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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술실의 칼, 골목길의 칼
    스크랩된 좋은글들 2025. 2. 7. 07:46
     

    칼 든 사람, 수술실선 의사·골목길선 강도  중요한 건 맥락… 시대적 변화 읽어야 할 때  역사를 잊는 국민에겐 미래가 없다고?  그런데 왜 중국 말고 일제만 이야기하나  강대국 된 중국, 지금 곳곳서 '친중 공작'  좁게 보면 부자 對 빈자가 정치현안 같지만  지금 우리에겐 '지정학적 변화' 더 중요해

     

     
    일러스트=이철원
     

    그림은 배경이 중요하다. 칼을 든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 사람의 배경이 어두운 골목이면 목숨을 위협하는 강도이고, 배경이 수술실이면 목숨을 살리는 의사가 된다. 사건 하나가 배경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배경은 공간이다. 건축에서 배경은 크기와 범위가 중요하다. 작은 건물을 지을 때는 거리 배경을 살펴본다. 건축에서는 그것을 어려운 말로 ‘컨텍스트’를 고려한다고 말한다. 컨텍스트를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서 이 건물은 여기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아파트 단지가 만들어질 때는 도시 스케일의 배경을 고려해서 보아야 한다. 신도시를 만들 때는 국토 개발 규모의 배경을 보아야 한다. 이렇듯 배경은 스케일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을사년 들어 각종 분야가 격동하고 있다. 이는 배경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배경의 변화는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다. 오래전부터 천천히 진행되어 왔지만, 이제야 우리가 깨닫고 있는 것이다. 우선 자연환경이 만드는 배경이 바뀌었다. 지구온난화다. 이제는 이상 기후라 부른다.

     

    경제적 배경도 바뀌고 있다. 달러패권이 저무는 것이다. 1970년대 달러가 페트로달러로 기축통화가 된 후 미국은 돈을 찍어내면 무슨 물건이든 살 수 있게 되었다. 그 돈을 번 국가는 서독과 일본이다. 둘 다 2차 세계대전 미국에 패전한 나라여서 미국이 안심하고 밀어줘서 선진국이 된 나라다. 1990년대 들어 국가부채가 커진 미국은 달러채권을 사줄 더 큰 국가가 필요했고, 중국이 선택됐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오판이었지만 빌 클린턴은 중국을 WTO(세계무역기구)에 최혜국 대우로 넣어주었다. 덕분에 세계의 공장이 된 중국은 소련패망 이후 30년 만에 G1 미국에 대항하는 국가로 부상했다. 중국은 독일, 일본과 달리 미국의 통제를 거부한다. 중국은 안보상 미군의 보호가 필요한 국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배경의 변화는 국내 사건의 의미를 변화시킨다.

     

    우리는 ‘주 52시간 근무’를 하고 있다. 노동자 인권의 의미에서 좋은 시도다. 하지만 우리는 경쟁해서 살아남아야 하는 국가다. 실리콘밸리의 기업들과 산업 스파이까지 사용하는 중국의 기업들은 잠을 안 자고 일하는데 삼성전자는 52시간에 묶여 있다. 그러다 보니 삼성전자 주요 연구 시설은 캘리포니아에 있다. 일자리는 해외로 빠져나가고 국내 기술력은 중국 기업에 추월당했다. 주 52시간제와 워라밸 흐름은 우리를 추격하는 중국 공산당이 가장 좋아할 일이다. 일반 분야에서 노동시간은 지켜져야 한다. 하지만 창의적 기술 분야에서는 없어져야 할 법이다.

     

    우리나라는 2005년부터 외국인이 영주권을 얻은 뒤 3년이 지나면 지방선거에서 투표할 수 있도록 바꿨다. 인권 측면에서 좋은 일이다. 그런데 국내 외국인의 80%가 중국인이다. 이 역시 중국 공산당이 제일 좋아할 법안이다. 우리는 역사를 잊는 나라는 미래가 없다고 하면서 항상 일제강점기 이야기만 한다. 그러면서 반일 감정을 자극하는 드라마나 영화를 주로 만든다.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블록에 남아 있으려면 극동아시아에서 일본과의 협력이 중요하다. 둘을 갈라지게 하는 것 역시 중국 공산당과 북한이 좋아하는 일이다. 중국 자본은 반일 드라마와 영화 제작에 기쁜 마음으로 돈을 투자할 것이다. 우리가 지난 수십 년간 민주주의, 인권, 정치적 올바름, 올바른 역사 의식이라고 믿고 행한 일들은 결국 후발 주자인 중국 공산당에 우리 후손의 일자리와 먹거리를 넘겨주고, 대한민국을 친중 세력으로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가까이 위치한 남미 국가들이 공산주의로 넘어가지 않게 하려고 CIA(중앙정보국)를 동원해 친미 정권을 수립하려 노력했다. 1990년대 이후 세계의 공장으로 부자가 된 중국 공산당이 넘치는 돈과 많은 인구를 이용해 가장 가까운 나라 대한민국에 그런 일을 안 할까?

     

    이런 행동은 타국의 주권에 영향을 끼치는 나쁜 행동이라고 도덕적 정죄와 비난만 해서는 안 된다. 모든 국가는 자국 이익에 따라 움직인다. 우리는 타국의 이기적 결정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결정을 하면 된다. 국내에는 그런 중국과 북한의 지원을 받아서 정책을 만들고 사회운동을 하는 세력이 있다. 이들의 목표는 대한민국의 경쟁력을 좀먹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간첩 행위라고 부른다. 물론 겉으로는 민주, 인권, 약자 보호, 워라밸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을 것이다. 이들은 이 가면으로 선량하고 순수한 마음을 가진 사람을 자기편으로 흡수하고 이용해 왔다. 좋은 뜻의 일이 다 나쁜 의도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일부 순수하지 않은 의도로 거짓 대의명분을 걸고 나쁜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순진한 행동은 자칫 반국가적 멍청한 행동이 될 수 있다.

    안타까운 것은 선량한 사람이 그렇게 이용당할 수 있다는 점이다. 중국이 자유무역을 하기에 우리와 같은 자유민주주의 시스템이라고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중국은 항상 공산당 전체주의 국가였다. 이제 돈과 인구, 인공지능(AI)을 이용한 통제 기술까지 가진 중국은 더 무서운 전체 국가가 되었다. 이것은 ‘혐중’이 아니다. ‘현실 직시’일 뿐이다.

     

    정치는 적을 만들어야 시작된다. 건국 초기 우리나라 정치 지형에서 적은 북한이었다. 수십 년 지나자 전라도와 경상도로 나뉘어서 싸웠다. 정치가들은 그것으로 먹고살았다. 1990년대 들어서는 부자와 가난한 자로 나뉘어 싸우는 구도로 바뀌었다. 아직도 우리의 정치 구도를 강자와 약자의 대결로 보는 사람이 많다. 많은 지식인과 언론이 그렇다. 배경을 좁게 보고 있어서 현상을 오판하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가 겪는 사건은 정치가들의 권력 다툼이나 빈부 대결보다 더 큰 지정학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소련이 패망했기에 우리는 지난 30년간 외부의 적이 없다고 생각해 왔다. 잘못된 생각이다. 배경이 수술실에서 어두운 골목길로 바뀌었는데, 아직도 자기가 수술 메스를 든 의사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많다. 이미 강도가 된 줄 모르는 사람이 많다. 

     

    2025년 2월 7일 조선일보   홍익대 건축가  유현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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