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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王의 탄핵 심판스크랩된 좋은글들 2025. 3. 15. 03:03비상계엄 선포와 대통령 탄핵 소추 이후 서울에서 하루 평균 10만명 이상이 거리 시위를 벌였다고 한다. 탄핵 반대와 찬성 집회는 한 나라 안에서 빚어진 두 가지 이견(異見)의 대립이라는 선을 이미 넘어섰다. ‘탄핵을 찬성하는 나라’와 ‘탄핵을 반대하는 나라’가 충돌하는 국가 사이의 전쟁이다. 한 나라가 얼마나 안정된 상태인가를 측정하는 도구로 ‘실업률’ ‘인플레이션율’ ‘시위 발생 빈도’를 사용한다. 시위 발생 빈도에 시위 규모와 격렬성까지 포함하면 한국은 ‘극히 위험한 나라’다.
이러고서 국제 신용 평가 기관에 점수를 후하게 달라 할 순 없다. 북한 핵무기 위협 아래 사는 나라라고 말하기도 겸연쩍다.
냉전 시대 미국 외교 전략가는 1945년 이후 미국 외교 실패 원인으로 ‘민주주의’라는 처방전(處方箋)을 무턱대고 발급한 실수를 들었다. 원조 조건으로 민주주의 법제화(法制化)와 공정 선거 실시를 요구했지만 제3세계 독재자들은 원조 자금을 착복하고 부정선거를 반복해 쿠데타의 악순환을 불러왔다는 반성이다. 한국과 미국은 그 예외가 한국이라는 자부심을 공유(共有)해 왔다.
미국 국방부에는 ‘부모 테스트(Parents’ Test)’라는 제도가 있다. 군인이 전쟁터에서 죽으면 국방부 공무원이 병사 가족을 찾아가 ‘당신의 남편·오빠·자식이 나라의 명령에 따라 숭고(崇高)한 업무를 수행하다 희생됐다’고 전하는 것이다. 말을 전할 때는 가족 눈동자를 바로 보라는 주의 사항이 붙어 있다. 어느 미국 기자는 “한국이 ‘민주적 경제 발전’을 성취했기 때문에 6·25 참전 미군 희생자의 ‘부모 테스트’를 떳떳하게 통과할 수 있는 특별한 예외가 됐다“고 했다.
이 고마운 미국인의 믿음은 얼마나 사실에 부합하는 것일까. 유감스럽게도 결론은 옳지만 과정(過程)은 다르다. 한국은 ‘민주화를 통해’ 경제 발전을 이룩한 나라가 아니다. 권위주의적 군사정권 시대의 ‘경제 발전을 통해’ 민주주의가 뿌리내릴 경제·사회적 기반을 다졌기에 민주화가 뿌리를 내렸다.
한국은 ‘경제 과목’과 ‘민주주의 과목’ 두 과목 다 월반(越班)해서 조기(早期) 졸업한 나라다. 우리는 흔히 경제 분야에 문제가 생기면 ‘압축 성장의 부작용’이라고 한다. 경제보다 뿌리를 더디게 내리는 게 ‘정치’고 ‘민주주의’다. ‘정치적 압축 발전’의 폐해는 훨씬 오래간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고, 빼앗을 수 없는 권리를 창조주에게 부여받았다. 그것은 생명·자유·행복 추구의 권리다’. 귀에 익은 구절이다. 베트남 공산당 창설자 호찌민(胡志明)이 1945년 8월 26일 발표한 독립선언문 첫머리다. 미국 독립선언문을 그대로 베꼈다. 그러나 베트남이 걸은 길은 미국의 길과 달랐다. 민주주의는 민주적 헌법과 제도를 꺾꽂이하듯 남의 땅에 심는다고 뿌리내리는 것이 아니다. 법보다 중요한 것이 오랜 세월 축적된 민주적 관행과 관례다.
오밤중 비상계엄 선포와 탄핵 소추, 헌재의 탄핵 심판 과정에서 헌법과 법률이 얼마나 엉성하고 구멍투성이인지 여실히 드러났다. 대통령 수사를 서로 하겠다고 달려들던 공수처·검찰·경찰은 하이에나떼와 다름없었다. 국회는 대통령 권한대행을 탄핵 소추하려면 재적 의원 과반수 찬성이 필요한지 3분의 2가 필요한지 법률 근거도 따지지 않고 해치웠다. 민주적 관례가 없으면 헌법과 법률은 값비싼 가구(家具)나 마찬가지다.
민주주의 기초는 선거법이다. 국회가 선거법을 다수당 단독이 아니라 여야 합의로 처리해 온 것은 법률에 정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국회 관례였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권은 이 관례를 허물었다. 국회가 탄핵 소추 권한을 갖고 있지만 1948년 건국 이래 탄핵을 발의(發議)한 게 21건이다. 이재명 대표 재임 2년 사이에 29건을 발의했다. 헌법과 법률 어디에도 탄핵 소추 횟수(回數)를 제한하는 규정은 없다. 그러나 역대 야당 대표들은 탄핵 소추는 독성(毒性)이 강해서 비상(砒霜)처럼 신중히 사용해야 한다는 절제(節制) 관례를 쌓았다. 이 대표는 자신의 수사를 막고 재판을 지연시키기 위해 절제의 이 돌탑을 걷어찼다.
우리 아버지·자식들의 할아버지가 세운 나라가 절벽에 섰다. 우리는 솔로몬왕의 재판을 보고 있다. 두 여자가 서로 아이의 어머니란 주장을 굽히지 않자 솔로몬은 양쪽에서 팔을 당겨 찢어 가지라고 판결했다. 아이가 비명을 지르자 한쪽 여자가 먼저 손을 놓았다. 진짜 어머니가 누군지 드러났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 누가 승복(承服) 선언을 먼저 할 텐가. 입을 다물고 있는 쪽이 가짜다.
2025년 3월 15일 조선이보 강천석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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