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10월 26일은 안중근 의사가 이등박문을 처단한지 113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러나 1993년 8월 21일 서울 대교구장인 김수환 추기경이 안중근 추모미사를 집전하기 까지는 살인하지말라는 하나님의 계명을 어겼다는 이유로 종교적으로는 비난을 면할 수가 없었던 같았다.
그러나 그 미사는 한국 천주교회가 안중근을 공식적으로 추모하는 최초의 미사였다. 김 추기경은 이날 미사의 강론에서 일제 치하의 당시 한국 교회를 대표하던 어른들이 안중근 의사의 의거에 대해 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그릇된 판단을 내림으로써 여러 가지 과오를 범한 데 대해 저를 비롯한 우리 모두가 연대적인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라고 말하고 안중근의 행위는 ‘정당방위’이고 ‘국권회복을 위한 전쟁 수행으로서 타당하다고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전이야기 관련자료를 검색하여 일부 편집해 본다. 안중근이 1909년 10월 26일 9시 30분경 할빈역에서 이등박문을 처단한후 11월 3일 여순감옥소에 수감 된 이후 1910년 2월 14일 사형이 선고되었다. 사형 선고후 안중근의 사촌 안명근安明根이 사제관으로 찾아와 빌렘(한국명 홍석구)신부에게 안중근이 신부님을 만나고 싶다고 했다고 했다.
안중근이 빌렘(한국명 홍석구)신부를 만나고 싶다는 이야기를 듣고 뮈텔(한국명 민덕효)주교에게 그의 사형 집행일이 언제일지 알 수없으므로 저는 서둘러 여순에 다녀오겠다며 출장을 허락히여 달라고 편지를 썼다. 그러나 뮈텔은 편지를 받고 안중근은 제 발로 걸어서 교회 밖으로 나가서 죄악을 저지른 자이다. 나는 하느님을 대신해서 그의 죄를 사하여줄 수가 없다며 출장을 거부했다, 그럼에도 빌렘신부는 여순 으로 떠났다.
빌렘은 여순 감옥소에서 3월 8일부터 11일까지 4차례 안중근을 만났다. 그 자리에서 안중근은 신부님께 하나님께 감사한 일이 많다며 미리 준비한 메모내용을 보면서 말했다.
-저는 작년 10월 19일 연추의 포시예트항에서 기선을 타고 우라지로 갔습니다. 배가 떠나기 직전에 항구에 도착해서 겨우 배를 탔습니다. 그 배는 두 주일에 한 번씩 운항합니다. 그때 배를 놓쳤으면 저는 이번 일을 이루지 못했을 것입니다.
-저는 우라지에서 이석산을 협박해서 백 루블을 빼앗았습니다. 제가 총을 들이대자 이석산은 별 저항 없이 백 루블을 내주었습니다. 그 돈을 구하지 못했으면 저는 하얼빈으로 갈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우덕순을 데리고 채가구역에 가서 이토의 열차를 기다리다가 거기서 열차 통과 시간을 미리 알아서 하얼빈으로 갔습니다. 그때 시간을 알지 못했다면 저는 채가구에서 허탕을 쳤을것입니다.
-저는 10월 26일에 이토를 쏘았는데, 저의 처자식이 27일에 하얼빈에 도착했습니다. 저의 처자식이 미리 도착해서 저를 만났다면 저의 마음이 크게 흔들렸을 것입니다. 저는 이 히루 차이에 감사하고있습니다.
-저는 이토를 쏘아서 쓰러뜨린 후에 총알이 정확히 들어간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저것이 이토가 아닐 수도 있겠다 싶어서 그 옆에 있는 세 명을 쏘았습니다. 세 명 모두 총에 맞았으나 죽지는 않았습니다. 그후에 다들 회복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감사할 일입니다.
-이 모든 것이 저의 복입니라 생각하며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신부님.
빌렘은 한참 후에 말했다.
-너는 너의 범행을 하느님과 관련지어서 말하지 마라. 불경하다 도마야,하지만 나는 아직도 너를 도마라고 부른다.
안중근의사가 이등박문을 처단하자 그가 다니던 천주교에서는 반대의사를 분명이 했다.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실 때 제5계로 살인하지 말라고 석판에 손수 쓰셨다. 사람의 생명은 하느님의 것이므로 살인은 용서받을 수 없고 사하여질 수 없는 대죄이다. 그는 총기로 사람을 죽였으니 어찌 하느님께 용서를 구할 수 있겠는가. 그에게 애국을 하려면 선량한 신도가 되고 근면한 국민이 되라고 간곡히 타일렀으나, 그는 오히려 ‘국가 앞에서는 종교도 없다고 하면서 주교인 나의 가르침을 능멸하였기에 안중근의 거사 이후 팔십 년 동안 한국 천주교회는 공식적으로 안중근의 행위를 역사 속에서 정당화하지 않았고 교리상으로 용납하지 않았다.
다시말해 안중근은 1910년의 뮈텔 주교의 판단에 따라,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범한 ‘죄인’으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1993년 8월 21일 서울 대교구장인 김수환 추기경이 안중근 추모미사를 집전하면서 안중근행위는 ‘정당방위’이고 ‘국권회복을 위한 전쟁 수행으로서 타당하다고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2000년 12월 3일 한국 천주교회는 대희년을 맞아서 ‘쇄신과 화해’라는 제목의 문건을 발표하고 한국 교회가 ‘민족 독립에 앞장서는 신자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때로는 제재하기도 했음을 안타깝게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의 이름으로 발표된 이 문건은 한국 교회사에서 중대한 의미를 갖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