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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해 자체보다 대응 능력에 인명 좌우
    스크랩된 좋은글들 2022. 9. 7. 07:00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마산어시장 일대에 설치된 기립식 차수벽. 높이 2m로, 고정으로 서 있는 강화 유리벽까지 치면 1㎞ 길이다. 2018년 해일 피해를 막기 위해 완공됐다. /김동환 기자

    오래전, 1984년 9월 2일 일이다. 초년병 기자로 사건·사고 취재를 맡을 때다. 전날 1일 새벽 서울에 비가 양동이로 들이붓듯 했다. 밤늦게까지 비 피해를 취재하다가 강동구 성내동 강동경찰서(현 강동구청 2청사) 2층 기자실에서 잤다. 3일 아침 깨보니 경찰서가 섬이 돼 있었다. 허리 내지 가슴팍 정도까지 물이 올라와 있었다. 군인들이 젓는 고무보트를 타고 겨우 빠져 나왔던 기억이 있다.

    그날은 일요일이었는데 신문은 호외(號外)를 찍었다. 호외 1면은 ‘망원-풍납동 주민 16만 대피…118개 지역 침수’라는 제목이었다. ‘고립된 수중 도심’이란 항공 사진엔 풍납·성내동 아파트와 주택들이 점점이 물 위에 떠 있는 모습을 담았다. 유수지 배수펌프가 물에 잠겨 성내천 물이 역류한 탓이다. 안양천 배수 펌프도 터져 버렸다. 마포구 망원동 유수지 수문은 수압을 못 견뎌 무너졌다. 한강물 역류로 합정·성산·서교·동교동까지 물에 잠겼다. 그날 사망·실종자가 147명, 이재민은 20만명 이상 나왔다. 북한에서 수해 지원이라며 쌀과 시멘트를 보내왔을 정도다.

     

    1984년 재해연보를 찾아보니 당시 한강 본류 구간에 353㎜ 비가 내렸다. 이에 반해 지난달 8~9일 서울 기상청 관측소의 누적 강수량은 524㎜나 됐다. 기상 관측 115년 사이 최대 폭우였다. 그랬는데 인명 피해는 사망 13명, 실종 6명이었다. 이재민은 1492명 나왔다. 물론 맨홀 남매, 반지하 세 모녀 등 너무나 안타까운 죽음들이 있었다. 재산 손실도 적지 않았다. 다만 통계로 볼 때 1984년에 비해 훨씬 강력한 폭우였는데 피해 규모는 상대적으로 작았다.

    충주댐이 1985년 완공돼 남한강 홍수 유량을 통제할 수 있게 된 요인이 컸을 것이다. 4대강 사업 때는 강바닥을 준설해 통수량을 키웠다. 제방, 배수 설비도 보강했다. 우리가 독자적으로 띄운 천리안 기상위성도 활약 중이다. 1984년엔 일본 기상위성이 6시간마다 보내는 구름 전송 사진에 의존해야 했다. 이런 사정들이 모여 1984년과 2022년의 차이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번 힌남노 태풍도 기상청은 1959년 사라, 2003년 매미에 견줄 만한 괴물 태풍이라고 누차 경고했다. “여태껏 경험해 보지 못한 강도”라고 했다. 지나치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하지만 6일 오후까지 힌남노의 인명 피해는 12명으로 집계돼 있다. 그 한 명 한 명의 목숨은 귀중하다. 다만 사라 때는 849명, 매미 때는 131명 희생됐다.

     

    세계 통계를 봐도 세상은 점점 더 안전해지고 있다. ‘아워월드인데이터’가 192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100년간을 10년 단위씩 묶어 집계한 ‘세계 자연재해 사망자’ 숫자를 보면 1920년대 52만명에서 일직선 감소 경로를 밟아왔다. 2010년대 10년 동안엔 4만5000명이었다. 인구 변동을 감안한 ‘인구 10만명당 사망자’는 1920년대 27.77명에서 2010년대엔 0.64명까지 42분의 1로 줄었다.

     

    과학기술, 산업, 인프라, 제도, 시스템이 발전했기 때문일 것이다. 국가마다 속도는 달랐지만, 총체적으로는 경제가 부강해진 것이다. 경제력을 가진 나라와 빈곤 국가 사이 재난 대응의 극적 격차는 2010년 한 달 시차로 발생했던 아이티 지진과 칠레 지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지진 강도는 칠레(규모 8.8)가 아이티(7.0)보다 수백 배 강력했다. 사망자는 아이티 22만명, 칠레가 450명이었다. 지진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지진 대비 능력이 사람 목숨을 좌우했다.

     

    19년 전 매미 때 해일이 마산 앞바다를 덮친 후 바닷가 산책로에 높이 2m, 길이 1㎞ 기립식 차수벽을 설치한 것이 이번 태풍에서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언제 닥칠지 알 수 없는 미래 재해에 대비해 투자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뭣보다 투자의 효과를 납세자에게 납득시키기 어렵다. 예를 들어 1994년 가뭄과 4대강 사업 뒤인 2014·15년 가뭄은 둘 다 혹독했다. 농경지 피해 면적은 1994년이 2014·15년의 20배였다. 4대강 주변 농민들은 4대강 사업의 효과를 알 것이다. 대다수 국민은 그걸 느끼기 힘들다.

     

    신월동 대심도 빗물터널은 투자 효과를 실증적으로 입증한 사례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2011년 상습 침수 구역 7곳에 대심도 빗물터널을 만들겠다고 했는데, 후임 박원순 시장은 ‘과잉 토목공사’라며 신월동만 진행시켰다. 직경 10m, 길이 3.6㎞의 신월동 빗물터널 효과는 8월 폭우에서 증명됐다. 빗물터널처럼 대조군(對照群)이 존재해 투자 효과를 뚜렷하게 대비시킬 수 있는 경우는 아주 드물 것이다.

     

    기후가 연쇄 도미노 붕괴를 일으키는 상황까지 가면 기상 이변은 지금과 차원이 다를 수 있다. 재해 방비 투자에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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