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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도 인자 달라져야제” vs “그라도 윤석열이는 못 찍지라”스크랩된 좋은글들 2022. 2. 26. 09:31
‘윤석열이 약속합니다. 광주에도 복합 쇼핑몰을!’
지난 21일 광주광역시 광산구 KTX 송정역 인근에 붙어 있는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현수막은 서울에서 보던 것과 달랐다. ‘국민이 키운 윤석열 내일을 바꾸는 대통령’이 공식 캐치프레이즈지만, 광주 지역 곳곳에는 복합 쇼핑몰을 내건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광주는 인구 145만명이 넘는 광역시임에도 스타필드나 롯데몰과 같은 복합 쇼핑몰은 물론, 창고형 할인 매장인 이케아와 코스트코도 없다. 지난 16일 송정매일시장에서 열린 집중 유세에 참석한 윤석열 후보는 “광주 시민들이 간절히 바라고 있는 복합 쇼핑몰을 유치하겠다”고 밝혔다.
대선을 보름여 앞둔 21일 <아무튼, 주말>이 광주의 주요 장소를 찾아 민심을 들었다. 민주당의 텃밭답게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 지지세가 강했지만, ‘복합 쇼핑몰’이 광주를 뒤흔들고 있는 태풍의 눈임은 분명해 보였다.
◇광주는 오일장만 시 개여
“광주가 복합 쇼핑몰은 없어도, 오일장이 시 개나(세 개나) 있다.”
광주 시장에 출마했던 나경채 전 정의당 공동대표가 윤석열 후보 의견에 반박하며 페이스북에 쓴 말이다.
자영업자이자 광주에서 자녀 셋을 키운다는 염모(42)씨는 “복합 쇼핑몰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광주에 오일장도 있고, 무슨 마트도 있다’면서 반박하는데 그게 정말 광주 사람들이 원하는 장소인지 따져봐야 한다”고 했다. “지금 광주에는 가족이 함께 갈 만한 시설이 거의 없고, 있더라도 굉장히 낙후돼 있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4시간 운전해 에버랜드 가야 한다.” 민주당 권리당원이라는 염씨는 “대선 공약으로 복합 쇼핑몰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씁쓸하다. 이번에는 자성하라는 차원에서라도 민주당은 안 찍는다”고 했다.
광주 양동에 거주하는 주부 임모(48)씨도 “언제까지 광주 사람들은 재래시장과 지역 식자재 마트에만 만족해야 하느냐”며 “조를 짜서 차로 2시간 거리 대전 코스트코에 장을 보러 다니는 게 광주 엄마들의 현실”이라고 했다. 임씨는 ”정치 모르는 아줌마지만 적어도 윤석열 후보가 한 말이 있으니 맡겨보면 광주가 새롭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지난 21일은 광주 광산구 비아 오일장이 서는 날이었다. 오일장에서 만난 시장 상인들이나 50대 이상 연령층에선 복합 쇼핑몰에 반대하거나, 쇼핑몰은 필요하더라도 국민의힘은 지지하지 않겠다는 의견이 여전히 높았다.
비아 시장에서 건어물 장사를 하는 이모(50)씨는 “국회의원도 아니고 대통령 후보나 돼서 쇼핑몰 하나 지어준다는 공약을 내놓아서 쓰겄냐”며 “광주 시민을 ‘떡 하나 줄 텐게 뽑아줘’ 이런 식으로 얕잡아 본 것 같아 상당히 기분 나쁘다”고 했다. 시장에 장 보러 나왔다는 이모(58)씨도 “그게 들어오면 지역 상권이 죽어불고, 소상공인이 망해분다”며 “개인 이익보다는 다 같이 좋은 걸 선택하는 게 광주 사람들”이라고 했다.
60대 광주 시민도 “복합 쇼핑몰이야 있으면 좋겠지만 공약 하나 때문에 윤석열 후보를 찍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아무래도 광주 시민들은 군사독재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응께요. 윤석열 후보가 되면 검찰 공화국이 될까 겁나제이. 복합 쇼핑몰이 진짜 필요한 거라면 윤석열 후보 아니더라도 맹글겄제.”
◇쇼핑하러 타 도시 원정 간다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는 광천터미널 인근 신세계백화점과 유플렉스로 갔다. 2015년 신세계가 지하 7층 지상 21층 규모의 특급 호텔과 복합 쇼핑몰 건립을 추진했으나, 지역 상인들과 시민 단체 등의 반대로 무산된 지역이다.
이날 신세계백화점에서 만난 30대 A씨는 “얼마 전에도 부산 센텀시티로 원정 쇼핑을 갔었다”며 “광주에 백화점이 두 개 있다고는 하지만, 브랜드 파워가 너무 약하다. 샤넬 같은 명품은 물론이고 젊은 층이 좋아하는 COS 같은 중저가 브랜드군도 찾기 어렵다”고 했다. 특히 최근엔 광주에 단 하나 있던 롤렉스 매장마저 철수했다. 대신 튜더 매장이 준비 중이다.
