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가 20일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을 향해 “생각이 과거에 갇혀 정신승리에 빠졌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이날 민주당 초선의원 모임 강연에서 “지금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는 안보까지 좌우하는 반도체 문제”라며 “왜 (민주당에선) 친일 잔재 청산이 중요한 이슈가 되고 반도체는 이슈가 되지 않는가”라고 지적했다. 미중 반도체 전쟁이 한국 생존을 위협하는데도 과거에만 매달려 있다는 지적이다.
최 교수는 “민주당이 서울·부산시장 선거를 패배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의 지적대로 민주당은 겉으로는 반성을 이야기하면서도 검찰개혁이나 언론개혁처럼 민생과는 거리가 먼 소모적 논쟁으로 다시 회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이 기득권 정당이 됐다는 내부의 반성은 “당을 떠나라”는 친문 강경파의 목소리에 묻혀버렸다. 민주당 대표 선거전에 나선 의원들도 국민이 원하는 쇄신보다는 친문 표심 잡기에만 힘을 쏟고 있다.
이런 와중에 한국 경제를 둘러싼 불확실성의 파고는 하루가 다르게 높아지고 있다. 미국은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을 재편하기 위해 반도체 장비의 대중 수출을 차단하는 방안까지 논의하고 있다. 장비 수입이 막히면 중국 내 공장을 운영 중인 한국 기업도 유탄을 맞게 된다. 민주당은 어제 반도체기술특별위원회를 발족하고 상반기 중 종합지원 정책을 발표하겠다고 했다. 이제라도 대책 마련에 나선 것은 다행이지만 ‘상반기 중’ 대책은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정부와 여당의 대응도 시급하지만 한국 반도체 간판인 삼성전자의 총수 부재는 특히 아쉬운 상황이다. 반도체는 4, 5년 뒤를 내다보고 투자해야 하는 사업이다. 투자 시기를 놓치면 회복 불능의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과 대한불교조계종 주지협의회 등이 이재용 부회장의 사면을 호소하고 나선 것은 이런 현실을 고려한 것이다.
민주당 양향자 의원과 국민의힘 곽상도 의원 등 정치권에서도 이 부회장 사면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가 생존이 걸린 반도체 문제를 놓고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집권 여당은 어느 때보다 위기의식을 갖고 이 부회장 사면을 포함한 모든 방안을 열린 자세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자칫 과거에 매몰돼 시기를 놓치면 한국 경제를 떠받치는 기둥이 통째로 흔들릴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