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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체포 포기, 해산물 금식, 진짜인 줄 알았나”
    스크랩된 좋은글들 2023. 9. 21. 07:27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장기간 단식으로 건강이 악화하면서 18일 오전 서울 중랑구 녹색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뉴스1
     

    지난 6월 19일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국회 연설. 끝 무렵에 사전 원고에 없던 발언이 나왔다. “이재명 체포동의안으로 민주당의 갈등과 분열을 노리고 있다. 그 빌미마저 주지 않겠다. 저들의 시도를 용인하지 않겠다. 불체포 권리를 포기하겠다.”

    민주당 의석에서 차분한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섬세하게 사전 조율된 ‘결단의 순간’이었다. 해당 장면이 담긴 유튜브 영상에는 ‘헉, 불체포 권리 포기’ ‘멋지다, 이재명’ ‘진짜 눈물난다’ 같은 댓글이 달렸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소셜미디어에 “나는 말렸지만, 대표 의지가 워낙 강했다”고 썼다. 친야(親野) 매체는 “이재명 불체포 특권 포기 승부수. 리더십 위기 정면 돌파”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썼다.

     

    국민의힘 원내 대변인은 “진심인지, 쇼인지 지켜볼 것”이라고 논평했다. 이번에는 약속을 지킬지 의심스럽다는 취지였다. 이 대표는 불체포 특권 폐지 대선 공약을 한번 뒤집었던 전례가 있다. 국회 연설에서 두 번째 한 약속까지 또 뒤집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한편으로 이 대표가 정말 감옥에 갈 결심을 한 것인지도 궁금했다. 대선 낙선 직후 재·보선에 이어 당대표 선거에 출마하는 상식 밖의 선택을 한 것은 사법 처리를 어떻게든 피하겠다는 몸부림으로 비쳐졌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표의 단식과 입원을 지켜보며 그때 그 궁금증이 풀렸다. 18일 영장 청구, 19일 대통령 재가, 20일 본회의 보고, 21일 표결이라는 시간표는 오래전에 결정됐다고 한다. 이 시점을 놓치면 추석 장기 연휴을 맞으면서 본회의 일정이 10월 말까지 늦춰진다고 한다. 이 대표 측도 이 스케줄을 꿰뚫고 있었다. 지난 주말부터 구급차가 단식장에 드나들며 분위기를 조성하더니 18일 월요일 이른 아침 ‘강제 입원’ 절차를 진행했다. 그래서 미리 예정돼 있던 영장 청구를 ‘비정한 정권의 잔인한 처사’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재명의 ‘개딸’들이 체포동의안 부결을 압박하는 문자 폭탄을 돌리자, 친명(親明) 의원들은 충성을 다짐하는 답글로 화답했다. 사무총장은 “가결표 던지는 의원들을 끝까지 추적, 색출해서 정치적 생명을 끊을 것”이라고 협박했다. 침묵하던 이 대표도 마지막 순간 “검찰 독재를 국회 앞에 멈춰 세워 달라”며 부결을 호소했다. 이재명에겐 다 계획이 있었던 것이다.

     

    이재명 대표는 후쿠시마 오염 처리수 방류를 “태평양 전쟁”이라고 불렀다. 일본이 이번엔 총과 칼 대신 ‘바다 오염’으로 인류를 살육한다고 했다. 해산물을 먹으면 목숨이 위태롭다는 경고다. 민주당 의원들은 “세슘 우럭 너나 먹어” “차라리 X을 먹겠다”고 장단을 맞췄다. 800만 구독 먹방 유투버가 눈치 없이 킹크랩 먹는 동영상을 올렸다가 혼쭐이 났다. 친야(親野) 네티즌들로부터 “이 시국에 개념 없이 해산물?” “(국민의힘에 투표한) 2찍이냐” 같은 댓글 폭격을 받았다.

     

    이 대표와 민주당 사람들은 어느 시점에, 어떤 핑계를 대며 해산물을 먹게 될지 궁금했다. 적어도 당분간은 집에서 식구끼리 몰래 먹겠지, 사람들 보는 곳에서 외식은 피할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런데 오염수 방류가 시작된 지 일주일 되던 날 규탄 집회에 앞서 목포 횟집에서 단체 회식을 했다고 한다. 이 대표는 “참 맛있게 잘 먹었다”는 글과 함께 서명까지 해주고 나왔다. 킹크랩 먹방을 비난했던 사람들이 이번엔 “오염수 비판하는 것과 해산물 먹는 게 무슨 상관이냐”고 이 대표를 감쌌다. “금주 캠페인 하면서 술 마시는 게 무슨 문제냐”고 우겨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언행(言行)이 한 단어로 묶인 것은 말을 하면 행동이 그림자처럼 따라붙어야 한다는 전제 때문이다. 사람이 자기가 뱉어 놓은 말과 달리 행동하려면 구차한 합리화가 필요해진다. 이재명 대표는 다르다. 변명 한마디 내놓지 않고 당당하다. 왜 했던 말과 다르냐고 따지면 “그 말을 진담으로 받아 들였느냐”고 받아친다.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는 핀잔을 듣는 셈이다. “존경하는 박근혜 대통령”이라는 자신의 말이 논란을 빚자 “진짜 존경하는 줄 알더라”고 자기 말에 침을 뱉었다. 당에 ‘욕하는 플랫폼’을 만들겠다는 계획이 비판을 받았을 때는 “재미있자고 한 얘기 가지고 침소봉대한다”고 뒤집었다. 이 대표에게 “불체포 특권 포기한다는 국회 연설은 어떻게 되는 거냐” “바다가 방사능에 오염됐다더니 해산물 왜 먹었냐”고 묻고 싶다. 그랬다가 “진짜인 줄 알았냐”고 키득대는 조롱을 듣게 될까 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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