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앞두고 개봉한 ‘나의 촛불’
유력 정치인들과 일반 시민들 “우리가 역사 바꿨다” 자찬하며 대통령 탄핵 이끈 ‘촛불 집회’ 찬양
그렇게 탄생한 文 정권 5년… 대한민국은 지금 행복한가?
‘나의 촛불’은 2016년 겨울, 현직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낸 촛불 집회를 다룬 다큐멘터리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비롯해 추미애 우상호 안민석 박주민 등 당시 야권 정치인들과 손석희 유시민 박영수 같은 인물들이 인터뷰 형식으로 그날을 ‘증언’한다. 대선 후보 4인방도 등장한다. 윤석열과 심상정은 인터뷰로, 이재명과 안철수는 당시 영상으로 소환된다. 2018년 제작한 이 다큐는, 대선을 한 달 앞둔 지난 10일 전격 개봉했다.
2016년 12월 24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에서 광장을 가득 메운 참가자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측각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 정부서울청사 외벽에는 '박근혜 구속 조기 탄핵'이라는 문구를 비추고 있다./오종찬기자
나는 촛불을 들지 않았다. 총 23차례에 걸쳐 수백만이 모이고, 다섯 살 코흘리개까지 나와 ‘박근혜 구속’을 외쳤다는 촛불 집회에 가지 않았다. 박근혜 지지자여서도, ‘태극기’여서도 아니다. “인류 민주주의 문명사에 기록될 사건”(유시민) “시대의 대전환”(박원순)이었다는 촛불의 뜨거운 함성이 어쩐 일인지 내게는 사무치지 않았다.
광화문 광장에 세워진 조형물들부터 거북했다. 섹스 비디오 등 온갖 유언비어의 제물이 된 여성 대통령은 탐욕으로 뒤뚱대는 암탉, 머리에 뱀이 똬리를 튼 마녀로 그려졌고, 포승에 묶인 기업인들은 인민재판에 끌려 나온 죄수의 형상으로 군중의 발에 차였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나라가 망해가고 있다”며 분노했지만, 일견 즐거워 보였다. 일사불란하게 조직된 집회에선 연예인들 공연이 펼쳐졌고, 박원순의 서울시는 집회 참가자들을 위해 지하철 운행 횟수와 화장실을 늘렸다. 최루 가스 자욱한 광장에서 백골단에게 쫓기며 독재 타도를 외쳤던 80년대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촛불에 대한 삐딱한 시선이 나의 무지와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길 바라며 다큐를 봤다. 몇몇 장면은 흥미로웠다. 심상정 당시 정의당 대표가 “박근혜는 대통령 하기엔 너무 소박한 사람”이라며 연민을 드러내는 장면, 박지원 우상호 등 당시 야당 인사들이 “촛불 민심에 타버릴까 두려워 탄핵을 당론으로 결정하고도 박수를 치지 못했노라” 고백하는 대목이다. “박근혜가 계엄령을 준비한다는 정보가 돈다”고 주장했던 추미애 당시 민주당 대표도 ‘본심’을 털어놓는다. “계엄 통치에 익숙한 사람이잖아. 꿈 깨라, 그런 선제적인 엄포를 해야 했다.” 탄핵 정국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기무사 계엄령 검토 문건’은 결국 실체 없는 사건으로 무혐의 처리됐다.
가장 서글펐던 대목은, 인터뷰에 응한 ‘촛불 시민’들이 “우리가 역사를 바꾼 주인공이었다”며 가슴 벅차 하는 장면이다. 혹독한 겨울, 그들이 치켜든 촛불로 권력을 얻은 문재인 정권의 지난 5년이 주마등처럼 스친 탓이다.
현직 대통령을 끌어내린 촛불 집회는 내전에 버금간다는 말이 나올 만큼 대한민국을 두 쪽으로 갈라놓았다. 촛불을 ‘혁명’이라 부르며 집권한 정부는 적폐 청산, 역사 청산에 몰두하느라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국민이 먹고살 거리는 만들어내지 못했다. 목소리 큰 집단, 소셜미디어로 조직된 졸속 여론이 청와대를 지배하고 의회 정치를 흔들자 부동산 참사, 안보 참사, 원자력 참사가 잇따랐다. 촛불에 올라탄 정치인들은 성폭행, 자녀 특혜, 뇌물 의혹에 떠밀려 사라져갔고, ‘박근혜 무덤을 파 아버지 유해 곁으로 보내자”고 선동했던 이는 단군 이래 최대 토건 비리 의혹을 받는 사건의 중심에 서 있다. 탈원전을 부르짖던 대통령이 돌연 원전 컴백을 선언한 지난 금요일, 퇴근길에 만난 택시 기사는 “이러려고 내가 촛불을 들었나 자괴감이 든다”며 허탈하게 웃었다.
나꼼수 주진우와 함께 ‘나의 촛불’을 만든 배우 김의성은 인터뷰에서 “박근혜를 만나면 꼭 묻고 싶은 게 있다”고 했다. “당신을 대통령으로 만든 사람은 누구인지, 자격 미달인 걸 뻔히 알면서 대통령 자리로 끌어올린 사람들은 누구인지, 그들은 지금 무엇을 하는지.” 그러나 2018년에 제작한 이 다큐는 하필 2022년에 개봉하는 바람에 그 시의성을 잃었다. 오히려 질문은 촛불로 권력을 얻어 5년 임기를 다해가는 문재인 대통령을 향한다. “당신을 대통령으로 만든 사람들은 누구인가. 촛불의 대의를 받들어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던 약속은 어디로 갔는가. 분열과 갈등의 정치를 끝내고, 특권과 반칙이 없는 세상을 만들고, 한미 동맹을 강화해 안보를 지켜내겠다던 약속은 어디로 갔는가. 우리는 지금 행복한가.”
영화는 세월호 추모 노래가 흐르며 끝난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2022년 오늘도 이 노래가 섬뜩하게 파고드는 이유는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