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렌스키 대통령 국회 연설 망신, 거대 정당의 떼거리 입법 폭주. 이런 국회의원에 특권 필요한가? ‘검수완박’ 아니라 ‘국특완박’을 새 정부 나서면 국민 지지할 것
한국 국회의원이 누리는 특권은 세계적이다. 어디 가나 왕 대접을 받는다. 반면 스웨덴 국회의원은 특권이 거의 없다. 그냥 동네 아줌마, 아저씨들이다. 그런데 젤렌스키의 호소를 듣는 자세는 이렇게 다르다. 한국은 국회의원의 6분의 1이 참석했지만 스웨덴은 국회의원 거의 모두가 참석했다.
검수완박의 선봉장, 윤호중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검찰과 언론을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특권 영역”이라며 “이 특권을 해체하는 일에 민주당이 나섰다”고 했다. 정파가 같으면 이런 말도 지지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하지만 아무리 열혈 지지자라도 ‘마지막 특권’이란 대목엔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특권의 끝판왕, 한국 국회의원이 있기 때문이다.
면책, 불체포 특권, 보좌 직원 7명, 본인을 포함해 한 해 인건비 5억여 원, 45평 사무실, 비행기 비즈니스석, 철도 최상 등급 좌석, 출국 시 귀빈실 이용, 차량 유지비·유류비 지원 등 한국 국회의원은 이 땅에서 세금으로 받을 수 있는 모든 혜택을 누린다. 물론 그들이 산출하는 국익이 더 크면 특권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럴 경우엔 더 해줘야 한다.
이들의 진짜 특권은 다른 차원이다. 특권을 누리면서도 나태하게 살 수 있는 특권, 엉터리 법과 세금 나눠 먹기로 국익을 좀먹을 수 있는 특권, 후진국 매너로 국가 위신을 추락시킬 수 있는 특권, 무식하게 대들수록 팬덤 정치의 영웅으로 떠오를 수 있는 특권이 있다. 위안부 피해자 기부금을 빼먹고도 특권을 계속 누릴 수 있는 특권까지 있다. ‘금배지엔 100가지 특권’이란 말처럼 끝이 없다.
한국 국회의원의 수준을 세계에 보여준 열흘 전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화상 연설 장면은 한국 정치의 대표적 흑역사로 남을 것이다. 국회의원 300명 중 50여 명 참석했다. 장애인인 이상민 의원은 휠체어를 타고 왔다. 그런데 나머지 240여 명 대부분이 이날 무슨 일을 했는지 파악도 되지 않는다. 연설장에서 졸거나 전화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래도 안 온 사람보다 낫다. 엿새 전 ‘만물상’ 칼럼에서 이 장면을 비판했더니 “이게 한국 수준”이란 의견이 달렸다. 이해하지만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장소가 중학교였어도 이보다는 많이 모였을 것이다.
국민에게 우크라이나 전쟁은 사실 먼 이야기다. 경유, 식용유, 밀가루 가격을 보고서야 피부로 정세를 체감할 수 있다. 대부분 나라 국민이 이렇다. 그래서 국민보다 깊은 관심을 갖는 전문가 엘리트를 뽑아 정치를 시킨다. 그런데 한국에선 국회의원이 국민보다 우크라이나에 관심을 덜 갖는다. 국민이 일을 맡겨도 안 할 특권이 있기 때문이다. 특권에 빠져 사느라 경유, 식용유, 밀가루 값을 체감할 일도 거의 없다. 심지어 많은 국회의원이 국제 뉴스도 안 본다.
‘그레이트 게임’이란 말이 있다. 유라시아 패권을 노리는 러시아의 남하(南下)와 이를 막는 영국 제국의 장기전을 말한다. 19세기 세계사는 이 말로 대부분 설명된다. 게임의 시작은 우크라이나 크림 전쟁, 종착점은 영국을 대리한 일본과 러시아가 맞붙은 러일전쟁이다. 전쟁 결과, 한국은 망했다. 일본의 비약, 한국의 멸망은 이 게임의 결과물이다. 세계사를 모르면 한국과 우크라이나가 역사적으로 밀접한 나라라는 사실을 알 수 없다. 영원히 7500km 떨어진 낯선 나라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적 시야를 갖고 우크라이나 사태가 남의 일이 아니란 사실을 국민에게 설명해야 할 의무가 정치인에게 있다.
일본 국회에서 열린 젤렌스키 대통령 연설. 국회의원 500여명이 참석해 진지하게 경청했다. 총리, 장관, 국회의장도 참석했다. 외무장관이 마스크 안에서 하품을 하다가 카메라에 잡혀 "일본의 수치"라는 비난을 받았다.
한국이 망한 결정적 원인은 당시 정치인이 제공했다. 일본이 흥한 원인도 정치인이다. 한국 정치인이 세상과 담을 쌓을 때 일본 정치인은 세상으로 나갔다. 당시 양국 정치인의 차이를 보여주는 많은 일화가 있지만, 얼마 전 국회에서 벌어진 장면만큼 생생하게 보여주지 못한다. 젤렌스키 연설에 일본 국회의원 500여명이 참석했다. 총리, 국회의장, 장관도 함께 경청했다. 진지했다. 외무장관이 마스크 안에서 하품했다가 “나라의 수치”라는 비난까지 들었다. 무언가 거꾸로 됐다. 일본이 아니라 세상사에 어두워 나라를 말아먹었던 한국의 정치인들이 이런 자세를 보여줘야 하는 게 아닌가.
한국 정치인들은 미국, 중국, 러시아 등 강대국 사이를 오가면서 이익만 챙기면 된다고 믿는다. 한국은 그래도 되는 변방이라고 생각한다. 사드, 쿼드를 말하면 중국의 경제 보복을 말한다. 중국이 말하기 전에 스스로 한다. 바람이 불기 전에 눕는다. 그게 상책이라고 한다. 조선 말 세계관과 달라지지 않았다. 세계관이 달라지지 않으면 미래도 달라지지 않는다. 우크라이나가 강대국이어서 버티는 게 아니듯 국력이 크다고 강한 나라가 아니다. 정치인이 저질이면 삼성의 성과도, 한류의 바람도 순식간에 사라진다.
한국 국회의원 가운데엔 뛰어난 사람이 많다. 그런데 아까운 인재들이 들어가 휩쓸리는 순간 단숨에 밑바닥으로 내리깔리는 장면을 여러 차례 봤다. 그들의 정신을 썩혀버리는 특권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시대에 정말 필요한 일은 국회의원의 특권을 완전히 박탈하는 것이다. 집단 특권을 없애야 요즘같이 떼로 몰려 폭주하지도 못 한다. 검수완박처럼 이름을 붙이면 국특완박이다. 국회의원 스스로 할 수 없다. 새 정부가 총선 과제로 제시하면 거의 모든 국민이 지지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