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식사를 끝내고 2층 거실의 소파에 앉았다. 벽에 결려있는 사진을 본다. 히말라야를 상징하는 순백의 영봉(靈峯)이 아침 햇볕을 받아 장엄한 자태를 드러내보인다. 네팔에 한번 가보고 싶었으나 그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런데 박홍식 사진작가가 전시했던 작품을 보내준 것이다. 최근에는 100세를 헤아리는 나이탓일까, 여러 사람이 내기호에 맞는 선물들을 보내준다. 구름 사진과 책들 도자기들이다.
커피를 마시면서 과거에 느끼지못했던 생각을 더듬어 봤다. 한편생을 살아오는 동안 에 수많은 살마의 도움과 사랑을 받았다. 하루도 빼놓을 수 없는 음식도 그렇다. 어는 것 하나 내가 만든 것이 없다. 오늘마시는 이 커피도 에티오피아 농민들의 작품이다. 식당에 가서 원산지표시를 보면 베트남이나 노르웨이서 수입해 들여온 해산물이다. 우리 농산물도 수많은 사람의 정성과 사랑으로 내게 주어진 것이다. 내몸에 걸치고 있는 옷과 신발도 바다 건너 먼 외국에서 만들어 보내준 소재들이다.
내 신체에 어느 부분을 도와준 이들도 있다. 30여년 동안 내 머리를 다듬어준 이발사 아저씨는 먼저 세상을 떠났다. 마지막에 갔을 때 “며칠 후에 폐업하기로 했습니다. 더 도와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라면서 서운해 했다. 지난달까지 나는 치과 치료를 받았다. 잘 아는 제자 의사다. 그는 “조금 따끔 할테니까 참아 주세요.”라면서 돌보아 주었다. 지금까지도 그랬으나 앞으로는 더많은 의사나 간호사의 도움이 필요할 것이다.
내 학문의 지식의 배경에는 2000년에 걸친 선학(先學) 들이 있었고 직접 가르쳐준 스승들과 동학들이 있었다. 사랑을 나눈 제자들이 없었다면 현재의 내 삶은 유지될수 없었을 것이다. 내 인생 모두가 사랑으로 이루어진 존재다. 그 대신 나는 무엇을 했는가. 가르치는 일 한가지가 전부였다. 지난 99년을 이웃들의 도움과 사랑으로 살아왔는데 나는 한 가지 밖에 하지 못했다. 그 한 책임을 잘 감당했다고 해서 고마운 마음과 뜻을 전해온다. 얼마나 선하고 아름다운 세상인가? 다시 한번 옛날로 돌아갈수있다며 감사함으로 여러분을 섬기고 싶다. 많은 사람을 사랑해야겠다.
지금의 나이가되어 깨닫는 바가 있다. 내가 나를 위해서 한일은 아무것도 남기지 못했다. ‘공수래 공수거’라는 말 그대로이다. 하지만 더불어 산 것은 행복을 남겼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니까 이웃과 사회를 위해 베푼 사랑은 남아서 역사의 공간을 채워준다. 가장 소중한 것은 마음의 문을 열고 감사의 뜻을 나누며 사랑을 베푸는 일이다. 더 늦기전에 해야할 인생의 행복한 의무이다.
<김형석 교수님의 백세 일기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