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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은 脫탄소 실현에 기여, 한국선 매력 못 느끼게 하는 분위기가 문제”스크랩된 좋은글들 2021. 11. 15. 07:03
13일 폐막한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COP26)는 원자력발전의 필요성이 다시 강조된 행사로 기록될 전망이다. 2050년까지 탄소 배출량 제로(0), 즉 탄소 중립을 이루려면 원자력이 필수적이라는 목소리가 커졌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원전 폐쇄와 재생에너지 확대를 먼저 경험한 유럽 국가들이 선봉에 섰다. 프랑스는 지난달 “탄소 중립을 위해 대형 원전을 더 지어야 한다”는 보고서를 낸 데 이어,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9일 이를 공식화했다. 유럽 10국 경제·에너지 장관들이 “원자력이 필요하다”는 공동 발표문을 내기도 했다. 영국 글래스고 COP26 행사장에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원자력(Nuclear4Climate)’이라는 코너도 등장했다. 원자력을 저탄소 ‘그린 에너지’의 범주에서 아예 빼버린 한국과 정반대 행보다. 유럽의 이런 변화를 이끌어온 사람 중 하나가 세계원자력협회(WNA)의 사마 빌바오 이레온 사무총장이다. WNA는 전 세계 원자력 업계의 대표 단체로, 여기서 나오는 원자력 관련 통계와 보고서는 국내외 정책 기관과 언론에서 자주 인용할 정도로 권위가 있다. COP26 행사장에서 지난 3일 국내 언론 최초로 그를 만났다.
-원자력 전문가로서 COP26을 평가하자면.
“원자력이 다시 인정받는 분위기다. 공개적으로 논의되지는 않았지만, 원자력 없이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이들이 크게 늘었다. COP26 현장에서 원자력을 이용한 탄소 저감에 대해 많은 질문을 받았다.”
-특별한 계기가 있나.
“유럽과 아시아, 특히 중국에서 발생한 석탄·천연가스 공급 위기, 풍력발전량 감소 사태 이후 두드러진 변화가 생겼다. 하루아침에 국가의 에너지 공급망이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지 않았나. 저탄소·저비용·안정적 에너지란 점이 부각되면서, 원자력과 수력 발전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었다. 무엇보다 일반 대중의 생각이 빠르게 바뀌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이들은 재생에너지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거라고 믿고, 원자력에는 관심이 없었다.”
-원자력에 대한 여론이 실제로 바뀌고 있다는 뜻인가.
“물론이다. 갑자기 전기가 나가고. 전기·가스 요금이 몇 십 퍼센트 뛰어오르는 경험을 하면 누구나 생각이 바뀐다. 원자력은 저탄소일 뿐만 아니라, 필요할 때 언제든 공급 가능한 안정적 에너지다. 날씨나 기후, 전염병, 지정학적 문제에 영향받지 않는다. 사람들이 갑자기 친(親)원자력이 됐다는 뜻이 아니다. 당혹스러운 경험을 통해 정부나 환경 단체가 아닌, 바로 소비자에게 에너지 선택권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는 것이다.”
-COP26에선 원자력에 대한 공개적 논의가 없었는데.
“우리 사회와 국가 안에 존재하는 ‘거대한 단절’ 때문이다. COP26에 오는 정부 관료나 정책 입안자, 환경 활동가들은 원자력에 대해서 잘 모르거나,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에너지 전문가가 아닌, 환경 전문가들이다. 이런 이들이 우리가 미래에 쓸 에너지를 논할 때 원자력을 건너뛰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과연 이들이 우리의 미래 에너지 정책을 결정하는 게 맞는지 묻고 싶다.”
-원자력이란 말 자체를 회피하는 것 같다.
“그렇다. 정치인이나 관료들이 ‘원자력’이라는 말을 꺼내는 것을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원자력으로 유권자에게 인기를 끌기 어렵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여론이 바뀌고 있다. 요즘 같은 상황에 에너지 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 하지만 탄소 방출량 저감과 에너지 안보를 위해 더 야심적이고, 실용적이며, 현실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원자력이 탄소 발생이 적고 안정적인 ‘일석이조’ 에너지라는 점은 확실한가.
“’일석이조’가 아니라 ‘일석다조’라는 점에서 확실하다. 원자력은 저탄소 전기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탄소 중립적인 ‘열’도 만들어 낸다. 도시 난방은 물론 시멘트, 화학, 제철 등 막대한 열을 요구하는 산업 전반에서 화석연료를 대체해 탄소 발생량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수소 경제도 앞당긴다. 원전의 열과 전기로 수소를 만들어 연료 전지에 쓰고, 저탄소 합성 연료도 만든다. 저탄소 합성 연료는 휘발유, 항공유, 디젤유를 바로 대체한다. 기존 내연기관을 쓰면서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것이다. 막대한 탄소를 배출하는 해운과 항공 여객 산업의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다. 원자력은 인류 문명을 빠르게 탈(脫)탄소화해 탄소 중립 시대를 급격히 앞당긴다.”
-원자력이 탄소 중립에 꼭 필요하다는 의미인가.
