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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주인공은 나… 말 못 하고 쫓기는 짐승은 되지 말자"스크랩된 좋은글들 2025. 2. 8. 09:55
이 남자는 반세기를 달려왔다. 별명은 ‘울트라 러너’. 박복진(74) 오마이슈 대표는 100㎞ 이상 달리는 울트라 마라톤을 100번쯤 완주했다. 신발과의 인연은 1976년 무역회사에 입사해 신발 해외 세일즈를 담당하면서 시작됐다. 1988년 독립해 창업. 박 대표는 초장거리 러너들 사이에서 ‘파브(faab)’로 유명하다. 그가 만들어 판매해 온 초장거리 마라톤화의 이름이다.
그 신발을 신고 2000년부터 직접 마라톤을 뛰기 시작했다. 42.195㎞로는 성에 차질 않았는지 2004년 울트라 마라톤으로 건너갔다. 2014년엔 ‘마라톤 수필’까지 써 등단. 요즘은 수채화 그리기에 빠져 있다는 박 대표를 지난 3일 입춘에 서울 광화문에서 만났다. ‘파브’의 뜻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free as a bird의 영문 이니셜인데 외국인들은 이구동성 잘 지었다고 해요. 신고 달리면 새처럼 가볍게 훨훨, 한마디로 자유죠 자유.” 새의 자유를 동경하며 뜀꾼으로 살아온 이 남자의 이야기를 들었다.
“궁핍은 내 에너지”
전북 익산에서 빈농의 자식으로 태어났다. “만경평야에서 자랐는데 가난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그는 말했다. “너무 없으니까 아끼는 수밖에 없잖아요. 검은 운동화를 하나 샀는데 비 오면 품고 맨발로 등교할 정도였지요.”
-기억에 남은 일이라면.
“그 운동화가 다 떨어져 창피하니까 못 신잖아요. 어머니가 질긴 비료 포대의 실로 꿰매주셨어요. 하얗게 꿰맨 실 자국이 보기 싫다고 하니까 먹물을 묻혀주셨죠(웃음).”
-그때 한이 맺혀 신발업에 50년 종사한 겁니까.
“그렇진 않고요. 고교 졸업하고 취직한 회사에 우연히 신발 품목이 있었고 제가 영어를 잘해 해외 판매를 맡았습니다. 가진 건 없는데 지구력이 있어요. 전주고 1학년 때 미국 여고생과 펜팔을 시작했는데 지금도 그녀와 편지를 주고받습니다.”
-놀라운 일이네요.
“저는 끈질겨요. 포기하지 않는 성격이에요. 울트라 마라톤도 뛰다가 두 번 포기한 적이 있지만 다시 도전해 완주했습니다. 한번은 부산 태종대부터 파주 임진각까지 달리다 경북 김천에서 중단했는데 나중에 포기한 그 시각 그 자리로 돌아가 임진각까지 완주했어요.”
-또 하나의 포기도 궁금합니다.
“대만 울트라 마라톤 대회에 참가했는데, 낙석 구간에서 날이 어두워졌고 시간 안에 완주 못 한다며 길을 막는 겁니다. 계속 뛰겠다고 싸우다가 제가 뾰족한 자갈로 그 아스팔트에 금을 그었어요. 2년 뒤 그곳으로 돌아가 또 끝까지 완주했지요.”
-실례지만 결혼도 그런 식으로 했습니까.
“아, 그건 좀 달라요. 제가 하도 가난해서 누굴 데려다 먹여 살릴 자신이 없었습니다. ‘결혼하자’ 소리가 안 나왔어요. 그랬더니 집사람이 먼저 청혼해서, 하하. 궁핍이 제 에너지예요.”
-궁핍이 에너지라고요?
“모자람을 땔감으로 바꿀 수 있다는 뜻입니다. 워낙 제로에서 출발했지만 신세 한탄이나 불평을 한 적은 없어요. 현실을 받아들였고 진취적으로 살아왔습니다. 포기하지 않는 정신으로, 넘어져도 일어서는 불굴의 의지로.”
-요즘 자기 소개를 할 때 어떻게 말합니까.
“수채화를 그리는 울트라 마라톤 그랜드슬래머라고 합니다. 제 이력은 울트라 마라토너, 장구잽이, 마라톤 수필가, 수채화가 등 4가지예요. ‘파브’ 사업은 금년까지만 하고 접을 예정입니다. 나이도 있고 수채화에 푹 빠져서 시간이 부족해요(웃음).”
