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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식일 원조는 유대교 토요일… 기독교는 로마가 일요일로 바꿔
    스크랩된 좋은글들 2022. 6. 14. 06:28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뿐 아니라 불교와 조로아스터교에서도 천사는 존재한다. 유대교에서 천사는 하느님이 불로 창조한 영적 존재들이다. 천사는 신과 인간의 중개자로 천사라는 말 자체가 히브리어로 ‘심부름꾼’을 뜻한다. 그들은 신의 뜻을 인간에게, 인간의 기원(祈願)을 신에게 전하는 존재다. ‘창세기’에서 천사는 여호와의 명령을 전달하며, 여호와를 대신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하고 행동한다. 아브라함과 야곱을 지켜주기도 하며, ‘출애굽기’에서는 홍해를 건너는 유대인을 보호하기도 한다.

     
     

    악마도 있다. 히브리어 단어 ‘사탄’은 구약에서 27번 나타난다. 일부 천사들은 감히 창조주처럼 그들 자신이 강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급기야 루시퍼를 비롯한 많은 천사가 하느님을 배반하여 선한 천사와 악한 천사로 나뉘게 되었다. 악한 천사가 바로 악마(사탄)이다. 천사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안겔로스’이다. 이 말에는 신에게서 파견된 사제·예언자라는 뜻이 있다. 기독교에서 천사는 지혜롭고 능력이 뛰어난 영(靈)으로 신에게 봉사하며 인간을 수호한다. 인간에게는 사람마다 수호천사가 있다. 천사는 그 사람이 인생의 최고 목표인 천국에 갈 수 있도록, 선행을 권하고 악을 피하게 해준다.

     

     

     

    천사와 악마는 세 종교가 영적 존재로 소개 -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에서는 천사와 악마를 영적 존재로 소개한다. 천사는 신과 인간을 중개하는 심부름꾼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고, 악마(사탄)는 하느님을 배반한 천사라고 말한다. 세 종교는 “나만 옳고 너희는 틀렸다”며 서로 반목하고 대립하는 갈등을 끝내고 포용하는 평화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그림은 예수가 사탄(맨 오른쪽)의 유혹을 물리치는 장면을 묘사한 19세기 작품이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유대교에서 천사는 신의 심부름꾼

    이슬람교의 천사 역시 인간을 섬기도록 만들어졌다. 알라가 인간을 창조하고 천사들에게 말하기를 “머리를 조아리고 인간을 경배하라. 내가 인간에게 나의 생기를 불어넣었음이라”고 했다. 곧 인간에게는 신성이 있다는 뜻이다.

     

    세 종교의 안식일에도 차이가 있다. 곧 금요일은 이슬람교, 토요일은 유대교, 일요일은 기독교의 안식일이다. 달을 중심으로 하는 음력을 세는 유대인의 하루는 달이 보이는 일몰로부터 시작된다. 창세기에 보면 ‘하느님께서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이 생겨났다. 이렇게 첫날의 밤, 낮 하루가 지났다’라고 쓰여 있다. 하루를 일몰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다. 원래 세 종교의 안식일은 유대교의 안식일과 같은 토요일이었다.

     

    기독교에서 안식일이 일요일로 바뀐 사정은 이랬다. 예수 이후 로마제국에서는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이 공존하며 함께 예배를 보는 등 모두 안식일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다 서기 132년 유대인 반란으로 인해 안식일 금지 칙령이 생겼다. 로마제국은 안식일을 지키는 기독교인들도 유대인과 마찬가지로 박해를 가했다. 그러다 321년 콘스탄티누스 황제 때 로마제국에 안식일 개념이 처음 도입되었다. 그는 유대력에 기초한 기독교의 주 7일 제도와 로마의 일곱 행성 신들의 이름을 혼합시켜 요일 이름을 정했다. 그리고 태양신의 날(Sunday)을 일주일의 첫째 날로 정해 휴일로 선포했다. 이를 통해 콘스탄티누스는 로마제국의 2대 종교, 곧 태양신 아폴로를 숭배하는 신도들과 기독교도들을 묶어 단일 종교로 합쳐보려는 야심찬 종교 정책을 시도했다. 그 뒤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태양의 날인 일요일을 예수 부활절로 의결한 이후 콘스탄티누스는 교회도 태양신의 날인 일요일에 예배를 보도록 했다.

     

     

    6세기경에 만들어진 이슬람교도 처음에는 유대교를 존중해 두 종교를 합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하며 안식일을 지켰다. 그러다 유대인들이 무함마드의 이슬람교를 받아들이지 않자 무함마드도 유대교를 배척하기 시작했다. 그간의 예루살렘을 향한 기도도 방향을 메카로 바꾸고 예배일도 금요일로 옮겼다.

     

     

    세 종교의 또 다른 차이는 사제의 유무다. 유대교와 이슬람교는 사제가 없다. 하느님과 평신도가 직접 소통하는 것이다. 유대교에 ‘랍비’가 있고 이슬람교에 ‘이맘’이 있으나 이들은 사제가 아니라 평신도이다. 유대교 랍비의 경우, 율법 공부를 많이 했기 때문에 예배의 모범을 보일 뿐이다. 유대교에서는 랍비 이외의 평신도들도 강론한다. 유대교를 본떠 만든 이슬람교 역시 사제가 없다. 이슬람교는 신과 인간 사이에 어떠한 중간 매체도 두지 않으며, 인간과 신의 직선적 관계를 중시한다. 이맘은 예배를 인도하는 사람인데 젊은이, 무식자, 걸인 등 누구나 될 수 있다. 이맘 지위를 취득하기 위해 특별 교육 과정이나 안수식 같은 의식을 거치치 않아도 된다. 무슬림은 모두 신 앞에 평등하다. 신 앞에 절대복종해야 하는 동등한 지위이다. 이처럼 이슬람은 절대적 평등주의를 내세운다.

