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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주연 산마루 교회 목사
    종교문화 2025. 1. 8. 09:00

    용서하고, 용서받고, 감사하며 종말의 마지막처럼 하루 마치세요

     
    산마루예수공동체 이주연 목사는 신도들과 강원도 평창군의 돌밭을 직접 개간하고 건물을 지어 영성과 노동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다. 이 목사는 "묵상을 통해 매일 용서하고 용서받고 감사하며 하루를 마무리하자"고 말했다. /조인원 기자
     

    ‘식사 시간은 침묵을 지킵니다.’ ‘80% 드시고 120% 감사합니다. 소식(小食)과 감사는 생명의 길입니다.’

    식당 벽에는 이런 ‘공동체 식사 예절’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식탁 좌석은 모두 ‘창문 뷰’. 식탁에 둘러앉거나 마주 보지 않고, 창밖에 펼쳐진 금당계곡을 보면서 ‘혼밥’한다. 불고기, 나물, 전, 김치와 떡국을 먹는 약 30분 동안 ‘형제’ 6명은 접시와 창밖만 응시한다. 묵상의 시간이다.

     

    이곳은 강원 평창 산마루예수공동체. 이주연(68) 목사가 2019년부터 해발 700미터 5만평 돌밭을 개간해 농사를 짓는 곳. 공동체에는 노숙 생활을 하던 이들도 있다. 이 목사는 1990년대부터 개신교계에 ‘영성’과 ‘묵상’을 알리는 한편 2006년부터는 서울역 노숙인들을 돕고 있다. 지금도 매일 20여 만 명에게 이메일로 ‘산마루 서신’을 보내고 본지에도 매월 에세이 ‘산모퉁이 돌고 나니’를 연재하며 묵상 중에 길어올린 영성을 전하고 있는 그를 지난주 만났다.

    -점심 식사 풍경이 이색적입니다. 왜 창밖을 보면서 침묵 식사를 하나요?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도 개인을 존중하기 위해서입니다. 수련의 한 방편입니다. 함께 생활하는 형제 중에는 각자 상처를 입은 분들이 있어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방어적인 마음, 비교하는 마음, 우월한 마음 등 복잡한 감정이 오갈 수 있어요. 식사 중에도 자신에게 몰입하면서 스스로를 정리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죠.”

    -’80%만 먹자’는 것은 이유가 있나요?

    “노숙하던 분들은 공동체에 오면 처음엔 밥을 탑처럼 쌓아요. 결핍 환상이죠. 적게 먹으라고 해도 그러지 못해요. 환상은 현실보다 강해요. 언제 다시 배불리 먹을지 모르니까요. 폭식 때문에 위가 상해도 한동안 계속됩니다. 물질과 권력과 섹스에 대해서도 결핍 환상에 빠지면 마찬가지입니다. 혼자 식사하며 묵상하는 시간을 갖다 보면 차츰 그 환상에서 해방됩니다.”

    산마루예수공동체에서 생활하는 구성원들이 창밖 풍경을 보며 점심 식사를 하고 있다. 이곳은 공동체생활에서 혼자만의 시간으로 침묵 식사 하는 규칙을 갖고 있다. /조인원 기자

    -목사님은 ‘영성’의 문제에 일찍 주목하셨지요. 계기가 있나요?

    “중학교 2학년 때 아버님이 갑자기 돌아가시고 형편이 어려워졌어요. ‘삶이라는 게 이렇게 무너지고 사라질 수도 있는 것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고 갑자기 세상이 낯설어졌습니다. 어머니도 고3 때 돌아가셨어요. ‘살고 죽는 일이 무엇이며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왜 살아야 하나’ 이런 문제가 갑자기 덮쳤어요. 영(靈)의 갈망이었죠. 지금 생각하면 제가 하나님을 찾아 떠나는 숨바꼭질이 시작된 셈이죠. 신학교에 가면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해서 신학교(감신대)에 진학했습니다.”

    -문제가 해결됐나요?

    “신학교에서는 지적(知的) 공부를 시키고 성서비평에 인문학적인 지식을 가르치는데 저로서는 절망적이어서 3개월 만에 그만두고 나왔어요. 그러나 세상은 더 갈 곳이 없었어요. 죽음과 허무뿐이었죠. 결국 다시 신학교로 돌아가 나의 질문에 답을 찾으려 했죠. 어느날 눈을 뜨게 해주신 분을 만났지요. 결국 영성의 길이 열린 것이죠.”

    -당시에는 개신교계에서 ‘영성(靈性)’ ‘묵상(默想)’은 낯선 단어 아니었나요?

