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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삼성 회장이 남긴 두 가지 유산스크랩된 좋은글들 2021. 8. 17. 07:48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우리 국민에게 두 가지 유산을 남겼다. 첫째는 기업 유산이다. 이 회장은 창업주 이병철 선대 회장의 ‘사업 보국’과 ‘인재 제일’을 실천해 어려운 대내외 경영 환경에서도 삼성그룹을 세계적 기업으로 키웠다. 둘째는 재산의 사회 환원이다.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 등 국보 14점과 보물 46점 등 총 2만3000여점, 감정가 약 3조원에 이르는 미술품을 기증하고 상당한 규모의 재산을 사회에 쾌척했다.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한국미술명작' 전시 개막 첫날인 지난달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사전예약자들이 관람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유족들은 이 회장의 유산 중 60%를 사회에 환원하면서 의료 분야에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코로나19로 인류가 고통받고 있는 상황을 고려해 세계적 수준의 감염병 전담 병원 건립과 연구에 7000억원, 소아암·희귀질환 등 어린이 환자 지원에 3000억원 등 총 1조원을 내놓는다.
이 회장은 생전에도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암의 치료를 위해 이미 거액을 기부했다. 필자가 1995년 3월 서울대 암연구소장으로 임명받았을 때의 일이다. 당시 암연구소 시설이 열악해 건물 신축을 서울대 본부에 건의했더니 연구동 건립은 대부분 외부 지원에 의존하고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래서 여러 대기업에 연구동 건립 지원 제안을 했는데 삼성그룹이 지원을 약속했다. 이듬해인 1996년 3월 이 회장과 점심 식사를 함께했다. 당시 이 회장은 배석한 비서실장에게 “왜 박재갑 소장이 원하는 금액을 다 주지 않고 깎았느냐”고 질책해 깜짝 놀랐다. 당시 지원 금액은 300억원이었다. 지금 추산하면 아마도 3000억원쯤 될 것이다. 오찬이 끝날 무렵 이 회장이 한 말에 다시 놀랐다. “이렇게 중요한 안건을 삼성이 먼저 알고 해드렸어야 했는데 요청이 올 때까지 모르고 있었으니 죄송합니다.”
연구소 기공식은 1997년 11월 17일 열렸다. 이 회장은 기공식에서 “암 연구는 어느 한 연구기관의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며 선진국 연구 결과에 무임승차해 의존할 수도 없는 범국가적인 사업이라는 판단이 들어 연구소 사업을 지원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이 지원해 세운 삼성암연구동은 2000년 3월 지상 10층 규모로 완공됐다. 서울대 암연구소는 삼성암연구동 신축을 계기로 세계적인 연구기관으로 성장했다. 연구동에 있는 한국세포주은행에서는 암 연구뿐 아니라 코로나 바이러스 연구를 위한 세포주를 신속하게 분양해 국내 코로나 바이러스 연구에도 기여하고 있다.
이 회장의 지원은 그 후에도 지속되었다. 필자가 2000년 3월 국립암센터 초대 원장에 임명된 후 국고 지원만으로 운영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민간 지원을 받기 위한 공익재단인 ‘재단법인 국립암센터 발전기금’을 설립하려니 기본 재산 5억원이 필요했다. 삼성그룹 비서실을 찾아가 설립 취지를 설명하고 지원을 요청했다. 당시 이 회장은 폐암 치료를 위해 해외에 있을 때였는데도 지원을 결정했다. 삼성생명 3억원과 이 회장의 사재 2억원을 더해 국립암센터 발전기금 전달식을 가졌다. 삼성생명은 이후 25억원의 출연금을 더 기부했다.
역사적으로 전염병은 전쟁보다 더 참혹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보이는 적과 싸우는 국방을 전통적 국가 안보라고 한다면,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의 전쟁은 비전통적 국가 안보, 즉 건강안보라고 할 수 있다. 이 회장의 기부 및 유산의 사회 환원은 국민이 질병으로부터 안심하고 살 수 있는 건강 안보 시스템을 구축하는 초석을 놓았다는 의미가 크다. 또한 우리 문화 유산과 세계적 미술품을 기부해 국민이 이를 누릴 기회를 제공한 이 회장의 공헌이 문화재 기부 문화 확산의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2021년 8월 17일 조선일보 박재갑 서울대 의과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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