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 독재정치의 대결은 2022년의 10대 트렌드 중 이코노미스트가 첫손에 꼽은 것이었다. 물론 예로 든 것은 한국의 대선 아닌 미국과 중국의 대결이다. 집권당의 무덤이라는 중간선거를 앞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종신 집권을 코앞에 둔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을 놓고 보면, 그때만 해도 미국이 훨씬 불안했다.
‘서방이 쇠망(衰亡)한다’고 믿는 시진핑은 10월 당대회에서 “21세기 중엽까지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으로 만들겠다”며 사실상 미국을 꺾고 패권국가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6주도 안 돼 ‘제로 코로나’ 정책에 반대하는 백지 시위가 곳곳에서 벌어졌다. 반체제 운동으로 번질까 두려워진 중국은 마침내 ‘위드 코로나’로 돌아서고 말았다.
반면 11월 미 중간선거에선 민주당이 뜻밖에 선전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포퓰리즘과 ‘미친 팬덤’에 흔들리지 않음으로써 경제보다 민주주의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 거다. 이는 우리의 민주당에 주는 시사점이 작지 않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법적 문제도 한둘이 아닌 상태다. 이재명 말고는 대안이 없다고 믿는 개딸들과 일부 의원들이 제발 꿈에서 깨주기를 바라는 바다.
미 백악관이 ‘민주주의와 독재의 지구적 투쟁의 중심’이라고 규정한 우크라이나의 선전(善戰)도 민주주의에 희망을 준다. 한반도 반대편에 있는 우크라이나는 우리 대선에서도 이슈였다. 이재명은 TV토론회에서 “6개월 된 초보 정치인이 대통령이 돼 러시아를 자극하는 바람에 결국 충돌했다”고 주장해 외교적 물의를 빚기도 했다. 윤석열 후보가 “말로만 하는 종전선언은 평화를 보장하지 못한다”며 “한미동맹과 국제사회와의 협력이 절실하다”는 입장을 밝혔던 것도 기억에 생생하다.
유라시아대륙 서쪽 끝 크리미아반도는 한반도와 묘하게 닮았다. 170년 전 러시아는 크리미아 전쟁에서 패배하자 동방의 부동항을 겨냥해 한반도 진출을 노렸다. 영국은 러시아의 남하정책을 막기 위해 조선 개방을 추진했고 1885년엔 거문도를 불법 점령했는데도 조선은 점령당한 줄도 몰랐던 우물 안 개구리였다. 120년 전 일본은 ‘해가 지지 않는 제국’ 영국과 영일동맹을 맺었고, 영국의 지원을 받아 러일전쟁에서 승리해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어 버렸다.
윤 대통령은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할 만큼 국제무대 주역이 됐다. 문 정권은 위기 때 카리스마적 지도자인 양 선출돼 언론자유와 독립적 사법제도를 무너뜨렸고, 선거제도를 바꿔 20년 집권을 시도했다. 이코노미스트가 소개했던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 즉 독재로 가는 공식이다. 윤 대통령이 지금 무너진 자유민주주의를 바로잡는 길을 가고 있다고 믿고 싶다. 단, 그 일 또한 민주적으로 해야 한다. 그래야 아시아에서 유행하는 자본주의독재, 일당독재, 정실민주주의, 또는 검찰독재 소리를 듣지 않는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