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해 자녀 둘 둔 47세 대한민국 공무원이 설령 빚이 좀 있다 해도 스스로 월북하겠나 외국에 함께 나가 골프까지 같이한 사람을 “모른다” 하는 게 과연 상식에 맞는 말인가 시민 법정에서 보면 진실의 풍경이 보인다
일하러 간 40대 가장이 바다 위에서 실종되었다. 북한군이 사살해 시신을 소각했다는 끔찍한 소식이 들려왔다. 더 기막힌 건 정부가 “자진 월북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발표한 것이다. 가족은 졸지에 남편과 아버지를 잃고, 월북자 가족으로 낙인찍혔다.
2년 전 공무원 이대준씨 서해 피살 사건은 정권이 바뀐 후 해경과 국방부가 월북 증거를 찾을 수 없다는 새로운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최근 관련 공직자들이 구속되면서 이제야 진실을 향해 힘겹게 제자리를 잡아가는 모양새다. 정치인들이 침을 튀기며 제 쪽 논리를 보강하는 온갖 궤변을 남발하는 사이, 가족들 심정은 갈가리 찢겨나갔을 것이다. 그 사이 검찰과 변호인을 비롯한 사법 시스템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진실의 수레바퀴를 돌렸고, 무엇보다 정권이 교체되었다. 한 사람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을 밝히기 위해 이렇게 역사와 정치와 사법 시스템이 총동원되었다.
그러나 만약 이 사건이 기원전 고대 서양의 시민 법정에 갔다면 아주 간단히 끝났을 것이다. 아고라에 모인 사람들이 “월북? 웃기지 마쇼” 하고 일축했을 테니까. 보통 사람의 상식에 호소하는 시민 법정에서는 대개 두 가지가 설득에 주효했는데, 그중 첫째는 ‘사실임 직함’쯤으로 번역되는 그리스어 ‘에이코스(eikos)’다. 로마시대 쿠인틸리아누스가 든 예를 보자면, 가령 ‘오늘 건강하게 살아있는 사람은 내일도 살아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식의 지극히 평범한 상식 세계를 뜻한다. 이대준씨는 결혼해서 자녀 둘을 둔 47세의 대한민국 공무원이다. 아이들 키우느라 바빠서 이혼도 못 한다는 40대다. 직업이 안정되고 거주가 분명하며 가정이 있는 사람은 대체로 월북 같은 일을 감행하지 않는다. 북한이 우리보다 잘사는 나라도 아니고, 매력적 도피처는 더더욱 아니다. 궁색한 당시 정부는 그가 도박으로 돈을 탕진했다는 이유를 찾아냈으나, 그게 사실이라도 월북하지는 않을 것 같다. 이대준씨 형은 “그러면 서민 50~60%는 모두 월북해야 하겠네요”라고 반박했다. 그게 상식이다.
그럼 정부는 왜 비상식적 내용을 발표했을까. 여기에 적용되는 둘째 설득 기제가 ‘윤리에 의한 설득’쯤으로 번역되는 ‘에토스(ethos)’다. 정부 발표가 신뢰, 존경, 전문성, 윤리 같은 덕목을 지녔느냐가 설득을 좌우한다는 뜻이다. 이 점에서 북한에 나라도 떼어줄 듯 수상한 행보를 보인 문재인 정부의 발표는 신뢰하기 어렵다. 북한에 관한 한, 문재인 정부 사람들은 믿을 수 없다. 김여정 부부장에게 ‘특등 머저리’ 소리를 들으면서도 북한과 대화하는 데 목매고, 국민적 합의도, 국제적 울림도 없는 종전 선언을 유엔 회의장에서 읽어 내린 사람들 아닌가. 탈북 어민들을 강제 북송했고, 육군사관학교 교과에서 ‘6·25전쟁사’를 뺐다. 요컨대, 그들은 목적을 위해서라면 무고한 시민을 ‘월북자’로 몰고도 남을 사람들이다. 사실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상식 세계에서 그렇다는 뜻이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의 진실은 정치적 이해가 엇갈린 정당 구조와 복잡한 사법 시스템이 가로막아 지연되었을 뿐, 시 민법정에서 바라본 진실의 풍경은 별로 복잡하지 않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둘러싼 갖가지 의혹도 마찬가지다. 지난 대선 기간 유난히 가슴을 울린 영상은 고인이 된 성남도시개발공사 김문기 전 처장이 가족에게 보낸 휴대폰 동영상이었다. 달뜬 얼굴로 “오늘 시장님하고 본부장하고 골프도 쳤다. 오늘 너무 재미있는 시간이었어”라고 한 그를 “모른다”고 부인한 이재명 대표의 말은 믿기 어렵다. 물론 너무 하찮은 인간이어서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고 강변할 수는 있다. 그러나 상식적이지 않다. 보통 사람이라면, 더욱이 정치인이라면, 외국에도 함께 가고 가깝게 어울린 사람은 기억하는 게 상식이다.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왼쪽 두 번째부터)과 노영민 전 대통령 비서실장, 박지원 전 국정원장이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및 흉악범죄자 추방 사건 관련 당사자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은 이재명 대표. /국회사진기자단
“불법 선거 자금이라면 사탕 하나도 받은 적이 없고, 1원의 사적 이익도 취하지 않았다”는 이 대표의 말도 너무 과장되어서 이상하다. 불법이지만 모르고 받은 사탕 하나쯤은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게 상식적이다. 그렇게 금전에 대해 결벽증이 있는 사람이라면 주식 투자는 근처도 가지 않을 것이다. 그런 그가 대선 패배 직후 방산주를 사들였다가 최근 문제가 되자 사과 한마디 없이 처분하지 않았던가. 또 그의 아내는 법인 카드를 사적으로 유용한 혐의를 인정해 스스로 사과까지 하지 않았던가. 그런 그가 1원도 본 적이 없다? 그런 청렴 이미지는 이재명 대표와 어울리지 않는다.
지난 대선 내내 뜨거웠던 대장동 개발 이슈도 마찬가지다. 인·허가가 관건인 사업에서 개인 사업자만 이득을 얻었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공적인 반대급부가 존재했다고 믿는 것이 상식적이다. 또한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듯이, 생겨난 돈도 그냥 증발하지 않는다. 허허벌판이던 땅이 금싸라기 땅으로 둔갑해 막대한 이윤을 만들어냈고, 그 돈은 기획자와 개발자를 포함한 주변 인물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나눠 썼거나 가져간 게 분명하다. 상식적으로, 그 많은 돈을 태워버리지는 않았을 테니까.
진실이란 늘 두렵고, 어렵고, 복잡하다. 그러나 상식의 맑은 눈으로 보면 의외로 간단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것 또한 진실이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도 말했듯 대중의 상식은 진실 그 자체보다 힘이 셀 때가 종종 있다. 과학 수사도 없던 시절, 오로지 대중의 건전한 상식에 기대 숱한 사건의 진실을 가려낸 기원전 시민 법정이 오늘날 법정의 배심원제로 이어져 정의 구현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2022년 10월 28일 조선일보
박성희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한국미래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