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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 돌리기의 끝, ‘코인 재앙’이 임박했다스크랩된 좋은글들 2021. 5. 21. 07:19
폭탄 돌리기 끝에 어떤 재앙이 올지 상상만으로도 끔찍한데
청와대도, 금융위도 못 본 척 눈감고 있다
이토록 무책임한 정부를 본 적이 없다암호 화폐 사태의 불편한 진실은 이 문제가 세대 논쟁의 함정에 빠져있다는 점이다. 이른바 ‘꼰대’ 프레임이다. 코인 열풍에 올라탄 2030세대는 기성세대의 이해력 부족이 문제라고 한다. 위험성을 경고하는 지적엔 기술 진보에 무지한 ‘꼰대’ 딱지가 붙기 십상이다. 정치 공학도 작용한다. 정부와 정치권은 암호 화폐 이슈의 정치적 폭발성에 긴장하고 있다. 500여만명의 거대한 투자자 집단을 잘못 건드렸다가 역풍 맞을 것을 두려워한다. 문 정권이 암호 화폐를 투명인간 취급해온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 결과 한국의 암호 화폐 시장은 언제 파국이 와도 이상하지 않을 지경에 이르렀다. 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하고도 기이한 시장이 됐다.
서울 한 암호화폐 거래소의 시세 표시판. 중국 정부의 암호화폐 사용 단속등의 영향으로 비트코인 가격이 20일 하루새 30% 가까이 급락했다. /뉴시스
기자는 암호 화폐 찬성론자다. 블록체인 신기술로 무장한 암호 화폐들이 4차 산업혁명의 금융 엔진 역할을 할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현실은 이상과 거리가 멀다. 디지털 화폐 혁명의 꿈은 어디로 가고 탐욕과 광기와 방종이 판치는 거대한 투전판이 됐다. 묻지 마 투기 열풍이 불어닥친 암호 화폐의 대부분은 말 그대로 ‘쓰레기’와 다름없다. 9700여종에 달한다는 암호 화폐 중 신뢰할 만한 우량 코인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비트코인·이더리움 딱 두 개 정도만 살아남을 것이라는 극단적 비관론마저 있다. 대다수는 실체도 가치도 없는 쓰레기 잡코인이란 것이다.
문제는 어떤 것이 쓰레기인지, 투자가로선 가려 낼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금융 당국이 어떠한 공적 기준도 제시하지 않은 채 방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4년 전 암호 화폐를 제도권으로 끌어들여 주식처럼 공인된 투자 시스템을 만들었다. 엄격한 기준에 따라 거래소를 승인해주고, 거래소가 제대로 된 코인만 상장시키도록 했다. 한국 정부는 아직도 암호 화폐를 금융 상품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법적으론 화장지, 볼펜 같은 일반 공산품과 똑같이 취급받는다. 아무나 5만원만 내고 구청에 통신 판매업자로 등록하면 코인 거래소를 차릴 수 있다. 거래소들이 엉터리 코인을 상장해 유통시켜도 걸러낼 방법이 없다.
‘없는 자식’ 취급하니 정확한 실태 파악부터 불가능하다. 온갖 허접한 코인들이 난무해도 정부는 눈먼 깜깜이 신세다. 거래소가 몇 개나 있는지조차 정확하게 모른다. 사기가 판치고 범죄가 벌어져도 속수무책이다. 시세 조종을 해도, 허위 공시를 해도, 있지도 않은 유령 코인을 거래시켜도 변변히 처벌조차 못한다. ‘금융 상품’이 아니어서 단속할 법령이 없기 때문이다. 시골 할머니들이 단골 미용실 권유로 단체 투자했다가 날리고, 퇴직금이며 전세 자금을 털어 넣었다는 식의 피해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개입할 수 없다고 한다. 금융 상품이 아니란 이유다. 이게 정부인가.
코인 광풍은 ‘다단계 판매’에 다름 아니다. 먼저 산 투자자가 뒤에 온 투자자에게 계속 떠넘기며 손실을 눈덩이처럼 부풀리는 구조다. 폭탄 돌리기는 매수자가 나올 동안만 가능하다. 그러나 언제까지 계속될 수는 없다. 가격 상승에 대한 믿음이 깨지는 순간 붕괴할 수밖에 없다.
오는 9월 24일은 코인 폭탄에 불을 댕기는 날이 될 것이다. 이날부터 거래소 신고 제도가 실시되기 때문이다. 은행에서 실명 확인 계좌를 발급받는 등의 요건을 못 갖추는 거래소는 문을 닫아야 한다. 그토록 손 놓고 있던 정부가 자금 세탁 방지를 이유로 마지못해 제도를 도입하며 은행들에 심사 책임을 떠넘겼다. 그런데 자격 요건을 충족할 거래소는 몇 곳 되지 않는다. 227개로 추정되는 국내 거래소 대부분은 문을 닫아야 한다. 이들 거래소에 상장된 많은 잡코인들이 사실상 휴지 조각이 된다는 뜻이다.
폭탄 돌리기가 멈추는 순간,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는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9월 24일이 가까워지면서 인출 러시가 빚어지고, 못 빠져나간 투자자들이 아비규환에 빠질 것이다. 폭탄을 떠안은 피해자는 수만 명을 넘어 몇 십만, 몇 백만 단위에 이를 수도 있다. 가정 파탄이며 청년 파산 등의 사건들이 이어질 것이다. 비관 자살자가 속출할지도 모른다. 2000년대 초 닷컴버블 붕괴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사회적 재앙이 벌어질 것이 틀림없다.
이 재앙의 시나리오는 예정된 미래다. 얼마나 세게 터지느냐의 문제일 뿐 피할 도리가 없다. 오랫동안 문제를 방치한 정부의 무책임함이 코인 사태를 탈출구 없는 벼랑으로 몰아넣었다. 그렇지만 어느 누구도 분명하게 파국을 경고하는 사람이 없다. 전문가들은 ‘꼰대’로 공격당할까 봐 주저하고, 정부는 정치 논리에 함몰돼 못 본 시늉을 하고 있다.
재앙을 피할 수 없다면 차선은 피해를 최소화하는 일일 것이다. 정부가 솔직해져야 한다. 폭탄 돌리기의 끝이 다가왔음을 인정하고 공적(公的) 권위를 담아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던져야 한다. 시한폭탄의 초침이 째깍째깍 굴러가는데 청와대도, 금융 당국도, 눈 감고 앉아 재앙을 맞겠다는 투다. 이렇게 무책임한 정부를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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