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정치권으로부터 공격받는다는 기사가 인터넷에 오르면 이런 댓글이 심심치 않게 달린다. 푸대접을 받을 바엔 다른 나라 가서 사업하는 게 낫겠다는 자조적 표현이다.
실행 의지가 얼마나 강했는지 모르지만 오래전 삼성전자 내부에서 실제로 본사 이전을 검토해 본 적이 있다고 한다. IBM 같은 글로벌 기업도 사업부별 헤드쿼터를 각각 다른 나라에 두는 실험을 하던 시기다. 삼성의 결론은 옮기면 손해라는 쪽이었다고 한다. 국내 등록 반도체 특허 등 유무형 자산을 이전하는 비용이 너무 컸기 때문이라고 들었다.
‘역시 현실성 없는 얘기’라고 안심할 일은 아니다. 미래의 ‘삼성전자’들은 본사를 외국으로 옮기고 있기 때문이다. KOTRA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해외 진출한 한국 스타트업 중 절반(49.5%)은 본사를 해외에 뒀다. 삼성처럼 한국에 묻어둔 레거시가 없는 신생 기업들은 이미 해외에 뿌리를 두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들 가운데 삼성전자 같은 글로벌 톱 기업이 몇 개 나올지 모른다.
미국 등에 본사를 두면 기업 운영에 필요한 돈(투자)과 사람(인재), 시장을 확보하는 데 유리하다. 같은 기술과 제품을 가진 기업이라도 미국 시장에 뿌리를 두면 더 높은 몸값을 인정받는다. 소프트웨어 개발자 등 인재를 구하는 데도 유리하다.
미래의 ‘삼성전자’들이 한국을 선호했던 이유 중 하나는 ‘테스트 베드’가 된다는 점이었다. 앞선 모바일 인프라 등으로 새로운 걸 시도할 수 있다는 것은 시장이 작다는 한계를 뛰어넘는 매력 포인트였다. 하지만 지금도 그 경쟁력을 그대로 유지하는지 의문이다.
과거의 ‘삼성전자’들도 해외로 이전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2015∼2019년 국내 제조 기업들 고용을 분석해 봤다. 5년간 국내 일자리 18만 개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전자(약 11만 명)와 현대자동차(약 7만 명) 임직원 수를 합친 것 만큼이다. 같은 기간 해외법인 일자리는 약 42만 개 늘어났다. 반면 적극적인 리쇼어링(해외 생산시설 자국 내 복귀) 정책을 편 미국, 일본, 독일은 자국내 제조업 일자리를 3%가량 늘리는 데 성공했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기업을 수용하려는 의지 차이가 크다. 단적인 예로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반도체 공장을 짓기로 하면서 1조 원 넘는 세금 감면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3000억 원대 교육세 면제도 포함돼 있다. 청년들에게 좋은 일자리를 주려면 기업을 지원해야 한다는 데 지역 공동체가 동의한 결과물일 것이다. 반면 경기도 용인에 반도체 공장을 추진 중인 SK하이닉스는 토지 수용을 놓고 지역 주민과의 줄다리기에 수년째 발목이 잡혀 있다. 공장에 전깃줄, 공업용수 하나 끌어오려면 시청과 도청 문턱이 닳도록 오가야 했다. 결국 글로벌 속도전에 밀린 하이닉스는 기존 공장 부지에서 빈 공간을 찾는 플랜B를 고민 중이다.
기업 성장 관점에서 글로벌 이전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일자리 정부’라면 신생 스타트업이든, 제조 기업이든 한국을 떠나는 이유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진짜 국가경쟁력은 공공일자리로 일자리 통계를 분칠하는 데서 나오는 게 아니라 기업 시민들이 스스로 모여들어 혁신 가치를 자유롭게 실현하고 사회 발전에 기여하도록 매력적인 생태계를 유지하는 데서 나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