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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치안 붕괴에 대비해야 한다"
    스크랩된 좋은글들 2025. 2. 18. 07:37
     
     
    17일 오후 서울대학교 행정관 앞에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찬성과 반대 집회가 같은 장소에서 동시에 열리면서 양측이 대립하고 있다. /장련성 기자
     

    17일 낮 12시쯤 서울대 관악캠퍼스 학생회관 앞. 윤석열 대통령 탄핵 찬반을 놓고 서울대생들이 맞닥뜨렸다. 250명의 학생들이 두 쪽으로 나뉘어 뜻이 다른 상대편을 향해 “빨갱이 꺼져라” “극우 세력 물러가라”라며 고함쳤다. “저들을 완전히 박멸해야 한다”는 말도 들렸다. 승강이가 멱살잡이 등 폭력으로 비화할 조짐이 보이자 경찰과 소방까지 캠퍼스에 등장했다.

    지난 15일 오후 광주광역시 금남로에서도 윤 대통령 탄핵 찬반 집회가 2시간 간격으로 열렸다. 반대 집회에는 경찰 비공식 추산 3만명이, 찬성 집회에는 1만명이 모였다. 두 인파는 겨우 70m쯤 떨어져 있었다. 경찰 버스 4대가 ‘ㅁ’ 자 형태로 양측을 갈랐다.

     

    지난 10일 오후 1시 40분 서울 연세대 신촌캠퍼스에서도 탄핵 찬성·반대 학생들이 충돌했다. ‘윤석열은 즉각 퇴진하라’ ‘반국가 세력의 사기 탄핵을 규탄한다’는 현수막을 각각 든 학생 수십 명은 불과 열 걸음 거리에서 서로를 향해 “부끄러운 줄 알아라”며 손가락질을 해댔다.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앞두고 대한민국 사회 곳곳이 극한 분열 중이다. 광화문·한남동에 이어 서울 서부지법·헌법재판소·서울구치소 등에 흥분한 군중이 몰려온다. 지난달 19일 서부지법 난동 사태는 집단 열광이 광기(狂氣)로 돌변하면 얼마나 위험해지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 인용된 2017년 3월 10일, 시위대는 이성을 잃었다. 그날 일로 4명이 목숨을 잃고 63명이 다쳤다.

     

    경찰은 지난달 차륜형 장갑차, 다목적 작전차, 근무용 안전 헬멧, 방탄 방패, 섬광 폭음탄 등을 발주하며 장비를 보완했다. 인터넷엔 헌재·법원·인권위 국가 주요 시설을 목표로 한 폭동 계획이 올라오거나, 화염병 등을 언급하는 사람도 있다. 경찰 관계자는 “탄핵심판 선고 직후, 2017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치안이 붕괴할 가능성에 대비 중”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폭주하는 입법부와 정치적으로 편향된 사법부를 더는 신뢰할 수 없다며 직접 광장으로 몰려나온다. 일각에선 탄핵이 인용되면 ‘제2 건국 전쟁’까지 불사할 것이라고 말한다. 민주주의는 군사 반란 같은 갑작스러운 사건이 아니라, 정치 양극화가 심화되며 제도의 균형이 무너지는 과정에서 서서히 붕괴된다(‘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는 지적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한국의 최고 장점은 우수한 치안이라고 외국인들은 말한다. 한 프랑스인은 “서울에서 난생처음으로 밤거리를 마음대로 걸을 때 감격스러웠다”고 했다. 6·25 이후 70여 년간 이룩한 사회 안전망은 치안뿐 아니라 교통·의료·통신 등 전 분야에 걸쳐 있다. “이젠 혁명이다” “전쟁을 선포한다” “다 밟아버리자” 같은 극단 구호 속에서 그간 힘겹게 닦아온 사회의 기반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있어서는 절대 안 되지만, 경찰은 늘 최악의 상황 ,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야 한다.

     

    2025년 2월 18일 조선일보 김명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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