세일즈맨, 마라톤을 뛰다
그는 중1 때 서울 형님 집 근처 김포공항에서 비행기 이륙 장면을 보고 “외국어를 잘해 해외여행을 하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헌책방에서 영한사전을 사서 씹어 먹다시피 했다. AFKN 방송을 보고 팝송도 들었다.
-취직 후 해외 세일즈를 잘했다고요?
“일류 호텔 메뉴를 외우고 유머 감각을 길렀더니 판매 실적이 좋았습니다.”
-그게 신발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그래야 잘 팔려요(웃음). 영국 바이어가 저녁 먹으면서 들려준 얘기예요. ‘내가 왜 너희 회사와 오래 거래하는 줄 아니? 넌 유머를 알기 때문이다’라고. 지구 반대편에 있는 저놈이 믿을 만해야 한다는 거예요. 일류 호텔 메뉴를 외운 건 말할 때 있어 보여야 하니까요.”
-유머의 예를 들어주신다면.
“가령, 이사 온 영국 신혼부부가 그림을 걸어야 해서 벽에 못을 박았어요. 딩동! 하고 옆집 노부부가 찾아왔대요. 아 틀렸구나, 생각하는데 저쪽 할머니가 말합니다. ‘대단히 죄송한데 우리 집 벽으로 댁의 못이 튀어나왔습니다. 그 못에 모자를 좀 걸어도 될까요?’ 이런 유머 들려주면 좋아해요.”
-신발을 50년쯤 판매했는데, 신발만 봐도 그 사람을 아나요?
“그럼요! 성품, 사회적 지위, 주머니 사정까지 짐작할 수 있어요. 신발을 살 때 디자인과 가격, 유행하는 패턴 등을 보기 때문입니다.”
-마라톤을 시작한 계기는.
“한 차로 조문하러 가는데 해병대 출신 친구가 서울 요금소 통과할 때부터 전주 요금소 도착할 때까지 ‘마라톤 끝내준다’는 얘기를 했어요. 회사도 잘되고 제가 나른해질 시기였습니다. 쟤는 체구도 작은데 나는 뭔가 싶은 거예요. 이튿날부터 몰래 뛰기 시작해 2000년 가을 춘천마라톤에서 ‘머리’를 올렸지요.”
-당시 기록은?
“3시간 40분대에 들어왔어요. 그런데 울트라 마라톤은 기록이 중요하지 않아요. ‘고통스러운 마라톤이 왜 좋냐’ 물으면 저는 ‘머리도 맑아지고 즐겁다’고 답해요. 고통스럽지만 죽는 것은 아니고 대가는 풍성합니다. 달리기는 생각을 잉태해요. 그 생각이 매 순간을 쫀득하게 만들고 제 삶을 바꿨습니다.”
-울트라 마라톤은 왜 시작했나요.
“더 달리고 싶어서요. 더 갈 에너지가 있는 거예요. 또 마라톤 하는 분들이 들으면 서운하겠지만 마라톤 정도야 뭐 다들 뛰니까(웃음). 울트라 마라톤은 1년에 국내 대회가 30개쯤 열립니다. 인구는 2000~3000명 정도고요.”
-그랜드 슬래머는 무슨 뜻입니까.
“한반도를 횡단하고 또 대각선으로 종단한 초장거리 마라토너입니다. 강화도~강릉, 부산~임진각, 해남 땅끝마을~고성 통일 전망대를 다 완주하면 그랜드 슬래머라고 해요. 대한민국에 200명쯤 됩니다.”
-제가 아내라면 결사 반대할 것 같은데.
“2005년에 강화도~강릉 뛰겠다고 할 때 집사람이 ‘이혼 도장 찍고 가라’고 했어요. 울트라 마라톤을 하다 사망 사고도 있었습니다. 설득은 못 했고 ‘괜찮아, 괜찮아’ 하고 갔어요. 대한울트라마라톤연맹 해외 이사로 10년 봉사하고 세계연맹 임원을 지내며 부부 동반으로 모나코를 왕복한 뒤론 ‘잘했다’고 하고요.”
-해남~통일 전망대는 622㎞나 되는데.
“저는 152시간 걸렸어요. 뛰다가 식사하면서 발에 물집 터뜨리고 붕대도 감아요. 정류장 벤치에서 5~10분쯤 눈 붙였다 달리곤 했습니다. GPS가 없던 시절엔 자고 일어나면 방향이 헷갈려요. ‘잘 때는 신발을 벗어 달릴 방향으로 놓아라’가 꿀팁이었습니다(웃음).”
