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광화문의 한 서점에 들렀더니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한 발언을 묶은 책이 진열대의 잘 보이는 곳에 놓여 있었다. 한 장관이 했던 말을 손으로 필사해 볼 수 있도록 구성된 책도 나란히 팔리고 있다. 취임한 지 7개월 지난 현직 장관의 어록이 출판된 것은 전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다. 한 장관의 말이 그만큼 세간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한 장관은 전 정부에서 서울중앙지검 3차장,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을 지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 이후 한직을 전전했다. 그랬던 그가 올해 4월 일약 법무부 장관으로 지명되자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됐다. 초기에는 윤석열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라는 점에서 조명을 받았지만, 이후 한 장관이 더욱 주목받게 된 데에는 말의 힘이 컸다.
한 장관은 법적으로 복잡한 사안을 쉽고 선명하게 표현한다. 그는 취임사에서 “할 일을 제대로 하는 검찰을 두려워해야 할 것은 오직 범죄자뿐”이라고 말했다. ‘검수완박법’ 등을 통해 검찰의 권한이 축소되는 것에 대한 항변이다. 전 정부에서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을 없앤 것을 놓고는 “잠재적 범죄자들에게 범죄에 가담할 용기를 주는 것”이라고 했다. 배경 지식이 없는 사람의 귀에도 쏙 들어오기 때문에 호소력이 높다.
이런 언변에 공격성이 가미되면 파괴력이 배가된다. 한 장관은 상대의 발언이나 전력을 끌어와서 반격하는 화법을 종종 구사한다. 법무부 장관을 지낸 민주당 박범계 의원이 현 정부에서 검찰총장 임명 전 검찰 인사가 이뤄진 부분을 지적하자 “의원께서 장관으로 있을 때 검찰 인사를 (총장을) 완전히 패싱하시고”라고 맞받아치는 식이다. 듣는 이의 감정을 자극하는 방식이다.
본인을 대상으로 한 공격에는 대응 수위가 한층 높아진다. ‘청담동 술자리 의혹’을 제기한 김의겸 의원에 대해선 “매번 입만 열면 거짓말”이라고 했다. 한 장관이 마약 수사를 강조한 것이 결과적으로 이태원 참사의 한 원인이 됐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황운하 의원을 향해서는 “직업적인 음모론자”라고 쏘아붙였다. 두 의원을 옹호할 생각은 전혀 없다. 하지만 이런 거친 표현은 정치의 영역에서는 쓰일지언정 각료의 언어로서는 부적절하다.
각료는 정부의 부처를 대표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개인인 정치인과 다르다. 특히 ‘검찰 사무의 최고 감독자’인 법무부 장관의 언행은 신중을 요한다. 할 말을 하더라도 절제된 방식이어야 한다. 더욱이 한 장관은 시민들에게 현 내각의 핵심 인물로 여겨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한 장관의 말 한마디가 검찰과 법무부, 나아가 정부 전체에 대한 여론의 평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 한 장관이 최근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과 관련한 문재인 전 대통령 조사 가능성을 놓고 “헌법과 법률을 초월하는 의미의 통치 행위라는 것은 민주국가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한 것은 아슬아슬하다. 원론적 표현이라고 하기에는 말 속에 뼈가 담겨 있다. 수사상 필요에 따라 검찰이 결정하면 될 일인데, 한 장관이 언급함으로써 야당에 “사실상 수사 지휘”라는 비판의 빌미를 준 결과가 됐다.
고위 검사 출신의 한 중견 법조인은 “한 장관의 발언을 들으면 시원하지만 이제 톤을 조절할 때가 된 것 같다”고 평했다. 말에는 양면성이 있다. 가시 돋친 말은 상대를 다치게 하는 것을 넘어 자신에게 부메랑으로 되돌아오기 십상이다. ‘설시참신도(舌是斬身刀)’라는 중국 중세의 지략가 풍도(馮道)의 지적은 지금도 새겨들을 만하다. 혀는 자신의 몸을 베는 칼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