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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의 祖國' 대한민국이 위태롭다스크랩된 좋은글들 2017. 9. 1. 08:56
'촛불의 祖國' 대한민국이 위태롭다
우리에게 가장 끔찍한 악몽은 "핵전쟁보다 평화가 낫다"며 핵 가진 北과 평화협정 맺는 것
자유와 행복 보장되는 나라는 김정은 폭정하에선 불가능해. 강한 군사력으로 평화 지켜야
북한 도발 소식에 국내에선 더 이상 놀라지 않는다. 외국이 더 경악한다. 8월 29일 북한발(發)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이 홋카이도 상공을 통과하자 일본은 즉각 비상경계 태세에 들어갔다. 신칸센이 서고 사람들이 방공호로 대피했다. 8월 26일 북한이 단거리 미사일 세 발을 동해로 발사했을 때 청와대는 파장을 줄이는 데 더 신경 썼다. 유사시 단거리 미사일의 과녁이 한국일 수밖에 없는데도 "전략적 위협이 아니다"라고 했다. 시민들도 무덤덤하다. '설마 전쟁이 나겠느냐'는 반응이다. 방공 연습도 설렁설렁 하는 둥 마는 둥 한다.
한국 사회에서 전쟁 대비론은 냉소의 대상이다. 과거의 독재자들이 너무나 오랫동안 안보 위기를 악용해왔기 때문이다. 기득권 세력이 전쟁위기설을 주기적으로 퍼트려 기득권을 영속화하는 걸 체험한 시민들의 학습 효과다. 국내에서 무조건적 전쟁반대론과 평화운동이 양심과 애국심의 상징이 된 배경이다. 미국과 중국 같은 외세가 우리 운명을 좌우하는 데 대한 저항감도 크다. 하지만 한국인의 만성적 안보 불감증을 초래한 최대 요인은 열강의 세력 균형 위에 선 정전 체제의 존재다. 70년간 지속된 정전 체제의 장기 평화가 우리네 일상의 핵심이다. 관성화한 북한 도발 따위는 일상의 힘 앞에 무력하다. 일상에 잠긴 사람들은 전쟁을 자신과는 무관한 호들갑으로 여긴다. 먹고 마시며 땀 흘려 일하고 아이들 키우는 일상 앞에 전쟁은 먼 소문일 뿐이다.
그러나 위기는 소문이 아니라 명백한 사실이다. 전쟁 발발 위험이 아니라 정전 체제의 일대 개변(改變)이 위기를 예고한다. 우리네 일상의 토대가 송두리째 바뀔 것이기 때문이다. 상호확증파괴 능력을 지닌 핵무장 국가들의 전면전은 사실상 불가능하므로 미·북 전쟁은 호사가들의 시나리오에 불과하다. 김정은이 야심가일지언정 미국을 공격해 자신의 종말을 앞당길 만큼 바보는 아니다. 트럼프가 한국 체재 미국인 20만명을 사지(死地)로 내몰아 스스로의 정치 생명을 끊을 만큼 무모하지도 않다. 위기가 임계점을 넘길 때 미·북 대화는 불가피하다.
미·북 대화의 종착점은 평화협정이며 평화협정의 논리적 귀결은 주한 미군 철수일 것이다. 김정은 축출·북핵 폐기와 주한 미군 철수를 미·중 사이에 교환하자는 키신저의 제안은 공담(空談)만은 아니다. 하지만 동아시아와 한반도를 중화제국의 안방으로 여기는 중국에 미국의 지역적 영향력을 줄이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는 김정은은 쓸모가 많다. 북핵 동결에 이은 미·북 수교와 평화협정, 주한 미군 철수, 한반도에서의 패권국 중국 재등장이 숨 가쁘게 진행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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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은 국무위원회 위원장이 조선인민군 전략군의 중장거리 전략탄도미사일 발사훈련을 현지 지도했다고 노동신문이 30일자에 보도했다. /뉴시스
우리에겐 이것이 바로 진정한 위기다. 한반도에서 북한의 핵 독점이 인정되고 미국의 자리를 중국이 대체하면 우리가 북한과 중국을 상전으로 모시는 구도가 현실이 된다. 만약 미국이 한반도에서 완전히 물러나면 핵무장 한 김정은에게 한국은 손쉬운 먹잇감이다. 그때 한국에선 핵전쟁보다 평화가 낫다며 '우리 민족끼리'가 고창(高唱)될 것이다. 전쟁보다 '김정은 통치하의 통일 한반도'를 선호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물론 이것은 최악의 시나리오지만 최악에 대비하는 게 안보의 기본이다.
촛불 시민 혁명은 '나라다운 나라'를 외쳤다. 보통 사람이 국가의 주인임을 확인했다. 민주공화정의 시민이 누구에게도 무릎 꿇지 않는 자유인으로 사는 나라가 촛불의 조국이다. 김정은의 폭정 아래서는 애당초 불가능한 꿈이다. 조국(patria)은 우리가 태어난 곳이 아니다. 법과 힘에 의해 우리의 자유와 행복이 보장되는 나라만이 진정한 조국이다. 평화를 앞세워 이러한 나라의 본질을 경시하는 것은 몽매(蒙昧)한 이상주의다. 평화를 사랑했던 조선왕조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잇달아 불러들여 국망(國亡) 직전까지 갔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공허한 명분론이 야기한 국가적 재앙의 최대 피해자는 언제나 민중이었다.
'힘(kratos)과 도덕(ethos)을 통합해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것은 근본 중의 근본이다. 고대 아테네 민주정과 로마 공화정의 시민들은 자유와 번영이 시민군의 군사력 위에 터 잡고 있음을 처절하게 체험했다. 시민적 자유가 침략받는 극한 상황에서는 조국은 무력으로 수호되어야 한다. 이것은 전쟁찬양론과 전혀 관계없는 '국가의 영원한 진실'이다. 누란의 위기에도 평화만을 되뇌는 당위론은 국가의 진실 앞에 철저히 무력하다. 평화는 결코 평화만으론 지켜지지 않는다. 자유의 나라, 촛불의 조국인 대한민국이 위태롭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2017년 9월 1일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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