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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줄투성이의 임진각 트루먼 동상스크랩된 좋은글들 2022. 7. 25. 09:15
정전(停戰)협정 체결 69주년을 앞둔 23일, 임진각의 해리 트루먼 전 미국 대통령 동상을 찾아간 기자는 난감했다. 임진각 주변 어느 곳에도 트루먼 동상 안내판이 없었다. 곳곳에 ‘임진각 평화누리 안내도’라는 대형 입간판이 있었지만, 거기엔 트루먼 동상뿐만 아니라 미국군 참전비 표시도 없었다.
10여 분간 여기저기를 헤매다가 간신히 트루먼 동상을 발견했다. 그 순간 실망감이 먼저 들었다. 올해 서거 50주년을 맞은 트루먼의 동상은 오래전부터 변색이 진행된 듯 흉한 모습이었다. 왼쪽 무릎 안쪽엔 10㎝가량 칠이 벗겨져 있는 것이 보였다. 두 손과 두 다리 사이엔 왕거미들이 집을 짓고 있었다. 허리, 다리도 거미줄투성이였다. 김일성의 6·25 남침(南侵)이 시작되자 즉각 참전을 결정한 공로로 1975년 우리나라에 세워진 유일한 미국 대통령 동상이라고는 믿기 어려웠다.
동상 뒤편의 미국군 참전 기념비도 상황이 비슷했다. 주변의 바닥에서는 잡초가 자라고 있었다. 곳곳에 이끼가 끼어서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조심해야만 했다. 벤치는 앉기 어려울 정도로 지저분했다. 최소한 수년 동안은 아무런 정비를 한 흔적이 없었다. 3만명이 넘는 미군 전사자와 참전 결정을 내린 트루먼이 한국에서는 잊힌 인물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듯했다. 임진각 평화누리 공원은 평화만 강조할 뿐, 그 평화를 만들기 위해서 희생한 미군 전사자들은 기억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았다. 강성학 고려대 명예교수는 최근 출간된 ‘해리 S. 트루먼-평범한 인간의 비범한 리더십’에서 한국의 이런 분위기를 지적했다. 강 교수는 6·25 참전을 결정한 트루먼이 “미국의 역대 대통령 중에서 한국인들의 운명에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친 인물”이라며 그를 대한민국의 대부(godfather)라고 불렀다. “한국인들에게는 거의 전적으로 잊히고 말았으며 학문적으로도 주요 관심의 대상조차 되지 못한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고 했다.
그의 분석은 역대 외교·안보 주요 책임자들의 평가와 맥을 같이한다. 6·25전쟁이 났을 때 공군참모총장이었던 김정렬 전 국무총리는 생전에 “미군의 참전은 사실상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우리가 당연시하는 미군 참전 결정이 당연한 게 아니었다는 것이다. 공로명 전 외무부 장관도 자서전에서 “6월 25일 밤 미국 지도부의 만장일치로 결정되어 신속한 파병이 이루어진 것을 나는 천우신조(天佑神助)라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미국의 도움으로 세계 10위권 국가로 도약한 한국에서는 6·25 때 미군의 활동이 잊히고 있지만, 미국은 다른 분위기다. 오는 27일 한국전쟁 참전 기념공원에서 6·25 전사자들의 이름이 새겨진 추모의 벽 제막식이 열린다. 워싱턴 DC의 명물이 된 베트남전 참전 기념비처럼 미군과 카투사(한국군 지원 부대) 전사자들의 이름이 새겨진 조형물이 들어서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 행사 참석을 통보한 직후에 코로나에 걸렸는데 음성 판정이 나오면 제막식에 참석해 연설할 예정이다.
1952년 트루먼을 만난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는 6·25전쟁 당시 미군 파병을 높이 평가하며 “서구 문명을 구했다”고 극찬했다. 처칠의 이 말이 과장일지는 모르나 트루먼의 결단이 대한민국을 구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 트루먼의 동상이 거미들의 놀이터가 되게 하고, 미군 참전비를 이끼 속에 방치하면서 한미 동맹의 발전을 바라는 것은 언어도단(言語道斷)이 아닌가 싶다.
7월 29일 제가 그곳을 찾았을때 의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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