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1운동에서 활약한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였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3·1운동 당시 이화학당의 고등부 1학년이었는데 만세시위에 참가한 후 임시휴교령이 내려지자 고향인 천안으로 내려와 만세시위를 모의했다. 음력 3월 1일인 4월 1일 아우내 장날을 기점으로 시위대의 선두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했다. 일제의 무력진압으로 아버지와 어머니가 살해당했고, 유관순은 총 5년의 징역형을 언도받았다. 그러나 1년 뒤, 일제의 모질고 혹독한 고문으로 인해 1920년 9월 28알 19세의 나이로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사했다.
이제 집으로 가면서 대중교통으로 갈까하다가 남산에서 집까지 한번도 걸어가본일이 없었기에 한번 걸어가보려고 했다. 그래서 동대문 청계천 오관수교로 가서 청계천 산책로를 따라 집으로 왔다. 결국 오늘 걸은 코스는 국립극장입구에서부터 북측 산책로로 안중근 동상있는 공원을 거쳐 남산 팔각정으로 갔다가 국립극장쪽을 내려와 동대문 오관수교를 거쳐 청계천 고산자교까지 왔다. 만보계에는 오늘 22000보 걸었다고 되어있었다.
2020년 9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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