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투표 제도가 도입된 건 2013년 4월 재·보궐선거다. 전국단위 선거로는 2014년 지방선거에서 처음 실시됐다. 2020년 실시된 21대 총선 사전투표율은 26.69%로 전체투표율의 3분의 1을 넘었다. 19대(54.2%) 이후 20대(54.2%)·21대(66.2%) 총선을 거치며 꾸준히 높아진 투표율은, 투표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높인 사전투표를 빼놓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패배한 쪽에선 사전투표가 음모론의 대상이다. 보수 지지층 일각에선 21대 총선 대패 이후 전자 장비를 동원해 투표 결과를 조작한다는 ‘해킹설’, 관련 장비들이 중국산이고 개표 사무원들 중 중국인이 많아 부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중국 개입설’ 등 부정선거론이 등장했다. 진보 진영에서는 사전투표 도입 이전인 18대 대선 패배 이후 ‘K값 조작설’ 등 개표조작 음모론이 퍼진 적이 있다.
광범위한 사전투표 음모론은 한국에서 관찰되는 진풍경이다. 스웨덴은 선거일 18일 전부터 장기간에 걸쳐 사전투표를 실시한다. 심지어 사전투표를 했더라도 선거 당일 투표소에 가서 투표를 바꿀 수도 있다. 스위스에서는 우편부재자 투표가 가능하다. 대도시에서는 참여율이 60~90%에 이른다. 한국보다 훨씬 개방적인 사전투표제를 갖고 있지만 투·개표 부정을 둘러싼 논란이 거의 없다.
이는 제도·시스템에 대한 국민 신뢰가 세계 최하위권을 맴돌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 싱크탱크 레가툼연구소가 발표한 ‘2021 레가툼 번영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사회자본 부분에서 167개국 중 147위를 기록했다. 교육(2위)·건강(3위)·경제(9위) 등 다른 지표가 상위권을 차지한 것과 뚜렷하게 대비된다. 개방적 제도에도 사전투표 논란이 없는 스웨덴(6위)·스위스(9위)는 물론, 앙골라(146위)·베네수엘라(144위)에도 순위가 뒤졌다. 순위가 더 낮은 나라는 아프가니스탄(167위)·시리아(166위) 등 최근 전쟁을 겪은 곳이 다수다.
대선 막바지 국민의힘은 지지층의 사전투표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음모론 확산 차단에 사활을 걸고 있다. 민주당 역시 사전투표율 제고 캠페인 중이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이 음모론 해소의 근본 해법이 될지는 의문이다. 저신뢰의 끝에 정신적 내전 상태라고 할 정도로 극심한 진영 갈등이 자리잡고 있어서다. 무너진 신뢰를 복원할 방법을 진지하게 고민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