유플렉스 내 영화관 앞에서 만난 김모(24)씨는 “광주는 충장로나 상무지구 아니면 놀러 갈 곳이 없다. 쇼핑몰뿐 아니라 20년 전 시작한 지하철 2호선도 아직까지 완성되지 않고 있어 너무 불편하다”고 했다. 김씨는 “그렇지만 윤석열 후보를 찍는 건 망설여진다. 차라리 안철수 후보를 찍을 것 같다”고 했다.
광주에서 최근까지 직장 생활을 했으나, 곧 경기도로 이직할 계획이라는 장모(29)씨는 “광주엔 서브웨이(유명 프랜차이즈 샌드위치 가게)가 2017년에야 들어왔다. 오픈 첫날 사람들이 줄 서서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 전엔 부산이나 서울 등지로 여행 갔다가 서브웨이를 보면 2개씩 사서 들고 왔다”고 했다. 장씨는 “지금까지 나뿐 아니라 부모님도 다 민주당을 찍었는데, 우리는 다른 지역 사람들이 당연하게 누리는 것도 이용하지 못하고 살았다”며 “그래서 수도권으로 가려고 한다”고 했다.
광주에서 초·중·고와 대학까지 마쳤다는 취업 준비생 정창수(28)씨는 “호남에선 어차피 민주당 몰표가 나올 것”이라면서도 “그렇다고 젊은 층에서 소수라도 표현 안 하면 진짜 소외당할 것 같아 이번엔 국민의힘에 한 표 행사하겠다”고 했다. “시민 단체는 기득권 집합소가 돼 버렸고, 시·구·의회는 몇 십 년째 특정 정당이 독식하고 있다. 그러면서 5월 정신·광주 정신을 내세우며 MZ세대에게 전혀 와닿지 않는 희생만 요구한다. 그 피해는 결국 젊은 세대가 짊어질 것이다.”
◇결국 민주당이긴 합디다만
50대 택시 기사는 “요즘엔 손님들과 정치 얘기를 함부로 하지 않는다”고 했다. “예전엔 무조건 민주당 아닙니까, 긍께 정치 얘기를 해도 분란 생길 일이 없죠. 근디 요즘엔 젊은 손님은 물론이고, 나이 많은 어르신 중에도 윤석열 후보 잘한다는 사람이 많아요. 잘못 얘기 꺼냈다간 싸움나 분단께요. 그래도 결국 민주당이기는 합디다만….”
지난해 광주에서 열린 만민 토론회에서 실명으로 문 정부의 경제 정책을 비판해, 조국 전 장관 등에게 ‘좌표 찍기’를 당한 ‘커피 루덴스’ 사장 배훈천(53) 씨는 “작년 만민 토론회 때만 해도 그런 발언을 한다는 것 자체가 조심스러웠고, 전화 테러 등 엄청난 고초를 겪었다”며 “그런데 지금 광주 지역 온라인 커뮤니티를 보면 ‘이번에는 빨간 당 찍을란다’고 당당히 말하는 사람도 있다. 전두환 당 옹호하는 사람은 발붙이고 살 수가 없는 게 광주의 룰이었는데,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고 했다.
실제 최근 여론조사에서 윤 후보는 과거 보수 정당 대선 후보가 광주·전라 지역에서 획득한 지지율을 넘는 수치를 보이고 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TBS 의뢰로 18·19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윤 후보는 광주·전라 지역에서 27.7%의 지지율을, 이재명 후보는 61.5%를 얻었다.
배씨는 “광주에선 최근 학동 재개발 구역 건물 붕괴·화정 아이파크 붕괴 등 대형 사고가 연이어 일어났다”며 “건설사 문제도 크지만, 관리 감독과 견제의 역할을 맡은 담당 구청이나 시의원이 제대로 일했다면 이런 문제가 생겼겠느냐”고 했다. “더 분통 터지는 건 학동 붕괴에 5·18 구속 부상자회 회장 등이 연루됐다는 의혹이다. 5·18을 이렇게 오염시키고, 광주 시민의 명예를 짓밟을 수 있느냐. 예전에 광주에선 시민 단체 활동을 한다고 하면 존경스러웠는데, 이제는 기득권을 지닌 토착 세력이 돼 버렸다.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광주에선 정치하겠다는 사람들도 시민들 이야기 듣는 것보다는 민주당 의원 앞에 가서 줄 선다. 공천만 받으면 끝이니까. 이제는 끝내보자는 게 바닥에서부터 끓어오르고 있다.”
광주 동구에 사는 박모(41)씨는 “지금껏 광주 시민들이 민주당을 지지한 건 호남의 열악함과, ‘전라디언’이라고 당하는 소외를 해결해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었다”며 “그런데 민주당은 해결해주지 못했다. 민주당이어도 아닌 건 아니라고 하는 게 진짜 광주 정신”이라고 했다.
3월 9일 ‘광주 정신’은 어떤 모습으로 드러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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