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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자여, 제 손으로 송덕비를 세우지 말라스크랩된 좋은글들 2022. 4. 29. 07:12
우리는 과거에서 놓여나야 한다. 우리는 과거에 대해 너무 많이 논쟁한다. 그것도 단순한 편린적 과거에 매달린다. 큰 줄기로 볼 때는 ‘기적의 역사’였던 자랑스러움을 조각으로 잘게 쪼개서 ‘적폐의 과거’로 깎아내린다. 과거사의 진상은 그렇게 규명하는 게 아니다. 역사와 과거는 다르다. 과거는 흘러가지만 역사는 남는다.
저들은 국민 다수가 잊고 있었던 ‘죽창’이란 말을 되살려 냈다. 그것은 백 수십 년도 넘은 오래전에 흰옷 백성의 무기였다. 검은 관복으로 무장한 공권력에 맞서 민초가 죽창을 손에 들었다. 지난 5년 집권 세력은 피압박 계층이 들었던 죽창을 이번엔 제 손에 움켜쥐었다. 21세기 죽창은 무차별적이었다. 사회 곳곳에 죽창가를 울려 퍼지게 했고, 국민은 죽창을 휘두르는 쪽과 죽창에 무참히 찔리는 쪽으로 두 동강 났다.
지난 5년 죽창은 과거를 재단하고 전복하는 상징적 칼이었다. 엘리트 주류를 내몰고 비주류를 전진 배치할 때 그들 손에 쥐여준 것도 바로 총성 없는 죽창이었다. 정권은 함부로 과거를 호출하여 자기들 마음대로 해석하고 국민에게 들이밀었다.
우리는 이제 유난히 과거에 목을 매던 정권과 이별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3분의 1인 행정부만 떠나보낼 뿐, 3분의 2인 입법부와 사법부는 그대로 남는다. 그것이 여전히 새 출발 정부의 발목을 묶으려 하고 있다.
죽창을 든 쪽에서 중점적으로 했던 일은 성역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대통령이 검찰에 “성역 없이 수사하라”고 당부했다는 말은 죽창을 든 쪽은 건드리지 말라는 뜻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대통령이 임기 끝을 코앞에 두고 한 말은 “세월호의 진실은 밝혀야 한다”는 것이었다. ‘진실 밝히기’ 놀이를 끝내 버리지 못했다.
김학의 사건, 버닝썬 사건, 장자연 사건도 다시 파서 꺼내봤고, 기무사 계엄령 의혹 사건도 다시 헤집었다. 결과는 없었다. 속셈은 따로 있었다. 어디서든 삿된 정치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라면 서슴지 않고 죽창가를 불렀다. 다만 대장동 게이트, 이스타항공 의혹처럼 끝내 죽창 부대를 보내지 않는 곳도 있다.
죽창들이 성역을 만드는 이유는 그래야 적폐 청산에 대한 비판과 반발을 원천 봉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적폐 청산의 과오를 덮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정권은 성역을 생산하는 공장이었다. 성역을 만드는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망가뜨렸다.
성역은 과거에도 있지만, 현재에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성역이 국회다. 이를 상징하는 표현은 “감히 임명직 공무원이 선출직 권력에게 대든다”는 말이다. 죽창과 특권 의식으로 갑옷을 차려입기라도 한 듯이 저들은 ‘선출직’이라는 말에 힘을 준다. 그래서 그럴까. 대통령의 국회 해산권이 없어진 게 한탄스러울 뿐이다.
사실 현대 민주주의의 가장 큰 폐해는 국민이 낸 세금을 집행하는 고위 공직자를 선거로 뽑을 수밖에 없고, 그로 말미암아 포퓰리즘의 횡행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 없다는 데 있다. 그럼에도 이런 문제의식 따윈 길바닥에 버렸는지, 저들은 ‘선출직 특권’으로 목에 풀을 먹인 듯 빳빳하다. 그런 선출직들은 부끄러움을 모른다. 그래서 뭐든 ‘완전히 박탈하는’ 일을 벌이고 대못을 박는다.
대통령이 역사와 대화하려고 욕심을 내는 것이 화근이다. 청와대에 입성하자마자 ‘감히’ 역사에 남을 자기 이름을 생각한다. 치유 불능의 나르시시즘에 빠져 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살아 있을 때 자신의 동상을 세우는 일과 비슷하다. 대통령은 역사와 대화하는 자리가 아니라 역사의 평가를 기다리는 자리다. 대통령과 그 수하들이 마지막에 내놓는 인터뷰를 보면, 떠나는 자가 제 손으로 송덕비를 세웠다는 봉건시대 현감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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