-완주하면 어떤 기분인가요.
“더 이상 무서울 게 없지요. 무슨 일이 닥쳐도 ‘그래? 해보지 뭐’가 됩니다. 하다가 꺾어질지언정 일단 부딪혀 보는 거죠. 만사에 그런 태도를 갖게 돼요.”
몽골고비 울트라 마라톤 대회 창설
대학은 만학도로 사이버한국외대 영어과를 졸업했다. 그는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2006년 풍물에 미쳐 장구를 배웠고 2014년 수필가로 등단했다. 2013년에는 몽골에 울트라 마라톤 대회(160㎞)를 만들고 완주했다. 올해 6월 28일~7월 5일에 제13회 대회를 연다.
-제주 일주 200㎞(무박 34시간) 완주기를 수필로 썼더군요.
“밤에 눈보라를 뚫고 달렸어요. ‘배고픔과 추위는 내 진군가에 쌍나팔이 돼 주었다’ ‘헤드랜턴 불빛 아래 쏟아지는 눈보라는 국수 공장 마당 빨랫줄에 널어놓은 국수 가닥같이 제 안경에 금 긋기를 하고 있었다’고 썼지요. 평생 세일즈맨으로서 제 전략은 글밖에 없어요.”
-무슨 뜻입니까.
“운동화를 판매하려면 마라톤 사이트에 글을 올려야 해요. 뛰는 일상이나 감정을 적지요. 읽으면 사고 싶어지게. 예컨대 몽골 사람들은 시력이 5.0이에요. ‘야, 네 아버지 저~기 온다’ 하면 사흘 뒤에 도착해요(웃음). 그 과정에서 ‘파브’가 유명해졌습니다.”
-몽골 대회엔 몇 명쯤 참가하나요.
“보통 40~50명입니다. 더 많아도 좋지만 한 버스로 움직여야 서로를 알고 끈끈해져요. 8박 9일 동안 울트라 마라톤 참가부터 먹고 자고 이동하고 여행하고 공연 관람까지 250만원입니다. 왕복 비행기표는 각자 끊고요.”
-사막도 있는데 어떻게 달립니까.
“고비사막 구간은 10%도 안 됩니다. 나머지는 평야, 습지, 초원이에요. 원 없이 달리고 싶다는 꿈을 거기서 실현했습니다. 울트라 마라톤은 걸어도 되고 기어도 돼요. 순위도 매기지 않아요.”
-작년 9월엔 덴마크 율란디아 울트라 마라톤 대회를 만들었는데.
“율란디아는 6·25 때 덴마크가 의료진과 함께 보내준 병원선 이름이자 덴마크의 국민 가요예요. 덴마크로 입양된 한국 여성이 부모를 찾으러 왔다가 국토 횡단 울트라 마라톤에 참가하면서 인연을 맺었어요. 울트라 마라토너들이 덴마크를 달렸고 사물놀이 공연을 펼쳐 현지 참전 용사들과 교민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요즘엔 그림에 빠져 있다고요?
“3년쯤 됐습니다.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 봤어요. 신발 팔러 해외 돌아다닐 때 얼마가 서럽습니까. 당시 한국은 지금 우간다와 별 차이가 없었어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신발 팔러 가는데 한 할머니가 이젤을 펴놓고 그림을 그리고 있더라고요. ‘나도 나이 들면 저런 여유를 부리고 살고 싶다’ 했는데 30여년 만에 실현된 겁니다.”
-아까 ‘궁핍이 내 에너지였다’고 했는데 지금은 부자라고 생각하나요?
“그렇다고 할 수 있죠. 양평 골짜기에 있는 저희 집은 마라톤의 메카예요. 명예롭고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하루 종일 클래식 듣고 그림 그리고, 세계에 흩어져 있는 뜀꾼 친구들과 교신하고. 더 이상 뭘 바라겠어요.”
-인생에서 지금 어느 구간쯤 달리고 있을까요.
“(골똘히 생각하다) 60%쯤요. 사람들이 저를 ‘울트라 러너’라고 불러요. 하마터면 신발을 팔러 여러 나라를 쏘다닌 세월, 그냥 그렇게 밥벌이로만 끝날 뻔했습니다. 오래 달리다 보니 새로운 시선을 갖고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었어요.”
-더 하고 싶은 말이라면.
“내가 내 삶의 주인공이어야 합니다. 남한테 등 떠밀려 하지 말고 좋아하는 것을 하세요.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말 못하고 쫓기는 짐승은 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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