     

    반면 가톨릭은 하느님과 평신도 사이에 신부, 곧 사제가 있다. 사제는 ‘신과 인간의 중개인’을 의미한다. 예수는 베드로에게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라”(마태복음 16:19)고 말했다. 베드로가 초대 교황으로 추앙받는 이유이다. 현재 가톨릭에서 고해성사를 통해 ‘죄사함’을 받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슬람의 이맘과 유대교의 랍비 - 이슬람교 예배를 인도하는 이맘(왼쪽)과 유대교 랍비(오른쪽)는 사제가 아니라 평신도다. /아프리카연합 평화유지군(AMISOM)·플리커
     

    유대교에 원래부터 사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모세의 형 아론에서 시작된 제사장 혈통이 있었는데 중간에 없어졌다. 서기 70년경 로마제국이 예루살렘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사두개파를 멸족시켜 사제직 혈통이 없어져 버렸다. 그 뒤 평신도들이 유대교를 지켜왔다.

     

    이후 종교개혁으로 로마가톨릭에서 개신교가 갈라져 나오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 루터가 주장한 ‘만인제사장설’은 누구나 하느님께 직접 예배하고 교통할 수 있다는 개신교 교리이다. 신약성서에서 사제는 예수 하나뿐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개신교는 성직자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개신교 교회들은 신학 교육을 받은 전문인이 설교를 해야 한다는 이유로 특별한 경우 이외에는 평신도들에게 설교를 허락하지 않는다.

     

     

    역사를 보면 정치건 사상이건 관용성을 보이며 서로를 포용하면 융성했고, 서로 반목하고 대립하면 어김없이 쇠퇴했다. 종교도 마찬가지였다. 역사에서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서로를 인정하고 평화롭게 살았던 시기는 융성의 시기였다. 이베리아반도의 코르도바와 톨레도는 세 종교가 공존했던 대표적 도시다. 지금도 톨레도에 가면 당시의 유대교 회당인 시너고그와 가톨릭 성당, 이슬람 모스크를 함께 볼 수 있다.

     

     

    절대적 진리를 강조하는 근본주의(교조주의)가 발흥하여 “나만 옳고 너희는 틀렸다”며 ‘개종 아니면 목숨’을 강요한 사회는 쇠퇴했다. 12세기 북부 아프리카에서 발흥해 이베리아반도를 침공한 이슬람 근본주의, 11~13세기 가톨릭 교황이 주도했던 십자군 전쟁이 그랬다.

    높은 산을 오르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다. 하느님께 가는 길도 이와 같지 않을까? 틀린 길이 아니라 서로 다른 길이다. 종교마다 올바르게 사는 길을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 이를 유대교에서는 ‘율법’, 기독교에서는 ‘복음’, 이슬람교에서는 ‘쿠란’, 불교에서는 ‘다르마’, 힌두교에서는 ‘요가’, 도교에서는 ‘도’라 부른다.

     

     

    서로 다름 이해하고 포용해야 평화

    프란치스코 교황은 무신론자인 한 언론인이 ‘신을 믿지 않거나 믿음을 추구하지 않는 사람들을 신이 용서할지’를 물었을 때, “신의 자비는 한계가 없으며 신앙이 없으면 양심에 따라 행동하면 된다”고 답했다. 교황조차 하느님의 자비는 무신론자에게도 베풀어진다고 답한 것이다. 하물며 하느님을 믿는 종교인들에게야 말해 무엇하랴. 이제 세 종교는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포용의 관용성을 보여야 한다. 서로 간의 반목과 대립을 끝내고 서로를 인정하고 평화를 모색해야 한다.

     

     

    십계명을 보여주는 모세 - 모세가 십계명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여주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 /위키피디아

     

     

    [같은 듯 다른 십계명]

    “우상숭배 말라” 조항 논란… 가톨릭은 십계명서 삭제, 개신교는 모세 원본 유지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십계명은 하나다. 모세 율법의 핵심이다. 그러나 유대교, 가톨릭, 개신교는 십계명이 약간씩 다르다. 특히 가톨릭과 개신교의 십계명이 다르다. 왜 그럴까? 1세기경 유대인 철학자 팔론이 정리한 모세 십계명에서 제2항은 ‘너는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든, 아래로 땅 위에 있는 것이든, 땅 아래로 물속에 있는 것이든 그 모습을 본뜬 어떤 신상도 만들어서는 안 된다. 너는 그것들에게 경배하거나, 그것들을 섬기지 못한다’였다.

     

     

    그런데 동방정교회와 로마가톨릭 사이에 우상숭배 논란이 일어 5세기에 성 어거스틴과 몇몇 가톨릭 교부들이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는 제2항을 아예 삭제했다. 이렇게 고치고 나니 10계명이 9계명으로 줄었다. 그러자 그들은 ‘이웃의 집을 탐내서는 안 된다. 네 이웃의 아내나 남종이나 여종이나 소나 나귀나 소유 중 아무것도 탐내서는 안 된다’는 제10항의 내용을 임의로 둘로 쪼개어 10계명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탄생한 게 가톨릭의 십계명이다. 반면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는 다시 원래의 모세 십계명으로 회귀했다. 그래서 지금도 가톨릭과 개신교의 십계명이 약간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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