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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당은 무엇이 찜찜했나
    스크랩된 좋은글들 2025. 2. 3. 04:59

    민주당, 계엄법 개정안 58건 발의  국회가 계엄 전권 갖겠다는 것  야당은 지금 너무 덤비고 있다  탄핵이 기각되면 의원도 책임을

     
     
     

    작년 12월 3일 이후 야당은 계엄법 개정안을 무려 58건이나 발의했다.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 등록된 것만 그렇다. 첫째 골자는 계엄을 대통령이 아니라 사실상 국회가 선포·해제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계엄 선포는 국회의 사전 동의를 거치도록 한다’ ‘국회 통고에 문제가 있으면 계엄을 무효로 한다’ ‘국회가 해제를 의결하면 국무회의 심의 없이 곧바로 이행한다’ 등이다. 계엄이 형식적으로는 대통령 권한이지만 실제로는 사전·사후 절차에 국회가 전권을 쥘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둘째 골자는 어떤 경우에도 국회의원은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하게 하자는 것이다. 몇몇 개정안을 보면 ‘계엄 때도 살인·폭행 등 현행범이 아닌 이상 국회의원을 체포할 수 없다’ ‘의원과 일반 국민의 국회 출입을 막을 수 없다’ ‘계엄 해제 논의가 있을 땐 체포·구금된 의원도 회의에 참석할 수 있다’ ‘대통령과 계엄사령관이 국회의 기능을 방해할 수 없도록 명시적으로 규정한다’ 등이다. 심하게 말해서 국회의원이 살인을 저질렀어도 계엄 해제 본회의에는 참석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이걸 보면서 궁금했다. 야권은 무엇이 찜찜했던 것일까. 대통령에 대한 법원의 내란죄 재판과 헌재 탄핵심판에서 사실상 검사 역할을 하는 야당이 봤을 때도 법 해석과 절차에 있어 뭔가 석연치 않았기 때문에 사후약방문처럼 무더기로 계엄법 개정안을 낸 것은 아닐까. 헌법 77조 3항과 계엄법 9조에 명시된 특별조치권은 그쪽 율사들이 봤을 때도 아차 싶었던 것일까.

     

    야당은 앞으로 이런 계엄이 다시는 없도록 하겠다는 입법 취지를 담았다고 하겠지만, 뒤집어 보면 현행 헌법·계엄법·형법으로 대통령을 단죄하기엔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것을 자복하는 반증이 아닐까. 이럴 바엔 차라리 대통령의 계엄권을 규정한 헌법 77조를 삭제하고 계엄법 전부를 폐지하자는 ‘여론몰이’를 하면 될 것을 뭐 하러 구질구질하게 개정안을 58건씩이나....

    야당 쪽엔 이런 제안을 하고 싶다. 조기 대선이 있을지 없을지, 있다면 언제쯤일지 알 수 없지만, 그때 야당 후보가 사전 투표 폐지, 100% 손 개표, 아날로그 방식 표 집계 등을 공약으로 내걸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야당 쪽 누군가가 ‘여론조사를 조작한 주범은 감형·가석방·사면 없는 무기징역에 처한다’는 형법 개정안을 내면 어떻게 될까. 야당 대표가 “여론 조작은 지하철 열차에 독가스를 살포하는 것보다, 아니 내란죄보다 중형으로 다스려야 할 중범죄”라고 선언할 수는 없을까.

     

    소장파 대권 잠룡들이 “공직자에 대한 탄핵소추가 헌재에서 기각될 경우 발의 의원의 세비와 소속 정당에 대한 국고 보조금을 6개월간 몰수한다”는 공약을 내걸면 국민이 어떻게 반응할까? 공직선거법 재판에서 신속한 판결을 위한 소위 ‘6·3·3 원칙’을 안 지킨 판사에게 그에 해당하는 12개월(6+3+3) 동안 전액 감봉 처분을 하는 법 개정안을 내놓으면 여론이 어떻게 움직일까.

     

    국민이 듣고 싶은 목소리는 복잡한 게 아니다. 절박하지만 간결하다. 의원이든 검사든 판사든 재판관이든 법과 원칙과 절차를 지키라는 것이다. ‘탄핵이 기각되면 의원도 책임지라’는 것이다.

     

    감방은 묘하다. 감방에 갇힌 사람이 발 뻗고 자고 밖에 있는 사람이 초조해진다. 그게 ‘감방의 역설’이다. 때론 대통령이 자유로워지고 야당 대표가 답답해 한다. 한때 야당의 대권 주자는 ‘고지의 9부 능선’에 왔다고 느꼈을지 모르나 지지율은 30%대에 묶여 꼼짝 안 한다.

     

    벗어나는 방법이 없지 않으나 선택이 쉽지 않다. 프로 바둑기사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교훈은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덤비면 진다. 그 순간 모든 게 덫이 된다. 모래 수렁처럼 자력으로 빠져나올 수 없다. 초조한 것은 이해하겠는데, 야당은 지금 너무 덤비고 있다.

     

    2025년 2월 3일 조선일보 김광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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