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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헌법재판소가 법치를 실현해야 할 때스크랩된 좋은글들 2025. 2. 3. 05:05
소셜미디어에선 정치 편향, 내부 정보 의혹 거액 주식 투자 디킨스 소설 술 취한 판사처럼 지금 헌재는 위험하지 않은가 좌우 국민 모두 눈 부릅뜬 지금 미리 답 정해 놓을 생각 말고 법학도의 초심으로 돌아가 헌법재판소는 법치를 구현하라
여섯 시간 깜짝 계엄이 환(幻)처럼 왔다 간 후 대한민국엔 기상천외의 정국이 펼쳐졌다. 대통령이 “패악질을 일삼은 반국가 세력 척결”을 외치며 국회에 계엄군을 진입시킬 땐 왕당파와 의회파가 충돌하던 1640년대 잉글랜드 내전이 연상되었다. 공수처가 경찰 수천 명을 동원해 대통령 관저의 담을 넘는 장면은 1792년 8월 10일 튀일리궁으로 쳐들어간 혁명군이 루이 16세를 체포하던 순간의 데자뷔였다. 놀랍게도 그후 탄핵·소추당해 구속·기소된 대통령이 지지층을 결집하여 정권 연장과 정권 교체 여론이 팽팽하게 맞서는 형국이다.
왼쪽 국민은 무능하고 성마르고 술버릇 고약한 옹고집 대통령이 시대착오적 비상 계엄령을 발포하여 국정을 망치고 국격을 실추시켰다며 당장 내란 우두머리로 잡아 극형에 처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오른편 국민은 북·중·러를 끼고 도는 낡고 썩은 거야가 중범죄 혐의를 받는 당대표를 지키려 관료 탄핵을 남발하고 망국적 예산 폭거를 자행하여 국기를 흔들었다며 분노한다. 중도층도 갈라져서 좌나 우로 빨려든 상황이다. 정치적 양극화는 성난 군중을 광장으로 불러내고 감정적으로 격동시켜 패싸움을 연출하기 일보 직전이다.
과연 어느 쪽이 옳은지, 훗날 역사의 평가가 어떠할지 현재로선 예단하기 어렵다. 다만 작금의 혼란상을 차갑게 직시하고 복잡한 난맥상을 엄하게 숙정한다면 이 모든 사태를 ‘숨겨진 축복’이라 부를 날이 올 수도 있다. 역사를 돌아보면 나라가 무너질 듯한 대혼란이 벌어지고 난 후에야 켜켜이 쌓인 부패 세력과 회충처럼 스며든 기생 집단을 죄다 드러내어 일소하는 대개혁이 이뤄진 선례가 적잖다.
영어 속담대로 캔 뚜껑이 열린 다음에야 꿈틀대는 지렁이가 기어 나오는 법. 좌우로 나뉜 국민 어느 쪽도 순탄하게 잘나가던 나라가 돌연 평지풍파를 만났다고 생각하진 않을 듯하다. 이미 오래전부터 입법·행정·사법부의 각계각층에 들어앉아 헌법을 유린하고, 법률을 악용하고, 직권을 남용하고, 국민을 배신하고, 국가를 저버리며 진영에 충성하는 모리배와 간신배, 정상배와 소인배가 암약해 온 정황이 뻔히 읽힌다. 계엄의 충격으로 국가라는 큰 캔의 뚜껑이 열리기 무섭게 정부 3권 모든 기관에 은닉하던 ‘지렁이’ 떼가 일제히 기어 나와 꿈틀대고 있다. 국익 우선의 의무를 저버리고 정략에만 빠진 국회의원, 불법으로 내란죄를 수사하고 공문서까지 위조한 공수처, 대면 수사도 없이 기소권을 행사하는 검찰, 편을 짜서 특정 법원을 점령한 판사들···.
법치의 최후 보루인 헌법재판소는 어떠한가? 에스엔에스(SNS)에 정치 편향의 잡글을 올리거나 내부 정보를 이용해 거액을 주식 투자한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인물들이 헌재를 점령한 현실은 디킨스 소설에나 등장하는 취한 판사의 재판정보다 더 위험해 보인다. 알량한 편견에 휩싸여 자기 부족에 충성하는 자들은 헌법을 수호할 자격이 없음에도 헌재의 결정을 뒤집을 방도는 없다. 오직 국민적 감시와 비판만이 허술하게 살아온 편향된 헌법재판관들에게 법복 입은 판사의 책무를 일깨울 수 있을 뿐.
지금껏 헌법재판소는 때론 졸속하게, 때론 질질 끌며 여론 추이만 살피다 슬그머니 입을 맞춰 얼렁뚱땅 넘어가는 기회주의적 행태를 일삼아 왔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정치권 눈치만 보다 다수 국민을 내세워 미리 정한 결론으로 법리를 꿰맞춘다면 헌재가 헌법을 유린하는 격이다. 광장 여론에 압도된 8년 전 헌재의 탄핵 심판 결정이 과연 제대로 된 법치주의의 발로였을까? 그 점에서 오히려 양분된 여론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현상황이야말로 헌재의 재판관들이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양심에 따라 독립적으로 심판”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 수 있다.
재판관의 인터넷 잡문이나 주식 투자 성향만 봐도 그가 내릴 결정을 내다볼 수 있다면 헌법재판소의 존립 가치는 대체 무엇인가? 좌우 국민 모두가 두 눈 부릅뜨고 노려보고 있는 지금, 헌재의 재판관들은 옷깃을 여미어야 한다. 미리 답을 정해놓고 딴전 피울 생각 말고 법학도의 초심으로 돌아가 냉철한 이성으로 법치를 구현하라. 헌재의 결정문이라면 교과서에 실려 널리 읽힐 만큼 치밀하고 정의롭고 감동적이어야 한다. 과거 인터넷에 무슨 잡글을 써서 올렸든, 어떤 방법으로 얼마의 차액을 실현했든, 그대들의 결정문이 진정 헌법 정신과 국민 상식에 부합한다면, 적어도 그 문장만큼은 청사에 길이 남아 법치의 전범으로 인용되리니.
2025년 2월 3일 조선일보 송재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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