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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계천 복원에 단초를 제공한 박경리 선생님 인터뷰기사
    서울하수도과학관 2022. 8. 30. 09:51

    청계천 복원은 우리가 20세기적인 물질 문명의 외투를 벗어던지고 생명의 21세기로 나아감을 보여줄수 있는 중대한 사건이 될 것이라고 역설해온 박경리 선생의 인터뷰 내용이 200211일 한겨레신문에 소개되어있어 이를 소개한다.

     

    기자: 선생께서는 그동안 생명과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해오셨습니다최근엔 미래 세대를 위해 청계천의 복원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하셨는데 이 문제에 주목하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박경리 : 청계천은 북악과 인왕남산에서 흘러온 물이 모여 서울의 한복판을 흐릅니다. 서울이 우리의 얼굴이라면 청계천은 중심인데 우리는 주변을 쓰레기통처럼 만들어 놓았습니다. 청계천 주변을 재건해야 한다는데 지역을 문화와 경제가 함께하는 서울의 상징 거리로 만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서울의 중심에는 문화라고 세울 만한 게 없습니다. 맑은 물과 나무가 있고 속에 물고기가 노는 청계천변에 공연장미술관전시장을 만들어 우리의 특색 는 문화를 보여주고유명 상품들을 취급하는 상점들도 들어서게 한다면 외국 사업가들이 와서 일도 보고 즐길 있을 것입니다.

    시멘트공간에 갇혀 있는 서울 시민들은 휴일마다 도시에서 뛰쳐나오지 않으면 실아갈 없을 지경입니다. 청계천이 복원된다면 서울시민들이 숨쉴 있는 휴식 공간이 하나 늘어나는 것이기도 하고요.

     

    기자: 프랑스 파리나 미국의 샌안토니오 같은 도시는 시 중심부를 흐르는 하천을 도시 미관의 상정으로 만들었는데 선생님께서 상상하는 복원된 청계천의 모습도그런 것입니까?

     

    박경리 :파리는 강주변을 아름답게 하는 것이 단순히 환경뿐만아니라 경제적 부가가치를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리가 청계천을 복원해 서울나아가 한국의 상정 거리로 만든다면 서울 그 자체가 하나의 미술품이고 상품이 있습니다. 청계천이 복원되면 남산과 북한산의 생태계가 이어지고 인시동과 그 주변궁궐터와 남산의 한옥마을이 서로 연결됩니다. 시민이고 언론이고 서울과 이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서울의 상징을 만들어내기 위한 청계천 복원 노력에 동참하면 좋겠습니다.

     

    기자: 20세기 후반 한국을 몰아친 개발주의의 상징인 청계천 고가도로와 복개한 시멘트덩이를 뜯어내고 이 거리를 자연 친화적인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게 한다면 우리 사회가 개발을 넘어 생명과 환경을 존중하는 사회로 나아간다는 상정적인 사건이 것 같은데요.

     

    박경리 : 청계천의 복원은 사람답게 사는 공간의 회복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그동안 인간은 개발이란 미명 아래 생태계를 교란시켜 왔으나 자연과 인간이 공존히는 친 생태계적 방향으로 선회하지 않으면 모두 공멸할 있습니다. 이제까지 우리는 인간만 능동적 존재고 다른 생명체는 피동적이라 여기고 자유니 평등이니 하는 혁명적 로건은 인간 내부에만 적용되는 것으로 봤습니다. 그러나 지구의 모든 생명은 본질적으로 능동적이고 평등한 것입니다. 인간이 자기중심으로 그 생명체 간의 평등을 깼기 때문에 오늘날 위기에 봉착한 것 일 뿐입니다.

     

    자본주의 물질문명의 폐해에 대한 지적은 여러 측면에서 제기되고 있지만 그를 대체할 새로운 비전이나 이상은 아직 뚜렷하게 나타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물질 문명의 가장 폐단은쾌락처럼 비본질적인 것을 위해 본질을 훼손하고 잠식한다는 점입니다. 자인가 노자인가가 여분이 많으면 망한다"고 말했습니다. 여분이 있으면 좋지요. 그러나 문제는없어도 되는 것을 만들기 위해 어야 되는 것을 없애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골프장이나 러브호텔등을  짓기 위해 생명 존속에 없어서는 안 될 나무를 베고 농토를 없애는 것 따위입니다. 이런 물질 문명이 계속되면 지구가 깨질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자본주의 유물론과 결별해야 합니다. 등 추상적 가치도 탄생성장소멸의 과정을 겪는다면 자본주의는 이제 쇠퇴기에 와 있습니다. 그러나 전 세계 위정지들에겐 눈곱만큼도 그런 생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아무런 철학적 바탕도 없는 물질주의의 졸병들로서 그 속에서 이득을 추구하는 것에만 급급할 뿐입니다. 자본주의를 자유와 연결시켜 말하지만 그 체제 속에서 인간들은 더 속박을 느낌니다. 사회 구조 자체가 모두를 경쟁체제로 내몰아 아무도 그 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기자: 그렇다면 선생님께선 생명 간의 평등을 추구하는 생태적 삶에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있다고 여기십니까?