“탄소 중립을 위한 미래 에너지 생태계의 필수적 부분이라고 하겠다. 나는 원자력만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수력 등 다른 저탄소 에너지에도 투자해야 한다. 미래 에너지 생태계는 ‘다양성’이 높아야 한다. 특정 에너지원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아서는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야 어떤 상황에도 안정적 에너지 공급이 가능해진다. 원자력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은 분명하다. 이를 위해 각국 정부와 원자력 업계가 협력해야 한다. 원자력은 필수지만, 유일한 해결책은 아니다. 큰 그림의 중요한 조각이다.”
-한국은 정반대로 정부와 정치권이 나서서 원자력에 대한 불신을 심는다는 주장이 있는데.
“원자력을 좋아하지 않는 정부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의 원자력 산업이 세계 최고의 상업적 경쟁력을 갖고 있으며, 이 분야에서 놀라운 성공을 거뒀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렇게 훌륭한 산업을 정작 한국 국민이 이용할 수 없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나는 한국이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과감하게 줄여가는 과정에서, 원자력에 대한 생각이 바뀔 것으로 믿는다. 국민에겐 에너지의 탈탄소만 중요한 게 아니라 공급 안정성, 즉 에너지 안보 역시 중요하기 때문이다. 타국의 지정학적 판단에 휘둘리지 않는 에너지 자원을 보유해 ‘에너지 독립’을 이뤄야 한다. 원자력이 바로 그런 에너지다.”
-한국의 원자력 산업이 붕괴하고 있다는 우려가 크다.
“당장은 아니지만, 앞으로가 문제다. 한국의 똑똑한 젊은이들이 원자력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되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아무리 좋은 정책과 자금 지원이 있어도, 재능 있는 인재가 오지 않는 산업은 망하게 되어 있다. 한국의 원자력 산업은 한국만의 것이 아니라, 전 세계인의 것이란 걸 잊지 말아 달라. 한국 원자력 산업은 기후변화에 대처하면서 에너지 안보도 이룰 수 있는 ‘인류의 무기’다. 글로벌 경제의 탈탄소를 이끌 수 있는 대단한 잠재력을 가진 산업이다. 한국 정부도 이를 깨닫기를 희망한다.”
-원자력에 대한 대중의 오해나 막연한 두려움이 바뀌어야 하지 않나.
“원자력 업계가 기술과 안전에만 힘쓰다 원자력에 대한 바른 인식을 심는 노력을 제대로 못 한 게 사실이다. 원자력이 주류 에너지가 아닌 것처럼 인식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심리학과 사회학, 행동과학 등 ‘커뮤니케이션 과학’ 전문가들과 함께 원자력에 대한 진실을 알리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나만 해도 원자력 과학자라 홍보는 잘 모른다. 전문가들로부터 배운 노하우를 원자력 업계의 메시지를 만들고 전달하는 방식에 적용하려 노력하고 있다.”
-좋은 신기술이 많은데, 기존 원자로의 수명 연장을 해야 하는 이유는 뭔가.
“소형 모듈 원자로(SMR)나 토륨 발전 등은 분명 우수하지만 아직 경제성이 떨어진다. 반면 기존 원자로는 안전성과 경제성이 완전히 검증되어 있다. 기존 원자로를 지속적으로 손보면서, 안전성과 경제성이 유지되는 동안 계속 가동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상대적으로 적은 투자로 기존 원자로가 20~40년 더 가동 가능한 사례가 쏟아지고 있다. 최근 IAEA(국제원자력기구)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의 공동 연구에서도 기존 원자로를 장기간 이용하는 것이 가장 저렴하고, 탄소 저감 효과도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 원자로들이 안전하다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나.
“원전에 대한 규제·관리 시스템은 대단히 엄격하다. 조금이라도 문제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여겨지면 절대 가동 면허를 연장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지속적인 투자로 원자로를 잘 유지·관리해 온 덕분에, 약 95%가 가동 연장 판정을 받고 있다. 끊임없이 기술 혁신이 일어나고 있고, 이것이 기존 원자로에 계속 적용되고 있다. 10~20년도 아닌 30~40년씩 수명 연장이 가능해진 이유다. 현재 원전 사업자들은 어떻게 하면 원전을 최고로 잘 이용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다.”
-한국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탄소 중립은 인류 생존을 위해 꼭 달성해야 할 과제다. 그러나 그 실현 과정에서 세계인 누구나 풍부한 에너지를 저렴하고 안정적으로 쓸 수 있어야 한다. COP26에서 국가 간 의견이 다른 것은 바로 이 부분에서 입장이 갈리기 때문이다. 탄소 중립의 목표를 이루려면 원자력이 반드시 미래 에너지 생태계의 중요 부분이 되어야 한다. 원자력은 인류 생존을 위해 꼭 살려야 할 ‘기회’다.”
☞사마 빌바오 이 레온
스페인 출신으로 국립 마드리드 공대에서 기계공학과 에너지공학을 전공하고 미국 위스콘신 대학교에서 원자력공학과 공학물리학 박사 학위를, 에버렛 대학교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버지니아 커먼웰스 대학교 조교수, IAEA의 경수로 기술 개발 책임자로 일했다. 2018년 OECD 원자력청(NEA)의 원자력 기술 개발 및 경제 연구 총괄 책임자로 임명되면서 유럽 최고의 원자력 전문가로 인정받았다. 2020년 9월 세계원자력협회(WNA) 사무총장이 됐다. 사마가 이름이고 빌바오 이 레온이 그의 성(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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