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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극복하고 글로벌 중추국가가 되려면스크랩된 좋은글들 2023. 6. 3. 05:45
고대에서 근세에 이르기까지 국력의 척도는 군사력과 경제력이었고, 다른 나라를 압도하는 국력을 가진 나라는 지역 전체를 호령하는 패권국으로 군림했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국가 주권이 국제법으로 보장되고 침략 전쟁이 불법화된 이후 패권국의 요건은 한층 까다로워졌다. 패권국이 되려는 나라는 단순히 다른 나라를 국력으로 압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동맹국과 우방국을 외세 침략으로부터 보호하고 경제 지원까지 제공함으로써 그들의 자발적 복속과 추종을 확보하는 것이 불가결한 요건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40년간 지속된 냉전 체제에서 미국과 소련은 공히 거대 동맹 집단을 유지하고 보호하기 위해 상당한 수준의 군사적, 경제적 희생을 감내해야 했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폐허가 된 서유럽과 동아시아에 방대한 경제 원조를 제공했고, 공산 침략을 맞은 한국과 베트남에 장기간 대규모 파병을 단행해 큰 희생을 치렀다. 소련 역시 무기, 석유, 식량 등 막대한 규모의 무상 원조를 냉전 시대 내내 진영 소속국들에 제공했다. 소련은 그 부담을 견디지 못해 결국 경제적 파탄과 체제 붕괴를 맞았고, 그로 인해 소련의 무상 원조에 의존하던 공산주의 진영은 하루아침에 무너져 뿔뿔이 흩어졌다.
냉전 체제 붕괴 후 30년 만에, 세계는 덩샤오핑의 도광양회(韜光養晦) 교시를 깨고 대미 패권 도전을 선언한 중국의 출현으로 진영 대결 체제의 부활을 맞고 있다. 미·중 패권 대결과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범세계적 진영 대결 체제를 형성해 가는 신냉전 체제의 주역들은 과거와 마찬가지다. 단지 소련의 위성국이던 동유럽 국가들이 지금은 NATO로 전향한 점만 다르다. 그러나 미국 타도를 외치며 전체주의 진영의 새로운 패권국 후보로 나선 중국의 대외적 행태는 냉전 시대의 소련과 비교할 때 차이점이 많다.
자본주의 타파를 통한 사회주의 세계 혁명 완수를 추구했던 소련과는 달리, 중국이 새로운 패권국 후보로서 표방하는 보편적 가치관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활’이라는 배타적 민족주의를 기치로 내걸어 주변국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을 뿐이다. 세계 도처에 수십 개 동맹국과 우방국을 거느리고 방대한 군사 지원을 제공하던 소련과 달리, 중국은 군사 동맹국이 북한 하나뿐이고 1950년 6·25전쟁 외에는 동맹국이나 우방국을 위해 피를 흘려본 일이 없다. 동맹국에 대해 출혈적 무상 경제 원조를 30년간 제공했던 소련과 달리, 가난한 개도국의 인프라 건설을 도와준다는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사업은 항만 등을 담보로 고금리 개발 자금을 빌려주는 고리대금업과 다를 바 없다.
이런 한계성을 감안할 때 중국이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대미 패권 대결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이나, 그 과정에서 중국과 미국 양측으로부터 줄 세우기 압력을 받는 나라들은 현 상황이 고달프다. 무슨 일이건 미국과 행동을 함께하기로 작심한 영국과 일본은 신경 쓸 일이 별로 없지만, 중국에 대한 경제적 미련이 남은 독일, 프랑스, 호주 등은 경제적 이익을 미끼로 회유와 압박을 강화하는 중국의 외교 공세에 마음이 불편하다. 한국에 대한 중국의 압박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청나라 시대의 속방 취급하듯 유난히 고압적이고 원색적인 간섭과 비난 일색이다. 아마도 지난 수년간 중국에 굴종하던 한국이 미국 편으로 전향한 데 대한 노여움 때문일 것이고, 또한 그간의 한국 길들이기 경험을 통해 외교적 위협과 경제적 이익에 유난히 취약한 한국 정부의 속성을 간파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이 이런 중국의 간섭과 위협을 극복하고 세계 10위권 경제국, 군사국의 위상을 지키기 위해선 유럽의 중견 국가들이 강대국 대결의 틈새에서 오랜 세월 터득한 생존의 지혜를 배울 필요가 있다. 첫째는 외세의 어떤 위협이나 압박 속에서도 국가의 기본적 가치관과 원칙을 절대 타협하지 않는 일관된 자세, 둘째는 눈앞의 이익보다 보편적 원칙을, 강대국 눈치 보기보다 국가적 소신을 우선시하는 선진 외교 행태의 정착, 셋째는 동일한 가치관을 공유하는 우방국들과의 견고한 연합체 구성과 외교적 집단 행동을 통한 대외 리스크의 최소화다. 유럽 선진국들의 이런 오랜 지혜는 한국이 경제와 과학기술뿐 아니라 국제 정치 무대에서도 선진화를 이루고 글로벌 중추 국가로 도약하기 위해 꼭 필요한 귀중한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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