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후보는 4일 오전 7시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회의에 불참했다. 특별한 일정이 없으면 윤 후보가 직접 주재하던 회의다. 대신 종일 자택에 칩거하며 선대위 쇄신 방안과 관련한 장고를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사무총장을 맡은 권성동 의원이 이날 오후 6시부터 2시간여 동안 윤 후보의 자택을 방문하고 나온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선대위 고위 관계자는 “윤 후보는 선대위 쇄신 방향에 대해 고민을 거듭한 것으로 안다”며 “기존 선대위를 해체한 뒤 실무형 선대위로 재편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윤 후보가 잠정 확정한 쇄신안에 따르면 기존 선대위를 대체할 새 기구의 명칭은 ‘선거대책본부’가 유력하다. ‘총괄-상임-공동’의 3단계 선대위원장직을 모두 없애는 대신 정책ㆍ홍보 등 핵심적인 5개 팀을 후보 직속으로 둘 예정이라고 한다. 이렇게 되면 김 위원장의 선대위 내 자리는 사라지게 된다. 후보 직속의 ‘초슬림형’ 선대본부 출범과 함께 윤 후보와 김 위원장은 사실상 결별 수순을 밟는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윤 후보 측은 “후보가 처음 정치 참여를 선언했던 당시 초심으로 돌아가 낮은 자세로 국민을 위하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등으로부터 ‘윤핵관(윤석열 측 핵심관계자)’으로 지목돼 공격 대상이 됐던 권성동 의원은 선대위 당무지원총괄본부장뿐 아니라 사무총장직을 자진 사퇴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번 당 내홍을 두고 당 안팎에서 ‘김종인ㆍ이준석 대 윤핵관’의 대결 구도로 바라보는 시선을 탈피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이날 윤 후보가 이틀째 공식일정을 취소한 뒤 칩거하면서 당 안팎에선 윤 후보의 의중을 두고 각종 해석이 나왔다. 특히 윤 후보는 전날 김 위원장의 일방적인 ‘선대위 쇄신’ 방안 발표와 소위 ‘연기 발언’에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고 한 측근이 전했다. 이 때문에 윤 후보와 김 위원장의 결별 가능성이 제기됐고, 실제로 윤 후보도 이 문제를 밤늦게까지 숙고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임태희 총괄상황본부장이 이날 오후 당사 기자실을 찾아 진화에 나섰다. 임 본부장은 “김 위원장이 윤 후보를 패싱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라며 “(3일) 9시 선대위 회의 당시 여러 의원이 선대위의 전면 쇄신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에 김 위원장이 결심했고, 기사가 바로 터져 나올 것을 우려해 후보와 상의 없이 전격적으로 발표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간 말을 아끼던 윤 후보 측의 반응은 격해졌다. 윤 후보와 가까운 정치권 인사는 “지금의 위기 상황을 초래한 책임을 묻는다면 1번이 윤 후보, 2번은 김종인 위원장, 3번은 이준석 대표”라며 “김 위원장은 지난 한 달간 선대위 전권을 행사했다. 그런데 인제 와선 마치 자신은 책임이 없는 것처럼 칼을 빼 드는 모습이 이해가 안 된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윤 후보 측 인사는 “내부 총질에 나선 이준석 대표 문제를 김 위원장이 해결하겠다고 공언해 놓고 무슨 해결을 한 게 있느냐”며 “선대위 개편 과정에서 김 위원장이 윤 후보를 ‘패싱’하고 이 대표와 내통한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쌓인 상태”라고 말했다.
그간 김종인 위원장과 불편한 관계였던 김병준 상임선대위원장은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윤 후보는 선대위 6개 본부장보다 이름과 책임이 더 큰 총괄, 상임선대위원장들이 일차적으로 사표를 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어제 후보가 무엇 때문에 일정을 다 취소하고 당사로 돌아왔겠느냐. 사표를 내고 안 내고는 김종인 위원장 본인의 마음이지만, 후보는 다 사표를 내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김 위원장은 ‘선대위 배제설을 들어본 적 있느냐’는 취지의 질문에 “그건 모른다. 후보의 마음을 내가 알 수가 없으니까”라면서도“그런 건 나하고 관계가 없다. 미안하지만 그런 질문은 안 하시는 게 좋을 거야”라며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이날 ‘김 위원장 결별 가능성’이 당내에 확산하자 “파국을 막아야 한다”는 선대위 관계자들의 윤 후보 설득 노력이 밤늦게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선대위 관계자는 “상당수 인사가 김 위원장과 결별할 경우 벌어질 수 있는 시나리오를 전달하며 윤 후보에게 김 위원장 쇄신안의 수용을 요청했다”며 “당면한 목표가 대선 승리인 만큼 윤 후보가 대승적인 결단을 내려주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윤 후보가 김 위원장과의 사실상 결별을 선택하면서, 그간 김 위원장과 호흡을 같이 해온 이준석 대표와의 관계도 더 멀어질 수밖에 없게 됐다. 이 때문에 김 위원장이 강세를 보여온 중도층과 이 대표가 견인해온 2030의 표심을 오롯이 윤 후보가 책임져야 하는 부담이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기정 기자 kim.kije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