    “초반에는 이단(異端)이란 소리도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영성 혹은 묵상은 교부(敎父)시대부터 이어져 온 전통입니다. 특히 종교개혁은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의 정신이기 때문에 성경 말씀을 묵상하는 것은 더욱 중요해졌지요. 다만 ‘렉시오 디비나(거룩한 독서)’처럼 라틴어 표현 때문에 국내 개신교인들이 ‘묵상=천주교’로 오해한 측면이 있습니다. 저는 독학하다시피 영성에 대해 공부했는데 나중에 보니 ‘렉시오 디비나’ 등 묵상의 전통과 하나였더군요.”

    -묵상, 명상은 어떻게 다른가요?

    “영어로 표현하면 똑같이 메디테이션(meditation)입니다. 여기서 혼란이 생겼습니다. 묵상은 기독교적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계속 읊조리는 것입니다. 왜 읊조릴까요. 보다 분명히 이해하고 체득하고 삶을 통찰하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고자 순종하기 위해서입니다. 묵상은 마지막에 통찰과 순명으로 가게 됩니다. 종국엔 하나님의 사랑과 일치를 이루게 되는 것이지요. 이에 반해 불교적·도교적 전통에서 온 명상은 비우는 것입니다. 비우고 비워서 마지막엔 텅 빈 충만과 평안을 찾는 것이지요.”

    -기도는 어떤가요? 한국 기독교는 ‘통성 기도’의 전통도 강하지요.

    “저는 ‘기도의 시대가 가고 명상의 시대가 왔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묵상이 말씀의 배를 타고 하나님께 이르는 것이라면, 기도는 발등 찍히고 엎어진 인간이 하나님을 찾는 행위입니다. 기도는 기본적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찾는 데 대한 응답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에게 하나님이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찾잖아요? 그때 ‘제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응답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그런데 집을 나간 자식이 아버지가 찾으면, 바로 돌아오나요? 망해야 비로소 아버지 생각이 나지요. 이때 응답합니다. 이렇게 죽을 지경이 되면 부르짖지요. 통성 기도가 그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종살이 할 때 죽임을 당하여 부르짖었죠. 그게 통성 기도의 원조입니다. 통성 기도, 부르짖는 기도는 집단적이고 공동체적입니다. 한국에 개신교가 막 들어왔을 때 일제 치하에서 나라를 빼앗겼으니 부르짖을 수밖에 없었지요. 나라와 민족을 위해 그리고 자신의 처지를 위해서 다함께 모여 부르짖었지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난을 당할 때 부르짖은 것과 마찬가지지요. 이렇게 집단적으로 기도할 때는 동료도 있고 목표도 있지요. 그게 나중엔 성도의 교제가 되고 서로 돕고 했던 힘이 산업화의 원동력이 된 것이지요. 이런 통성 기도는 천한 것, 미신으로만 취급해선 안 됩니다. 긍정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1980년대 후반부터는 영성에 관한 강의와 수련을 시작하셨지요?

    “그 무렵 우리 사회가 배고픔에서 벗어났어요. 민주화도 됐어요. 개인을 주장하게 됐고 경쟁에 대한 스트레스도 늘었습니다. 기도도 통성 기도에서 침묵 기도로 변하게 되지요. 저는 1991년 ‘기독교사상’ 편집을 맡게 되면서 영성 관련 특집을 기획하면서 영성과 묵상에 대해 알렸습니다. 1997년부터는 ‘영성 클래스’라는 성경 묵상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지식인들이 많은 관심을 가졌지요. 이 공부 모임이 모태가 돼 2001년 산마루교회를 설립하게 됐어요. 또 CBS 기독교방송에서 직원들을 대상으로 ‘영성 클래스’ 교육을 하다가 2005년부터 5년간 매일 ‘산마루 묵상’이란 제목으로 새벽 라디오 방송을 했어요. 그리고 역시 CBS에서 ‘영성의 삶’이란 50분짜리 강연 프로그램을 당초 스무 번 정도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인기가 많아서 100번 넘게 했습니다. 그 무렵이 우리 개신교계에서도 영성에 대한 관심이 생긴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영성 클래스에서는 3S를 강조하시지요?

    “멈춤(stop), 영적 감수성(spiritual sensibility) 그리고 침묵(silence)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경쟁으로 달려가던 발걸음도 멈추고 하나님만 바라보면 고통과 스트레스, 아픔과 슬픔, 죄책감이 떨어져 나가면서 영적 감수성이 살아납니다. 그리고 고요함에 이르게 되지요.”

    -2006년부터 노숙인 사역을 하고 계신데, 영성 수련과 잘 조화가 되나요?