     

    박경리 : 이미 유럽의 지도자들은21세기는 환경의 시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선 어느 정당도 정강에 환경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환경 문제에 관한 한 너무나 후진적입니다.20전 한 강연에서 물을 수입해 먹더라도 지하수를 건드려선 된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어떻습니까?모든 생명 활동의 원천인 물이 지하수까지 온통 오염된 상태입니다. 자연의 질서는 생명체에게 이자로 살아가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땅은 원금이고 그 땅에서 자라나는 곡물은 이자인 셈이지요. 그런데 지금은 원금까지 파먹고 있으니 미래 세대는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기자: 작가들 중 선생님처럼 환경과 생태문제에 관심을 가지신 분은 그리 흔치 않은 것 같습니다.

     

    박경리 : 작가로서 세계관우주관역사관을 갖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요. 그와 더불어 내 글 쓰는 태도와도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나는 글을 쓰다 막히면 밖에 나가서 일을 합니다. 물이 고이길 기다리는 것처럼. 그런데 밖에 나가보면 자연에는 돌 하나 풀 한포기생 아닌 것이 없어요. 어느 날 산에서 땅속에 묻힌 비닐을 파내고 있는데 갑자기 괴물이 튀어나왔어요. 너무 놀라 주저 앉았다가 정신을 차려 자세히 보니 어미 쥐 등에 제법 자란 새끼들이 조롱조롱 업혀 있는 것이었어요. 어미 쥐가 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니 새끼들을 들쳐 업고 도망갈 준비를 한 것이지요. 그게 어째서 사랑이고 지혜가 아닙니까? 쥐의 그런 모습은 오히려 인간보다 생명의 본질에 가까운 것이지요. 요즘 버리는 부모가 얼마나 많아요?

     

    기자: 한국이 환경 문제에 관해서 후진적이라고 하셨는데 과거 우리에게는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한 지향이 있지 않았습니까?

     

    박경리: 맞습니다. 한국에는 자연 친화적인 생태적 삶의 사상적 원류가 있었지요. 샤머니즘을 무속이라고만 아는데본질적으로 다신교인 샤머니즘에는 생명의 위대함생명의 능동성에 대한 경외감이 있습니다. 천년 이상 살아가는 나무의 능동성의 위대함을 인정하고, 그와 영적으로 교류하고자 하는 소망그리고 내세에도 그런 생명의 능동성이 존재하는가를 탐구하고자 하는 마음이런 것이 샤머니즘이지요. 오늘날 과학자가 생명 현상을 연구하는 것과 다를 없어 . 어릴 꽃을 꺾으면 어머니가 그것도 생명인데 목을 끊느?’고 했습니다. 고수레를 하거나 고사를 지내고 밖에 갈라 먹을 것을 내놓았던 우리의 풍습은 자연과 더불어 살고 있다는 인식리고 모든 살아 있는 것들과 교신할 수 있다는 믿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기자: 그렇다면 우리 선조들이 가졌던 환경 의식을 되찾아 그것을 확산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박경리:환경 문제가 목전의 생존을 위협하는 본질적 문제임을 자꾸자꾸 환기시켜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지식인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지식인들은 이런 문제를 쉽게 알려주는 대신 어렵게 만들어 대중들을 미로에서 헤매게 하고 있어요. 지식인들의 맹성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문명이라는 옷을 벗고 생명 존중의 삶을 되 찾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국토 관리자라는 인식을 갖고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을 국가의 원칙으로 삼아야 합니다.

     

    기자: 선생님께선 다음 세상에서는 건축가가 되고 싶다고 하셨는데왜 그런 꿈을 갖게 되셨나요건축가라면 청계천을 어떤 모습으로 복원하시겠습니까?

     

    박경리: 소설은 추상적인 반면 건축은 구체적인 성취감을 줄테니까요.  끊임없이 뭔가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데아마도 이는 그를 통해 살아 있음을나의 능동성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내가 건축가라면 청계천 양쪽에는 아주 한국적 개성이 있으면서 조화로2~3건물을 짓고천변에는 다양한 종류의 나무를 심어 을 일궈 수달너구리도 살수 있게 하겠습니다. 내가 슬프게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미에 대한 감각이 대단한 민족인데 그것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에요. 우리는 조선조말까지 생략의 미를 지켜내 왔어요. 여간한 인내와 절제가 없으면 생략의 미가 와요. 우리가 모르는 어떤 것이 있음을 암시하기 위해 여백을 남기는 것입니다. 종교관 내세관 없이는 되는 것이지요. 그런 우리의 미감을 드러낼 수 있도록 청계천을 복원한다면 그것은 월드컵이 올림픽 등보다 훨씬 장기적 측면에서 한국의 이미지를 세계에 각인시키는 일이 것입니다. 차기 서울시장이나 대통령이 이를 실현해낸다면 그는 우리 역사에 길이길이 남는 인물이 것입니다.

     

    - 2002.1. 1. 한겨레신문. 대담 : 권태선 민권사회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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