    “노숙인 형제들이 교회 가득 주일 1부 예배를 드리면서 기존의 교인 중 일부는 교회를 떠나시기도 했어요. ‘영성 클래스’의 분위기와는 많이 달랐으니까요. 그렇지만 노숙인 사역 덕분에 새로 교회에 오시는 분들도 계세요. 노숙인 사역을 하면서 ‘서울역에 가서 도와주는 것으론 한계가 있다. 그들을 서울역에서 나오도록 하자’고 생각해 농사를 지으며 자활할 수 있도록 부암동과 경기 포천의 ‘사랑의 농장’을 거쳐 지금은 이곳 평창에서 함께 산을 개간하고 농사를 짓고 있지요. 노숙인들을 겪으며, 큰 배움을 얻어 영성에 대해서도 깊어지는 은혜를 입었죠. 하나님이 이끄시는 대로 살고 있어요.”

    -공동체에서도 ‘영성 일기’ 수련을 하고 계시죠?

    “아침 6시부터 1시간, 오후 8시부터 1시간 동안 묵상합니다. 특히 저녁 시간이 중요합니다. 아침엔 묵상할 성경 본문을 읽고 저녁에는 그날의 삶을 정리하며 감사를 고백합니다. 저희는 하루를 창조의 첫 아침처럼 맞이하고 하루를 끝낼 때에는 종말의 마지막처럼 맞이하라고 합니다. 어떻게 종말의 마지막처럼 하루를 끝낼 것인가. 핵심은 ‘용서하고, 용서받고, 감사하라’입니다. 1997년 처음 ‘영성 클래스’를 시작할 때부터 지켜온 원리입니다. 이것은 하루를 마칠 때도 그렇지만 인생을 마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루를 마지막 날처럼 살다 보면 ‘지금 여기’에 충만하게 살 수 있게 됩니다.”

    -명상에서는 호흡을 하며 숫자를 세는 수식관(數息觀) 등 호흡을 강조하지요. 개신교 묵상에서도 적용할 수 있나요?

    “물론입니다. 이미 ‘예수 기도’로 정형화 되어 있습니다. 호흡하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여’ ‘이 죄인의 죄를 용서하시옵소서’ ‘자비를 베푸소서’ 하며 호흡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특히 화가 치밀어 오를 때는 간단히 숨을 내뱉으며 ‘오, 주여’ 해보세요. 화가 잦아들 겁니다. 그렇게 숨을 쉬며 깊게 몰입하게 되면 예수님의 임재를 체험하게 됩니다. 금세 새벽이 되기도 하지요.”

    -일상생활에서는 어떻게 묵상하시나요?

    “루틴(routine)이 중요합니다. 잠에서 깨어난 ‘첫 말’을 예로 들어보지요. ‘주님, 오늘도 새날을 주셨군요. 감사합니다’라고 말해봅시다. 그러면 그 한마디로 그날의 방향이 딱 잡히는 거예요. 또 매일 ‘내가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는 활짝 웃어주겠다’ 마음먹고 실천해보세요. 상대 입장에서는 평생 잊지 못할 미소가 될 수도 있어요. 하루를 쭉 스캔해보다가 고마운 사람이 생각나면 이모티콘과 함께 ‘고마웠어’ 한마디만 보내보세요. 또 미안한 일이 있었는데 구체적으로 사과하기 뭐하다면 그냥 ‘미안했어’ 딱 한마디만 보내보세요. 나도 모르게 열린 행복의 문으로 길을 나설 것입니다.”

     

     

     

    ”저녁엔 하루 길 인생살이를 다 내려놓고 털어내고 가벼이 무(無)로 돌리십시오. 인생의 마지막 밤처럼 종말의 그날처럼 마감하고 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내일 염려는 주님께 맡기고, 이미 지나간 것은 미련 없이 버리고, 오늘 일은 오늘로 마무리합니다.“

     

    ”하루 여정에서 생겨난 상처를 씻고 갈등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십시오. 이해할 것은 이해하여 주고, 용서할 것은 용서하여 주라는 것입니다. 이해하고 용서하면 삶의 여정이 늘 가벼운 발걸음이 됩니다.“

    ”하루가 끝나도록 죄를 쌓아두지 말아야 합니다. 인간이 새로워지는 유일한 길은 회개하고 용서받는 것입니다.“

    ”삶은 ‘지금-여기’에 있으니, 지금-여기를 넓히고 충만하게 살아야 합니다. 지나간 과거의 죄와 상처를 씻고, 내일에 대한 불안과 근심과 걱정을 벗어버리고,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입니다.“

    ”받은 만큼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일한 만큼 대가가 올 것을 기대하고 최선을 다하십시오. 상급이 먼저 오는 법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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